メシアを見るのを楽しみにした人々 메시아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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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ヨハネによる福音書 8章48節~59節
8:48ユダヤ人たちが、「あなたはサマリア人で悪霊に取りつかれていると、我々が言うのも当然ではないか」と言い返すと、
8:49イエスはお答えになった。「わたしは悪霊に取りつかれてはいない。わたしは父を重んじているのに、あなたたちはわたしを重んじない。
8:50わたしは、自分の栄光は求めていない。わたしの栄光を求め、裁きをなさる方が、ほかにおられる。
8:51はっきり言っておく。わたしの言葉を守るなら、その人は決して死ぬことがない。」
8:52ユダヤ人たちは言った。「あなたが悪霊に取りつかれていることが、今はっきりした。アブラハムは死んだし、預言者たちも死んだ。ところが、あなたは、『わたしの言葉を守るなら、その人は決して死を味わうことがない』と言う。
8:53わたしたちの父アブラハムよりも、あなたは偉大なのか。彼は死んだではないか。預言者たちも死んだ。いったい、あなたは自分を何者だと思っているのか。」
8:54イエスはお答えになった。「わたしが自分自身のために栄光を求めようとしているのであれば、わたしの栄光はむなしい。わたしに栄光を与えてくださるのはわたしの父であって、あなたたちはこの方について、『我々の神だ』と言っている。
8:55あなたたちはその方を知らないが、わたしは知っている。わたしがその方を知らないと言えば、あなたたちと同じくわたしも偽り者になる。しかし、わたしはその方を知っており、その言葉を守っている。
8:56あなたたちの父アブラハムは、わたしの日を見るのを楽しみにしていた。そして、それを見て、喜んだのである。」
8:57ユダヤ人たちが、「あなたは、まだ五十歳にもならないのに、アブラハムを見たのか」と言うと、
8:58イエスは言われた。「はっきり言っておく。アブラハムが生まれる前から、『わたしはある。』」
8:59すると、ユダヤ人たちは、石を取り上げ、イエスに投げつけようとした。しかし、イエスは身を隠して、神殿の境内から出て行かれた。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ヨハネによる福音書 8章48節~59節
메시아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한 사람들
2026년 3월 8일 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요한복음 8장 48~59절
초막절 축제 중에, 주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의 긴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적대자인 유대인들에게「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매우 엄한 말씀이지만, 이는 당시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죄를 지고 태어난 인류 전체에게 해당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그대로의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도 없고, 말씀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위로부터 오는 은혜가 부어지지 않으면,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대적자들과 대조적으로, 메시아를 보기를 고대하던 사람들로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요한복음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함께 말씀의 은혜에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1) 둘째 사망을 두려워하라
유대인들은「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라는 말씀을 듣고 화가 나서「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라고 예수님께 맞받아쳤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이 들렸다고 비난받은 대목은, 복음서에서 자주 등장하지만,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비난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다른 복음서를 봐도 그런 비난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의 뿌리는, 옛날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일부가 앗수르로 끌려가고, 대신, 유프라테스 강 동쪽 사람들이 북이스라엘로 이주하게 된 데 있습니다. 그때, 이주 해 온 백성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혼혈로 태어난 것이 바로 「사마리아인」입니다. 이 사마리아인의 신앙은, 원래 이방인이 가졌던 신앙과 이스라엘이 가졌던 신앙이 혼합된 혼합 종교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경멸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과 마술을 연관 지어 생각했기 때문에, 「너는 사마리아인이다」라는 비난은 「너는 마술사다」라고 말하는 것과 거의 같은 의미였다고 여겨집니다. 이 유대인들의 비난에 대해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비난에는 눈감으시면서도, 「귀신이 들렸다」는 비난에는 반박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반박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이며, 자신이 말하는 내용은 제멋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들은 말씀을 충실히 전하는 것임을 밝히셨습니다. 자신은 대리인으로서 아버지 하나님을 존중하며,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위에, 51절에서「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51절과, 그리고 58절에도 나오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서두의 말은, 항상 지적하고 있듯이 「아멘, 아멘, 레고, 휘민」이라는 말이 사용되어 있으며, 그 뒤에 중요한 내용이 말해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라는, 이 말씀은 예전 예수님께서 6:51에서 하신 말씀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6:51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6장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두 구절을 비교해 보면「내 말을 지키는 자」라는 표현이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을 먹는 자」로 바뀐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라는 표현이 「영생하리라」로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사안을 다양한 각도에서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한 가지 일이라는 것은, 그분 자신이 메시아이시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시고, 죄인의 구원이 바로 그분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는, 이 땅의 생을 다하고, 육체의 장막에서 해방되어 하늘로 끌어올려져,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과 하나가 됩니다.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52~53절을 보십시오.
