迫りくるイエスの帰還 다가오는 예수님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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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ヨハネによる福音書 7章25節~36節
7:25さて、エルサレムの人々の中には次のように言う者たちがいた。「これは、人々が殺そうとねらっている者ではないか。
7:26あんなに公然と話しているのに、何も言われない。議員たちは、この人がメシアだということを、本当に認めたのではなかろうか。
7:27しかし、わたしたちは、この人がどこの出身かを知っている。メシアが来られるときは、どこから来られるのか、だれも知らないはずだ。」
7:28すると、神殿の境内で教えていたイエスは、大声で言われた。「あなたたちはわたしのことを知っており、また、どこの出身かも知っている。わたしは自分勝手に来たのではない。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方は真実であるが、あなたたちはその方を知らない。
7:29わたしはその方を知っている。わたしはその方のもとから来た者であり、その方が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のである。」
7:30人々はイエスを捕らえようとしたが、手をかける者はいなかった。イエスの時はまだ来ていなかったからである。
7:31しかし、群衆の中にはイエスを信じる者が大勢いて、「メシアが来られても、この人よりも多くのしるしをなさるだろうか」と言った。
7:32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群衆がイエスについてこのようにささやいているのを耳にした。祭司長たちと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イエスを捕らえるために下役たちを遣わした。
7:33そこで、イエスは言われた。「今しばらく、わたしはあなたたちと共にいる。それから、自分をお遣わしになった方のもとへ帰る。
7:34あなたたちは、わたしを捜しても、見つけることがない。わたしのいる所に、あなたたちは来ることができない。」
7:35すると、ユダヤ人たちが互いに言った。「わたしたちが見つけることはないとは、いったい、どこへ行くつもりだろう。ギリシア人の間に離散しているユダヤ人のところへ行って、ギリシア人に教えるとでもいうのか。
7:36『あなたたちは、わたしを捜しても、見つけることがない。わたしのいる所に、あなたたちは来ることができない』と彼は言ったが、その言葉はどういう意味なのか。」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ヨハネによる福音書 7章25節~36節
다가오는 예수님의 귀환
2026년 1월 11일 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요한복음 7장 25~36절
서론
초막절에 주 예수님은 공개적으로 성전 경내에 모습을 드러내시고 외치시며, 힘껏 메시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 초막절에 말씀하신 메시지의 내용은 주 예수님과 함께하는 안식의 메시지입니다. 아브라함의 품에, 그리고 주 예수님의 품에 들어가는 영원한 안식에 관한 메시지입니다. 그것은 동시에 본래 초막절이 가리키고 있는 내용 그 자체였습니다. 초막절은, 우리가 이 땅에서의 장막을 벗었을 때 진정으로 축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요한복음을 통해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이 사람은 메시아인가
25절의 시작 부분에는「예루살렘 사람 중에서」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저자인 요한은 초막절을 축하하기 위해 먼 곳에서 온 순례자들과 구분하기 위해 일부러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를 유대인 지도자들과 산헤드린 의원들이 죽이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제 그 장본인인 나사렛 예수가 성전 경내에 나타나 당당히 성경 말씀을 가르치고 계신 것에 예루살렘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25~27절을 보십시오.
25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26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27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이 예수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라고 분명히 공언하고 있습니다. 설마, 이 사람의 말대로 산헤드린 의원들이 그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정말로 인정한 것은 아닐까?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우리는 그가 나사렛 출신 예수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 메시아가 오실 때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당시 「숨은 메시아」라는 사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메시아가 나타나실 그날까지 어딘가에 숨어 계셔서 어디서 오셨는지 아무도 모르고, 어느 날 갑자기, 센세이셔널하게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월광가면(일본)」이라는 1950년대 TV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주제가에서 「어디의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모두가 다 알고 있다」라고 합니다. 신비로운 분이신 메시아는 그런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있는 이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일 리가 없지 않겠느냐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추론을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반박하셨습니다. 28~29절을 보십시오.
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여기서 예수님은 큰 소리로, 외쳐 이르셨습니다. 여담이 되겠지만,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것은 이번이 세 번째 방문입니다. 첫 번째는 2장에 기록된 유월절 때로,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는 이른바「성전 정화」를 행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5장에 기록된 유대인의 절기 때로, 안식일에 벳세다 연못에서 38년간 병든 남자를 고치셨습니다. 이번 방문은 초막절에 방문하신 것이지만, 내년 봄 유월절까지 계속해서 예루살렘 주변에 머무르시게 되므로, 이번이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이 되게 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도 이미 막바지에 다다른 셈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목숨을 걸고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이 가지고 있던 인식을 긍정하셨습니다. 즉, 자신이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에서 태어나 나사렛에서 자랐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은, 자신이 나사렛에서 대담하게도 자신의 의지로 세상에 나와 활동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너희가 알지 못하는 분에 의해 보내심을 받았기에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신 분이시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참되신 분」이란 「숨겨지지 않으신 분」, 「덮여 있지 않으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그토록 존재가 확실하신 분, 곧 하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죄 때문에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이 하늘의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음을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전에도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한 분임을 밝히셨습니다. 예를 들어, 5:17에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셨고, 또 5:22~23에서는「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현대에 같은 말씀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현대 정신과 의사는 그를 정신병자로 진단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할 수 없습니다. 이 점은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분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을 것인지, 아니면 악령에 사로잡힌 미친 정신병자로 여길 것인지, 우리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잡으려 했지만, 손을 댈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군중 가운데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무리의 목소리를 들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냈습니다. 아랫사람들은 성전 경비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성전 경비대는 레위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어서 33절을 보십시오.
