2023年12月24日「イエス様のご誕生 예수님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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イエス様のご誕生 예수님의 탄생

日付
説教
川栄智章 牧師
聖書
ルカによる福音書 2章1節~7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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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句のアイコン聖書の言葉

2:1そのころ、皇帝アウグストゥスから全領土の住民に、登録をせよとの勅令が出た。
2:2これは、キリニウスがシリア州の総督であったときに行われた最初の住民登録である。
2:3人々は皆、登録するためにおのおの自分の町へ旅立った。
2:4ヨセフもダビデの家に属し、その血筋であったので、ガリラヤの町ナザレから、ユダヤのベツレヘムというダビデの町へ上って行った。
2:5身ごもっていた、いいなずけのマリアと一緒に登録するためである。
2:6ところが、彼らがベツレヘムにいるうちに、マリアは月が満ちて、
2:7初めての子を産み、布にくるんで飼い葉桶に寝かせた。宿屋には彼らの泊まる場所がなかったからである。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ルカによる福音書 2章1節~7節

原稿のアイコン日本語メッセージ

【序】

御子キリストのご降誕を覚え、心からお喜び申し上げます。クリスマスとは何か?日本ではクリスマスになると、それぞれのご家庭で飾り付けがなされ、ケーキを食べてお祝いをします。しかし、一体何のお祝いをしているのかという事については、あまり知られずに、と言うより、あまり知ろうともせずに、過ごしていると思います。クリスマスとは、旧約聖書に預言された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のご誕生をお祝いする日であります。

旧約聖書には、メシア、救い主がイスラエルの民に与えられるという預言が書かれています。救いというのは、捕囚を経験したイスラエルの民に対する救いですが、救い主がイスラエルの王として、義と平和の国を打ち立ててくださるというのです。イスラエルの民はアッシリアやバビロンによって連行され、彼らの都エルサレムは荒廃されてしまいました。しかし、神様は穀物を振るいにかけるように、ご自分の民に揺さぶりを与えることがあっても、完全に滅ぼす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捕囚による神の裁き、神の怒りは一瞬であり、むしろ神の慈しみは永遠であるからです。神は永遠の愛の中でご自身の民を愛され、ダビデの家系を通してメシアが生まれるようにしてくださいました。このお方がもたらしてくださる救いとは、皇帝アウグストゥスがもたらした「パクスローマ」と呼ばれる、武力を背景とした平和とは、異なります。本日は、ガリラヤのナザレで生活していたヨセフとマリアが、なぜユダのベツレヘムでイエス様を産むことになったのか、その不思議ないきさつについて、それから、イエス様がもたらした義と平和が、パクスローマとどのように異なるのか、御言葉から恵みに与りたいと思います。

【1】. 世界史の中での誕生

2:1~3をご覧ください。

“そのころ、皇帝アウグストゥスから全領土の住民に、登録をせよとの勅令が出た。これは、キリニウスがシリア州の総督であったときに行われた最初の住民登録である。人々は皆、登録するためにおのおの自分の町へ旅立った。”

2:1の冒頭には、「そのころ」という書き出しになっています。「そのころ」とはいつ頃かと言いますと、1:5にありますように、ヘロデ大王がユダヤを治めていた頃であります。皇帝アウグストゥスとは、ガイウス・オクタヴィアヌスのことで、ジュリアス・シーザーの甥であり、初代のローマ皇帝になった人物でもあります。住民登録とは、ローマ帝国が人頭税を徴収するためのものです。このようにルカ福音書とは、イエス様のご誕生が、世界史と関連付けられている唯一の福音書であると言う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これは、イエス様の誕生が架空の物語ではなく、歴史上に間違いなく存在した人物であるということを示しています。ところが、この箇所を巡って、多くの学者たちの間に論争を呼んでまいりました。大きく二つの点についてですが、これらの問題について、私たちはどのように聖書を解釈すればいいのか順番に説明し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第一の問題点は、ローマ皇帝のアウグストゥスは、住民登録を帝国全域において、勅令として実施したこと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さらに言えば、ローマの住民登録は、必ずしも自分の故郷に戻る必要がなかった、現在住んでいる場所において登録するのが普通だったという事です。この問題についてですが、確かに住民登録は、帝国全域において一斉に行われた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しかし、アウグストゥス自身、帝国全域の財政状況に大変強い関心を持ち、物的、人的資源を登録するための機関を設立したくらいであります。ですから住民登録は一斉には行われませんでしたが、地域ごとの特性に合わせるために、各地域において個別に行われていたということです。また、ローマの住民登録は、必ずしも自分の故郷に戻る必要はありませんでしたが、ユダヤ人の場合は、自分たちの家系をとても重んじていたため、むしろ、各自の出生地に戻って住民登録をするのが伝統的であり、普通であったと考えられています。