52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53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유대인들은「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라는 말씀을 이 땅에서의 육체의 죽음으로만 한정하여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의 의미는, 이 땅에서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사망」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 사망」, 즉 마지막 심판 때, 멸망하여 불못, 즉 지옥·게헨나에 던져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 둘째 사망에 참여하는 자들은 영원한 고통 속에 던져집니다. 요한계시록 21:6-8을 보십시오.
요한계시록 21장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둘째 사망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세주 메시아를 보기를 고대하던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이 둘째 사망을 두려워했습니다. 예를 들어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느부갓네살 왕에게「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라고 말하며 자신들이 신앙을 배교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비록 자신들의 육체가 멸망당할지라도, 그보다 더, 마지막 심판 때 게헨나에서 멸망당하는 둘째 사망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다니엘 역시 마찬가지로, 비록 사자에게 자신의 육체가 찢겨질지라도, 그보다 더, 게헨나에서 멸망당하는 둘째 사망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0:28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예수님께서는 둘째 사망, 게헨나에 던져지는 것을 두려워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 자신이 십자가 위에서 죄인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이 무서운「둘째 사망」에서 구원해 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유대인들은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나오는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단지 표면적으로 듣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2) 메시아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한 사람들
유대인들이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56~58절을 보십시오.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6절의 해석을 두고 신학자들마다 의견이 갈립니다. 저도 어느 해석이 옳은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나의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때」란 무슨 뜻일까요? 보통이라면 「나의 날」, 「주의 날」이라는 점에서 종말론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 영혼이 낙원으로 올라가 거기서 주님을 만났음을 묘사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다만, 다음 해석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즉, 56절 마지막의 「보고 기뻐하였다」라는 헬라어 시제에 주목하면, 과거 어느 시점에서 완결된 사건을 나타내고 있습니다(과거 완료).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천국(낙원)에서 기뻐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아브라함이 살아 있을 때 어느 시점에 기뻐했다는 것이 아니냐고 어떤 사람은 주장합니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이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한낮의 더운 때, 세 천사를 통해 주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지난주에도 인용했던 구절이지만, 세 천사와 아브라함의 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18:10~14을 보십시오.
창세기 18장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리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아브라함과 대화를 나누던 세 천사가 13절과 14절에서 갑자기「여호와」라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천사를 통해 주, 여호와를 본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에 불과한 아브라함이 주를 본다면 본래 멸망해야 마땅한데, 아브라함은 무사했습니다. 왜일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중보자가 되실 메시아의 사역을 여기서 보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은,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통해 육신을 입으셨을 때에야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비록 신약 시대에 그 사역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을지라도, 예수님은, 시간이 시작되기 전부터, 영원히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셨으며, 이미 구약 시대에 중보자로서의 사역을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라고 선언하셨으며,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이 주님과 언약을 맺었지만, 이때도 역시 죄인인 아브라함이, 직접 주님과 동등한 신분으로 언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는 이미 중보자의 사역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중보자가 되신 아들의 사이에 「속죄의 언약」이 영원히 체결되어 있었고, 그 위에 언약 갱신으로서의 아브라함 언약이, 은혜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죄인인 아브라함은, 그 사실을 깊이 깨닫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천사를 통해 나타나신 사건의 배후에,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중재해 주시는, 중보자의 사역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으로 돌아가서, 8:56절의 「내 때를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이 해석으로,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의 사역을 보는 것을 즐거워했던 것이며, 실제로 아브라함은 주님과 언약을 맺을 때, 혹은 마므레의 상수리나무에서 주의 현현을 볼 때, 믿음의 눈으로 중보자의 사역을 보고 기뻐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만이 아닙니다. 다니엘도, 다니엘의 세 친구도, 그리고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든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죄인인 자신들을 구속해 주실 중보자의 사역을 확실히 믿음의 눈으로 보고 기뻐했습니다.