(2) 예수님의 귀환
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여기서 성전 경비대가 예수님께 손을 대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저자인 요한은, 30절에서「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라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때」란 무엇일까요? 33절을 보면, 그의 때란, 예수님께서 자신을 보내신 분께로 돌아가시는 때라고 생각됩니다. 「돌아가신다」는 것은 본래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의 로고스로 하늘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육신을 취하시고 인간으로 태어나 이 세상에 보내지셨습니다. 이제 구세주로서의 사역을 이루시고 다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우편 보좌로 올라가려 하시는 것, 바로 그 일을 「돌아가신다」는 말이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어서 34절을 보십시오.
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나 있는 곳」이란 예수님께서 앉으실 하나님의 우편 보좌를 가리킵니다. 거기에 「너희는 오지도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죄 사함을 얻을 기회는 지금 이 짧은 시간 동안에만 주어집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의 생을 다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죽어서 무서운 음부 속에서 회개하려 해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죽어서 무서운 음부 속에서 구세주를 찾으려 해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은혜의 때인 지금, 하나님의 부르심의 말씀에 응답하여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어서 35절입니다.
35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이것은 그리스인들 사이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 이른바「디아스포라」를 가리킵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유대교의 세 절기 때면 먼 이국 땅에서 예루살렘으로 순례하러 왔습니다. 본토 사람들은 그 디아스포라를 다소 얕보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본고장 이스라엘에서 상대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이스라엘을 떠나 이방 땅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 사람들을 상대하겠다는 말인가?」 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터무니없고, 완전히 어리석은 헛소리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이 말은 요한복음을 읽는 우리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예언의 말씀처럼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이 부어지자 제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유대, 사마리아를 비롯해 땅 끝까지 복음을 가지고 선교하러 나갔습니다. 초기에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유대인들에게 박해받고 추방당하게 되면서 결국 복음은 그리스인들 사이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에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조롱 섞인 말은 비아냥이었지만, 동시에 그들 자신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 즉 「하나님의 우편」에 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인 제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은 요한복음 다른 구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24절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17장
24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게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제자들을 위해 중보해 주시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이 계신 곳에 제자들이 함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서, 창조 이전부터 아들에게 주신 영광을 제자들이 분명히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하십니다. 이 말씀은 현대에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 교회를 위한 중보기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다하고 하늘에 들어갈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중보하여 기도해 주시고 계십니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4:1~3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14장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은 우리 교회보다 먼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 세상에서의 생을 다한 후, 그리스도께서 높이 올리신 하나님의 우편 자리에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초막절이 가리키는 은혜는 바로 이것입니다. 초막절은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지낸 임시 천막 생활을 그리워하며 기념하는 동시에,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리우셔서 돌아가신 그곳에 우리 교회도 함께 있게 될 것, 믿는 자들에게 지상의 임시 거처 생활을 마치고 예수님과 영원히 살 안식의 장소가 마련되어 있음을, 그 은혜를 기념하는 것이 초막절입니다.
결론
오늘의 내용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돌아가실 때가 다가오자, 예수님은 초막절이 한창일 무렵 큰 소리로, 외치시며 메시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내용은 자신이 메시아이시며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심판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당분간 사람들은 복음의 부르심을 계속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더 이상 회개하려 해도 회개할 수 없는 때가 올 것입니다. 더 이상 구세주를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때가 올 것입니다. 지금 이 은혜의 때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부르심의 말씀에 응답하며, 예수님과 영원히 살 안식의 장소가 마련되어 있음에 위로를 받으며, 남은 지상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도록 합시다.