第二の問題点は、シリアの総督キリニウスが行った有名な住民登録は、AD.6年であり、その時は既にヘロデ大王が死去していた(BC.4年)。ヘロデ大王の死後、領土はヘロデの三人の子どもたちに分割統治されていました。ヘロデ大王の治世に、イエス様は本当に誕生したのだろうか?という問題です。この問題についてですが、まず、キリニウスが行ったAD.6年の住民登録が、いかに不評だったのかということが、ルカの書いた使徒言行録(使徒5:37)の中で書かれています。この時ユダヤ人が反乱を起こしたほどでありました。しかし、その有名な住民登録とは異なる、キリニウスが「初めて行った住民登録」だという事を、本日の箇所で、ルカは言っているのだと思われます。その証拠として、ヨセフとマリアがガリラヤのナザレからユダのベツレヘムまで移動していることが挙げられます。もしAD.6年の住民登録であれば、既にヘロデ大王はこの世を去り、ガリラヤとユダヤはそれぞれ異なる統治区でありましたから、つまり、ガリラヤは、ヘロデ・アンティパスによって、ユダヤはローマの直轄領となっていたため(アケラオが追放されて)、ガリラヤのナザレから、ユダへ移動しながら、領土をごちゃ混ぜにする住民登録というのは考えられない訳です。総督キリニウスが、AD.6~9年までシリア州の総督として、確かに在位していましたが、それ以前にも、一時、シリア州の政治に大いに関わっていたことは、学者たちの誰もが認めるところです。ですから2:2節に書かれている住民登録というのは、キリニウスがAD.6年に実施した第二回目の住民登録ではなく、最初の住民登録であったという事だと思います。

【2】. 不思議ないきさつ

さて、ヨセフはダビデの家の血筋であったので、ガリラヤの町ナザレから、ユダヤのベツレヘムの町に上って行きました。妊娠中であったいいなずけのマリアも一緒に連れて行きました。恐らくこの時、ヨセフは20歳くらい、マリアは13歳くらいだったと考えられます。パレスチナ地域はユダヤも、ガリラヤも、全てシリア州の管轄になっていましたが、シリア州では、女性にも人頭税が課せられていたため、12歳になると、女性も住民登録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そのために、ヨセフと身重のマリアは約130キロにもなる道のりを、旅をしたと思われます。ゆっくりと、何度も休憩をとりながらの旅であったに違いありません。ベツレヘムに到着してからの状況が6~7節に書かれています。ご覧ください。

“ところが、彼らがベツレヘムにいるうちに、マリアは月が満ちて、初めての子を産み、布にくるんで飼い葉桶に寝かせた。宿屋には彼らの泊まる場所がなかったからである。”