자,「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유대인들은 돌을 들어 치려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 그분의 신성을 주장하시는 것을 분명히 인식했던 것입니다. 신성 모독이라고 느끼고, 돌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켜 주셨습니다. 59절에 「예수께서 숨어」 라고 되어 있지만, 헬라어로는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께서 하나님에 의해 몸을 숨기셨다(신적 수동태)」는 것이 성전 경내에서 나가셨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현현은, 하나님의 계시는 유대인들에게서 떠나가 버렸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현현, 하나님의 계시 앞에 선, 유대인들의 태도와 아브라함을 비롯한 구약의 성도들의 태도가 대조적으로 놓여 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메시아를 믿음의 눈으로 보고 기뻐했지만, 유대인들은 돌을 들어 하나님의 현현을, 하나님의 계시를 말살하려 했던 것입니다.
결론
오늘 내용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현현, 하나님의 계시 앞에서 유대인들의 반응과 구약의 성도들의 반응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현현, 하나님의 계시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싶으십니까? 세 천사를 대접하려 했던 아브라함의 태도입니까? 돌을 집어든 유대인들의 태도입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자로서,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중보자의 사역을 보고 기뻐하는 자들이 되도록 합시다. 신약시대인, 우리 시대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이 성경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믿음의 눈으로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자가 되어, 구약 성도들의 믿음을 본받는 자로 걸어가도록 합시다.
【序】
仮庵の祭りの中で、主イエスとユダヤ人たちの長い論争が続いています。イエス様は敵対者であるユダヤ人たちに対し、「あなたたちは、悪魔である父から出た者であって、その父の欲望を満たしたいと思っている」と決定的なことを言われました。大変厳しいお言葉でありますが、これは何も当時のユダヤ人たちだけでなく、罪を持って生まれてくる人類全体に当てはまる言葉でありました。私たちは、神との関係が断絶されたそのままの状態では、神の啓示を受け取ることも出来ませんし、御言葉を理解することも出来ません。上からの恵みが注がれなければ、新しく生まれ変わることがなければ、神との交わりを回復することはできません。神の国に入ることは出来ないのであります。本日の箇所は、敵対者たちとは対照的に、メシアを見るのを楽しみにしていた人々として、アブラハムを例に挙げ描写されています。本日もヨハネの福音書の御言葉に耳を傾けつつ、共に御言葉の恵みに与りたいと願います。
【1】. 「第二の死」を恐れなさい