6節を注意深く読みますと、「ベツレヘムにいるうちに、マリアのお産の月が満ちた」とあります。言い換えれば、ベツレヘムに滞在している間に、ヨセフとマリアが滞在する場所を見つけて、そこに留まっている内に産気づいたという事です。また、「布にくるんだ」という言葉は、ギリシア語を見ますと「産着でくるんだ」となっています。決して、慌ててその辺にある有り合わせの布でくるんだということではありません。きちんと赤ちゃんをくるむための産着を用意し、そこに赤ちゃんイエスをくるんで寝かせたという事です。ところが、7節を見ますと、「宿屋には彼らの泊まる場所がなかった」と書かれていますから、この文章から私たちは、ヨセフとマリアがベツレヘムに着いて、宿屋がどこも満室で、行く先々の宿屋で断られてしまい、挙句の果てに、到着したその日の夜に、急遽、生まれてきた子を「飼い葉おけ」に寝かせたというイメージを持ってしまいます。ところが、7節のギリシア語を注意深く見ますと「泊まるための」という言葉はありません。ですからここは、既に泊まる場所は確保されていましたが、「出産するための場所がなかった」という意味だと思います。そもそも宿屋(ギリシア語でカタールマ)という言葉ですが、この言葉は旅行先にある宿泊施設を意味す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ベツレヘムの田舎には、そのような宿泊施設はなかったと思われます。「カタールマ」というギリシア語は、「仮の宿」とか、「ある農家の家の客間、座敷」を意味します。乾燥したイスラエルでは、一般的に石灰石のブロックを積み上げて家が作られ、門や屋根の一部に、木が使用されていました。そのような一般の家の客間に、住民登録のため、人々が寝泊まりさせていただいたという事です。また「飼い葉おけ」と訳されているギリシア語は、「飼い葉おけ」の他に、「家畜小屋(厩)」(参照ルカ13:15)という意味を持っています。ですから、ヨセフとマリアは出産するための場所として、客間・座敷を離れて、人目を避けながら、裏にある「家畜小屋」で、イエス様を出産したと読むべきだと思います。

古くから言い伝えられている伝承の中に、「イエス様は家の裏にあった洞窟の中でお生まれになった」というのがあります。当時、洞窟は、住居として、或いは、家畜小屋として用いられていました。ヨセフとマリアは、もしかしたら伝承の通り、家の裏にある家畜小屋の洞窟で、イエス様を出産したのかもしれません。いずれにしても、このような仕方で、ナザレで生活していたヨセフとマリアから、一瞬のタイミングを捉えるかのように、救い主がベツレヘムでお生まれになったのです。

【3】. イエス様がもたらした義と平和

ベツレヘム、この町は昔、ダビデ王が生まれた町であります。ヘブライ語で「パンの家」という意味です。ご自身の民に、命を与えるパンとして来られたイエス様に、全く相応しい名前の出生地でありました。その誕生は、旧約聖書のミカ書の預言の成就でもありました。ミカ書5:1をご覧ください。

“エフラタのベツレヘムよ/お前はユダの氏族の中でいと小さき者。お前の中から、わたしのために/イスラエルを治める者が出る。彼の出生は古く、永遠の昔にさかのぼる。”

小さな町ベツレヘムにおいて、富と権力を持たない、イスラエルの卑しい人々と同じような仕方で、救い主は誕生されました。ミカ書は単に救い主の出生地を預言するだけではありません。救い主の素性についても書かれています。「彼の出生は古く、永遠の昔にさかのぼる」、これはどういうことかと申しますと、第一に、救い主の誕生は、永遠の昔にさかのぼるということです。つまり、天地が創造される前に、父なる神からお生まれになった「神の独り子」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第二に、救い主は聖霊によってマリアに身ごもったのですが、それは実は神の子の受肉の事件であったという事です。神の子でありながら肉を取られ、人の子として来られたという事です。何のためでしょうか。それはまったき神であり、まったき人として来られた、救い主を通して、ご自身の民を救済するという「恵みの契約」を成就させるためであります。

ヨセフがマリアをつれてベツレヘムに上ったのは、当人たちからすれば全く偶然のように感じたかもしれませんが、神様はこの偶然と思えるような出来事を逃さず、神の永遠のご計画を明らかにされたのです。ベツレヘムにおけるイエス様のご誕生という出来事を通して、契約に対する神様の熱心さ、神様の誠実さを私たちは感じないではいられないのです。この恵みの契約は、アダムとエバが人類最初の罪を犯した直後に、原福音という形で既に暗示されていました。創世記3:15には次のように書かれています。