「あなたたちは、悪魔である父から出た者である」と言われたユダヤ人たちは、カチンときてイエス様に言い返しました。「あなたはサマリア人で悪霊に取りつかれていると、我々が言うのも当然ではないか。」イエス様が悪霊に取りつかれていると非難された個所は、福音書の中に度々出てまいりますが、サマリア人だと非難されたのは、今回が初めてです。他の福音書を見てもそのように非難は一度もありませんでした。サマリア人のルーツは、かつて、北イスラエルがアッシリアによって滅亡された時に、イスラエルの民の一部がアッシリアに連行され、代わりにユーフラテス川の東の人々が北イスラエルに移住させられました。その時に、移住してきた民とイスラエルの人々の混血として生まれてきたのが「サマリア人」であります。このサマリア人の信仰とは、もともと異邦人の持っていた信仰とイスラエルの持っていた信仰が混ざり合った混合宗教であったため、ユダヤ人たちは、サマリア人を軽蔑していました。そして、イエス様の時代のユダヤ人たちは、サマリア人と魔術を結び付けていたと考えられるため、「あなたはサマリア人だ」という非難は「あなたは魔術師だ」と言っているのとほぼ同じ意味であったと考えられています。この、ユダヤ人たちの非難に対し、イエス様はどのように反応されたでしょうか。イエス様は「サマリア人」という非難には目をつぶりつつ、「悪霊に取りつかれている」という非難には反論されました。イエス様の反論は、ご自身が神から遣わされた者であり、御自身が語っている内容とは、自分勝手に話しているのではなく、父から聞いた御言葉を忠実に話している。自分は代理人として父なる神を重んじ、父なる神に栄光を帰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
その上で、51節において「はっきり言っておく。わたしの言葉を守るなら、その人は決して死ぬことがない」と言われました。この51節と、それから58節にも出てくる「はっきり言っておく」という前振りの言葉は、いつも指摘していますように「アーメン、アーメン、レゴ、ヒューミン」という言葉が用いられていまして、その後に大切な事柄が語られていることを意味しています。「わたしの言葉を守るなら、その人は決して死ぬことがない」。この言葉は、以前イエス様が6:51で語られた言葉と同じことを意味していると思います。6:51をご覧ください。
「わたしは、天から降って来た生きたパンである。このパンを食べるならば、その人は永遠に生きる。わたしが与えるパンとは、世を生かすためのわたしの肉のことである。」
二つの節を見比べますと「わたしの言葉を守る」という言葉が「天から降って来た生きたパンを食べる」という言葉に言い換えられています。また、「死ぬことがない」という言葉が「永遠に生きる」という言葉に言い換えられています。要するにイエス様は、一つの事柄を様々な角度から説明しておられるということです。そして、その一つの事柄とは、御自身がメシアであられ、神と人の仲保者であり、罪人の救いが、まさに御自身にあるということでありました。イエス様を信じ救われた者は、この地上の生を全うし、肉体という幕屋から解放され、天に引き上げられ、神の右に着座しておられるイエス様に結び合わされるのであります。そのことを理解できないユダヤ人たちは、イエス様のお言葉に噛みつきました。52~53節をご覧ください。
“ユダヤ人たちは言った。「あなたが悪霊に取りつかれていることが、今はっきりした。アブラハムは死んだし、預言者たちも死んだ。ところが、あなたは、『わたしの言葉を守るなら、その人は決して死を味わうことがない』と言う。わたしたちの父アブラハムよりも、あなたは偉大なのか。彼は死んだではないか。預言者たちも死んだ。いったい、あなたは自分を何者だと思っているのか。」”
ユダヤ人たちは「死ぬことはない」という言葉を、この地上における肉体の死に限定して考えていました。しかし、イエス様の「死ぬことはない」という言葉の意味は、この地上における死のことを語っ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第二の死」について語っているのであります。「第二の死」、つまり最後の審判の時に滅ぼされ、火の池、すなわち、地獄・ゲヘナに投げ入れられることであります。この第二の死に与る者たちは、永遠の苦しみに入れられるのです。黙示録21:6~8をご覧ください。
“また、わたしに言われた。「事は成就した。わたしはアルファであり、オメガである。初めであり、終わりである。渇いている者には、命の水の泉から価なしに飲ませよう。勝利を得る者は、これらのものを受け継ぐ。わたしはその者の神になり、その者はわたしの子となる。しかし、おくびょうな者、不信仰な者、忌まわしい者、人を殺す者、みだらな行いをする者、魔術を使う者、偶像を拝む者、すべてうそを言う者、このような者たちに対する報いは、火と硫黄の燃える池である。それが、第二の死である。」”
第二の死について説明がされています。救い主メシアを見るのを楽しみにした人々は、何よりもこの第二の死を恐れていました。例えばダニエルの三人の友人たちは、ネブカドネツァル王に「神はこの炎からでさえわたしたちを救うことが出来ます。たとえそうでなくても…」と言いながら、自分たちが信仰を背教することを拒絶しました。ダニエルの三人の友人たちは、たとえ自分たちの肉体が滅ぼされることがあっても、それ以上に最後の審判においてゲヘナで滅ぼされる第二の死を恐れていたのです。ダニエルも同様に、たとえ獅子によって自分の肉体が引き裂かれることがあっても、それ以上に第二の死、ゲヘナで滅ぼされることを恐れていたのです。マタイ10:28(聖書協会共同訳)においてイエス様は弟子たちに次のように語られました。
“体は殺しても、命は殺すことのできない者どもを恐れるな。むしろ、命も体もゲヘナで滅ぼすことのできる方を恐れなさい。”
イエス様は第二の死、ゲヘナに入れられることを恐れなさいと警告されました。そして、御自身こそ十字架上で罪人の罪の問題を解決し、この恐ろしい「第二の死」から贖い出すことが出来るお方なのであります。ところがそのことを理解できなかったユダヤ人たちは、「父アブラハムよりも、あなたは偉大なのか?彼は死んだではないか。預言者たちも死んだ。あなたは自分を何者だと思っているのか?」と質問してきました。わたしたちは、ここに出てくるユダヤ人たちのようにイエス様の御言葉をただ表面的に聞くのではなく、信仰の目を持って聞か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に気づかされるのであります。
【2】. メシアを見るのを楽しみにした人々
ユダヤ人たちの「あなたは自分を何者だと思っているのか」という質問に対し、イエス様は次のようにお答えになりました。56~58節をご覧ください。
“あなたたちの父アブラハムは、わたしの日を見るのを楽しみにしていた。そして、それを見て、喜んだのである。」ユダヤ人たちが、「あなたは、まだ五十歳にもならないのに、アブラハムを見たのか」と言うと、イエスは言われた。「はっきり言っておく。アブラハムが生まれる前から、『わたしはある。』」”
56節の解釈をめぐって、神学者ごとに意見が分かれています。私もどれが正しい解釈なのかよくわかりませんでした。まず、イエス様は「わたしの日」と言われています。「わたしの日」とは、どういう意味でしょうか。普通なら、「わたしの日」、「主の日」ということで、終末論的な意味合いが含まれていると考えられます。ですから、ある人はアブラハムが死んだ後、魂が楽園に引き上げられ、そこで主にまみえたことを描写していると解釈します。そうかもしれません。ただ、次の解釈がより魅力的に感じました。すなわち、56節最後の「見て、喜んだ」というギリシア語の時制に着目しますと、過去のある時点において、完結した出来事を表しています(不定過去)。そうしますと、アブラハムは天国(楽園)で喜んだということではなく、この地上において、アブラハムの在世中のある時点で、喜んだということではないか、とある人は主張します。創世記18章でアブラハムがマムレの樫の木の下で座っていた昼の暑い時、三人の御使いたちを通して主が現れてくださいました。先週も引用した個所でありますが、三人の御使いたちとアブラハムの会話を見てみましょう。創世記の18:10~14をご覧ください。
“彼らの一人が言った。「わたしは来年の今ごろ、必ずここにまた来ますが、そのころには、あなたの妻のサラに男の子が生まれているでしょう。」サラは、すぐ後ろの天幕の入り口で聞いていた。アブラハムもサラも多くの日を重ねて老人になっており、しかもサラは月のものがとうになくなっていた。サラはひそかに笑った。自分は年をとり、もはや楽しみがあるはずもなし、主人も年老いているのに、と思ったのである。主はアブラハムに言われた。「なぜサラは笑ったのか。なぜ年をとった自分に子供が生まれるはずがないと思ったのだ。主に不可能なことがあろうか。来年の今ごろ、わたしはここに戻ってくる。そのころ、サラには必ず男の子が生まれている。」”