“お前と女、お前の子孫と女の子孫の間に/わたしは敵意を置く。彼はお前の頭を砕き/お前は彼のかかとを砕く。”

最初の人間であるアダムとエバは神様の愛を疑い、サタンの言葉を信じて、いわばサタンとの友好関係、サタンとの同盟関係に入ってしまいました。人間はサタンに従った結果、サタンの支配下にある者とされたのです。そんな人間とサタンとの間に神様が敵意を置くとおっしゃっています。これは言い換えれば、神様が人間をサタンから引き離すということです。そして、それはさらに、神が人間をご自身の側へと取り戻してくださるという約束に他なりません。その後の歴史においても、イスラエルの民は不信仰を重ねますが、それにもかかわらず、神はご自身の契約を決して忘れることも、放棄することもありませんでした。イスラエルの民は自分たちの罪によって、一時、悲惨の中に陥ることはあっても、再びダビデの家系から王を得ることになったのです。彼は王でありますが、義しく、柔和で、謙遜な王であり、ロバの子に乗ってくることでしょう。そして、ご自身の十字架と復活を通して、義と平和の国を打ち立ててくださるでしょう。私たちは、この方を信じ、この方によって、罪赦され神様と和解し、御前に義とされたのであります。この方にあって、義と平和の国に入れていただいているのです。それは見せかけの平和でなければ、武力を背景とした平和でもありません。キリストにある義と平和です。そのお方のご誕生を今日、私たちは喜びを持って、お祝いしているのです。

【結論】

クリスマスとは、創造のはじめから計画され、預言者を通して約束されていた、救い主が与えられ、彼が義と平和の国を打ち立ててくださったことを喜ぶ日であります。信じる者にもたらされた、この義と平和の国は、まだ私たちの目には見えませんけれども、その国は確かに到来しております。私たちはクリスマスをお祝いしながら、このお方によってもたらされた恵みを、一人でも多くの人々に、宣べ伝えていく者とならせていただきましょう。

原稿のアイコンハングル語メッセージ

예수님의 탄생

2023년 12월 24일 센겐다이교회 주일설교

누가복음 2장 1~7절

서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오신 것을 기억하며 마음으로부터 기뻐합니다. 크리스마스란 무엇인가요? 일본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각각의 가정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케이크를 먹고 축하를 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축하 하고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도 하지만 잘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스마스는 구약 성경에 예언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여 축하하는 날입니다.

구약성경에는 메시아, 구원자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다는 예언이 적혀 있습니다. 구원이란 포로를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구원인데 구원자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의와 평화의 나라를 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백성은 아시리아와 바빌론에 의해서 포로로 끌려갔고 그들의 수도 예루살렘은 황폐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곡식을 까부르듯 자신의 백성을 흔드시는 한이 있더라고 완전히 멸망시키는 일은 없으셨습니다. 포수에 의한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분노는 한순간이고 오히려 하나님의 인자함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사랑 속에서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시며 다윗의 가계를 통해 메시아가 태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이분이 가져다 주시는 구원과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가져온 팍스로마라고 불리는 무력을 배경으로 한 평화와는 다릅니다. 오늘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생활하던 요셉과 마리아가 왜 유다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을 낳게 되었는지, 그 불가사이한 경위에 대해, 그리고 예수님이 가져다주신 의와 평화가 팍스로마나와 어떻게 다른지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얻고자 합니다.

(1) 세계사 속에서의 탄생

2장 1~3절을 보세요.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2장 1절의 첫머리에는 「그 때에」라는 첫단어가 있습니다. 「그 때에」가 언제쯤이냐 하면 1장 5절에 나와 있듯이 헤롯 대왕이 유대를 다스리던 무렵이었습니다.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는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를 말하며 줄리어스 시저의 조카이자 초대 로마 황제가 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호적령이란 로마 제국이 인두세를 징수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처럼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이 세계사와 관련된 유일한 복음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탄생이 가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상 틀림없이 존재했던 인물임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두고 많은 학자들 사이에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크게 두 가지 점에 대해서인데요, 이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성경을 해석해야 하는지 순서대로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문제점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호적령을 천하로 칙령으로 실시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로마의 호적령은 반드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었고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등록하는 것이 보통이었다는 이 문제에 대해서입니다만, 확실히 호적령은 제국 전역에서 일제히 이루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 자신은 제국 전역의 재정 상황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물적, 인적 자원을 등록하기 위한 기관을 설립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호적령은 일제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지역별 특성에 맞추기 위해 각 지역에서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로마의 호적령은 반드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었지만 유대인의 경우에는 자신들의 가계를 중시했기 때문에 오히려 각자의 출생지로 돌아가 호적을 하는 것이 전통적이고 정상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두 번째 문제점은 수리아 총독 구레뇨가 실시한 유명한 호적령은 AD.6년으로 그 때는 이미 헤롯대왕이 사망한 상태(BC.4년)였다는 것입니다. 헤롯 대왕 사후에 영토는 헤롯의 세 자녀들로 분할 통치되고 있었습니다. 헤롯 대왕의 치세에 예수님은 정말 탄생했을까?라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먼저 구레뇨가 행한 AD.6년의 호적령이 얼마나 평이 나빴는가 하는 것이 누가가 쓴 사도행전 5장 37절에 쓰여져 있습니다. 이때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 유명한 호적령과는 다른 구레뇨가 「처음으로 명한 호적령」이라는 것을 오늘의 본문에서 누가는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증거로서 요셉과 마리아가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유대의 베들레헴까지 이동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만약 AD.6년의 호적령이라면 이미 헤롯 대왕은 세상을 떠났고 갈릴리와 유대는 각기 다른 통치구였기 때문에 갈릴리는 헤롯 안티파스에 의해 유대는 로마의 직할령이 되었기 때문에 (아켈라오가 추방되고)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유대로 이동하면서 영토를 뒤죽박죽 섞는 호적령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총독 구레뇨가 AD.69년까지 수리아 주의 총독으로 확실히 재위했지만 그 이전에도 한때 수리아 주의 정치게 크게 관여했다는 것은 학자들 모두가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2장 2절에 적혀있는 호적령이라고 하는 것은 구레뇨가 AD.6년에 실시한 두 번째 호적령이 아니라 첫 호적령이었다는 것입니다.