アブラハムと会話をしていた三人の御使いたちが、13節と14節で、突然「主(ヤハウェ)」という言葉に変わっています。アブラハムは御使いを通して主、ヤハウェを見たのであります。しかし罪人に過ぎないアブラハムが主を見るなら、本来滅びてしまう所ですが、アブラハムは無害でした。なぜでしょうか。アブラハムは、神と罪人の仲保者であられるメシアの働きをここで見ていたと考えられるのです。イエス・キリストの仲介の働きは、何もイエス様がマリアを通して受肉した時に、初めて始まったのでありません。たとえ新約時代において、その働きがより鮮明に現れたとしても、イエス様は時間が始まる前から、永遠において神と人との仲保者であられ、既に旧約時代において、仲保者としての働きを始めておられていたのです。イエス様は、御自身のことを「わたしはある」と宣言され、昨日も今日も永遠に変わることのないお方なのであります。ですから、例えば創世記15章でアブラハムが主と契約を結んでいますが、この時も、やはり罪人であるアブラハムが、直接主と対等の身分で契約を結んだということではなく、その背後には既に、仲保者の働きがあったと考えられるのであります。つまり、神と、仲保者であられる御子の間に、「贖いの契約」が永遠において締結されていて、その上で契約更新としての、アブラハム契約が恵みとして与えられたということです。罪人であるアブラハムは、そのことを重々承知していました。主が御使いを通して現われてくださったという出来事の背後に、神と罪人との間を、取り持ってくださる仲介者の働きを信仰の目で見て、理解していたのであります。従いましてヨハネの福音書に戻りまして、8:56節の「わたしの日を見るのを楽しみにしていた。」この解釈として、神と罪人の間の、唯一の仲保者の働きを見ることを、楽しみにしていたのであり、実際にアブラハムは、主と契約を結んだ際に、あるいはマムレの樫の木で主の顕現を見た際に、信仰の目で、仲保者の働きを見て喜んだのであります。アブラハムだけではありません。ダニエルも、ダニエルの三人の友人も、そして旧約聖書に出てくる全ての聖徒たちも、同じように罪人である自分たちを贖ってくださる仲保者の働きを確かに信仰の目で見て、喜んだのであります。
さて、「わたしはある」というイエス様のお言葉を聞いて、ユダヤ人たちは、石を取り上げ投げつけようといたしました。ユダヤ人たちは、「わたしはある」というイエス様の言葉の中に、御自身の神性の主張を明らかに認識していたということです。神聖冒涜だと感じて、石を取り上げたのです。ところが神様がイエス様を守ってくださいました。59 節に「イエスは身を隠して」とありますが、ギリシア語では、受動態になっています。つまり、「イエスは神によって身を隠されて(神的受動態)」神殿の境内から出て行かれたということがそこに暗示されているのです。結局、神の顕現は、神の啓示は、ユダヤ人たちから去って行ってしまいました。ここにおいて、神の顕現、神の啓示を前にした、ユダヤ人たちの態度と、アブラハムを始めとした旧約の聖徒たちの態度が、対照的に置かれているのです。旧約の聖徒たちは、メシアを信仰の目で見て喜びましたが、ユダヤ人たちは、石を取り上げ神の顕現を、神の啓示を抹殺しようとしたのであります。
【結論】
本日の内容をまとめます。神の顕現、神の啓示を前にした、ユダヤ人たちの反応と、旧約の聖徒たちの反応を見てまいりました。皆様は、神の顕現、神の啓示を前にしてどのような態度を取りたいと願うでしょうか。三人のみ使いをもてなそうとしたアブラハムの態度でしょうか。石を取り上げたユダヤ人たちの態度でしょうか。私たちは信仰に生きる者として、信仰の目で、神と罪人との間の仲保者の働きの見、喜ぶ者たちとならせていただきましょう。新約の私たちの時代において、イエス様は神の御言葉である聖書を通して私たちに現れてくださいます。この聖書を何よりも大切にし、信仰の目で日々聖書を読み、聖書を黙想する者となり、旧約の聖徒たちの信仰に倣う者として歩ませていただきま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