(2) 불가사이한 경위

자, 요셉은 다윗 집안의 혈통이었기 때문에 갈릴리 마을 나사렛에서 유대 베들레헴 마을로 올라갔습니다. 임신중이었던 사랑스러운 마리아도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 아마도 이때 요셉은 20세 정도, 마리아는 13세 정도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유대도 갈릴리도 모두 수리아 주의 관할로 되어 있었지만 수리아 주에서는 여성에게도 인두세가 부과되었기 때문에 12세가 되면 여성도 호적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과 임신한 마리아는 약 130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여행했다고 생각됩니다. 천천히 몇 번이나 휴식을 취하면서의 여행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베들레헴에 도착한 이후의 상황이 6,7절에 적혀 있습니다. 보시기 바랍니다.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6절을 주의 깊게 읽으면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라고 나와있습니다. 다시 말해 베들레헴에 머무는 동안 요셉과 마리아아가 머물 곳을 발견하고 그곳에 머무는 동안 산기가 들었다는 것입니다. 또 「강보로 싸서」라는 말은 헬라어를 보면 「배내 옷」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결코 황급히 그 근처에 있는 흔한 천으로 감쌌다는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아기를 싸기 위해 강보를 준비하고 거기에 아기 예수를 싸서 눕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7절을 보면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라고 쓰여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 우리는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도착하고 여관이 어디나 만실이고, 가는 곳마다 여관에서 거절당하고 급기야 도착한 그날 밤에 갑자기 태어난 아이를 「구유」에 뉘었다는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7절의 헬라어를 유심히 보면 「머물기 위한」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이미 묵을 장소는 확보되어 있었지만 「출산할 장소가 없었다」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원래 여관(헬라어로 카탈뤼마)이라는 이 말은 여행지에 있는 숙박시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들레헴의 시골에는 그런 숙박시설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카탈뤼마」라는 헬라어는 「객실」이라든가 「어느 농가의 객실, 사랑방」을 의미합니다. 건조한 이스라엘에서는 일반적으로 석회석 블록을 쌓아 집이 만들어졌으며 문과 지붕 일부에 나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런 일반 집의 사랑방에 호적령을 위해서 온 사람들을 숙박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또 「구유」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구유」외에 「외양간(누가복음 13장 15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출산을 위한 장소로 객실과 사랑방을 떠나 남의 눈을 피하면서 뒤에 있는 「외양간」에서 예수님을 출산했다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승 중에 「예수님은 집 뒤에 있던 동굴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이 있습니다. 당시 동굴은 주거지로 쓰이거나 외양간으로 쓰였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어쩌면 전승처럼 집 뒤에 있는 외양간 동굴에서 예수님을 출산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나사렛에서 생활하던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한 순간의 타이밍을 포착하듯 구원자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3) 예수님이 가져다 주신 의와 평화

베들레헴, 이 마을은 옛날 다윗 왕이 태어난 마을입니다. 히브리어로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백성에게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께 아주 적합한 이름의 출생지였습니다. 그 탄생은 구약성경 미가서 예언의 성취이기도 했습니다. 미가서 5장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실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부와 권력이 없는 이스라엘의 천한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구원자는 탄생했습니다. 미가서는 단순히 구원자의 출생지를 예언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구원자의 본성에 대해서도 적혀 있습니다.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이게 무슨 말이냐면 첫째, 구원자의 탄생은 영원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거죠. 즉 천지가 창조되기 전에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것입니다. 둘째 구원자는 성령에 의해 마리아에게 잉태되었는데 그것은 사실 하나님의 자녀의 성육신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육신을 취하시고 사람의 아들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으로 오신 구원자를 통해서 자신의 백성을 구제하신다는 「은혜의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함입니다.

요셉이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에 온 것은 당사자들이 보기에는 단순한 우연처럼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우연이라고 생각되는 사건을 놓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밝히신 것입니다.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의 탄생이라는 사건을 통해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신실함을 우리는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은혜의 언약은 아담과 하와가 인류 최초의 죄를 지은 직후에 원시복음이라는 형태로 이미 암시되어 있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사탄의 말을 믿고, 말하자면 사탄과의 우호관계, 사탄과의 동맹관계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인간은 사탄을 따른 결과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 자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런 인간과 사탄과의 사이를 원수가 되게 하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사탄으로부터 떼어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아가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곁으로 되돌려 주신다는 약속이나 다름없습니다. 이후의 역사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순종을 거둡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결코 잊지도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로 인해 한때 비참함 가운데 빠지기도 했지만 다시 다윗의 혈통에서 왕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는 왕이지만 의롭고 부드러우며 겸손한 왕이시며 당나귀 새끼를 타고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의와 평화의 나라를 세워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분을 믿고 이분에 의해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여겨진 것입니다. 이 분으로 인해서 의와 평화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말로만의 평화가 아니고 무력을 배경으로 한 평화도 아닙니다. 그리스도께 있는 의와 평화입니다. 그분의 탄생을 오늘 우리는 기쁨으로 축하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크리스마스는 창조의 시작부터 계획되고 선지자를 통해 약속되었던 구원자가 주어지고 그가 의와 평화의 나라를 세워 주신 것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믿는 자에게 주어진 이 의와 평화의 나라는 아직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나라는 분명히 도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면서 이 분이 가져다 준 은혜를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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