【序】
仮庵の祭りで、主イエスは公に神殿の境内に姿を現され、大声で力の限りメッセージをお語りになられました。今回、仮庵の祭りで語られたメッセージの内容は、主イエスと共にある安息のメッセージです。アブラハムの懐に、そして主イエスの懐に入れられる永遠の安息についてのメッセージであります。それは同時に、本来、仮庵の祭りが指し示している内容そのものでありました。仮庵の祭りとは、私たちがこの地上での幕屋を脱いだ時に、真にお祝いすることが出来るのであります。本日もヨハネの福音書から共に御言葉の恵みに与りたいと願います。
【1】. この人はメシアか
25節の冒頭には「エルサレムの人々」という言葉が出てきます。著者であるヨハネは、仮庵の祭りを祝うために遠くからやって来た巡礼者たちと区別するために、わざわざ「エルサレムの人々」という言葉を使用しているように思われます。エルサレムの人々は、肌感覚で分かっていました。ナザレのイエスをユダヤ当局者たち、並びにサンヘドリンの議員たちが、殺そうとしていたことを、であります。今や、その張本人であるナザレのイエスが、神殿の境内に現れ、正々堂々と聖書の御言葉を教えておられることにエルサレムの人々はびっくりしたのであります。25~27節をご覧ください。
“さて、エルサレムの人々の中には次のように言う者たちがいた。「これは、人々が殺そうとねらっている者ではないか。あんなに公然と話しているのに、何も言われない。議員たちは、この人がメシアだということを、本当に認めたのではなかろうか。しかし、わたしたちは、この人がどこの出身かを知っている。メシアが来られるときは、どこから来られるのか、だれも知らないはずだ。」”
彼らはびっくりしました。このイエスという男は、自分が神と等しい者であるということをはっきりと公言しています。もしや、この男の言う通り、サンヘドリンの議員たちは彼がメシアだということを、本当に認めたのではないだろうか。いや、いや、そんなはずはない。我々は、彼がナザレ出身のイエスであるということをはっきりと知っているが、メシアが来られる時は、どこから来られるのか、誰も知らないはずだからだと言うのであります。これはどういうことかと言いますと、「隠れメシア」という思想が当時あったと言われています。それは、メシアのその現れの日までどこかに隠されていて、どこから来たのか誰にも分からず、ある日、忽然とセンセーショナルに姿を現すというものです。昔、月光仮面というのがありました。主題歌で「どこの誰かは知らないけれど、誰もがみんな知っている」です。神秘的なお方であるメシアとは、そのような感じだったのだと思います。ですから我々が小さい時から良く知っている、このナザレのイエスがメシアのはずがないではないかと、イスラエルの人々は自分たちの推論を打ち消しているのです。それに対してイエス様は反論されました。28~29節をご覧ください。
“すると、神殿の境内で教えていたイエスは、大声で言われた。「あなたたちはわたしのことを知っており、また、どこの出身かも知っている。わたしは自分勝手に来たのではない。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方は真実であるが、あなたたちはその方を知らない。わたしはその方を知っている。わたしはその方のもとから来た者であり、その方が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のである。」”
ここで、イエス様は大声で、力の限り語られました。余談になりますが、ヨハネの福音書の中でイエス様がエルサレムに訪問されるのは、今回で三度目の訪問となります。一度目は2章に記されている過越しの祭りの時で、イエス様は神殿から商人を追い出すいわゆる「宮清め」をなされました。二度目は5章に記されているユダヤ人の祭りの時で、安息日にベトザタの池で38年間、病にあった男を癒されました。今回の訪問は、仮庵の祭りに訪問されている訳ですが、来春の過越しの祭り迄、継続してエルサレム周辺に滞在されることになるため、今回がイエス様にとって最後のエルサレム訪問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イエス様の公生涯も既に終盤に差し掛かっている訳です。従いましてイエス様は、命がけで大切なメッセージ語ったのだと思います。イエス様は、まずイスラエルの人々が持っていた認識を肯定されました。すなわち、御自身がヨセフとマリアの家庭に生まれ、ナザレで育ったという事実です。しかし、その次の「わたしは自分勝手に来たのではない」という言葉は、御自身がナザレから大胆にも自分の意志によって世に出て活動をし始めた訳ではない。あなた方の知らない方によって遣わされたので、このような活動をしているのだと言っているのです。「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方は真実である」とイエス様は言われました。「真実」とは、「隠されていない」「覆いがされていない」という意味です。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方とは、それほどまでにその存在が確かな方、神であるにも拘わらず、あなた方は、罪のゆえにその方を知らないと言っておられるのです。このように御自身が天の神様から遣わされたことをはっきりと宣言なされました。イエス様は以前にもご自身が神と等しい者であることを明らかにされました。例えば、5:18では、「わたしの父は今もなお働いておられる。だから、わたしも働くのだ。」と語られましたし、また5:22~23では、「父はだれをも裁かず、裁きは一切子に任せておられる。すべての人が、父を敬うように、子をも敬うようになるためである。子を敬わない者は、子をお遣わしになった父をも敬わない。」と語られました。もし、現代において同じように語る人がいたなら、現代の精神科の医者は、狂気じみた精神病患者であると診断を下すことでしょう。従いまして、私たちはイエス様に対し、中立な態度を取ることは決して出来ないのであります。このことは以前にもお話ししましたが、この方が本当に神の子であることを信じるのか、或いは、悪霊に取りつかれている狂気じみた精神病患者として見做すのか、私たちは選択を迫られているのです。人々はイエス様を捕えようとしましたが、手をかける者はいませんでした。しかし、群衆の中にはイエス様を信じる者が大勢現れました。彼らは「メシアが来られても、この人よりも多くのしるしをなさるだろうか」と言ったのであります。そのような群衆の声を聞いた祭司長たちと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イエス様を捕えるために下役たちを遣わしました。下役たちとは神殿警備隊のことを指していると思われます。当時神殿警備隊は、レビ人によって構成されていたと考えられています。続いて33節をご覧ください。
【2】. イエスの帰還
“そこで、イエスは言われた。「今しばらく、わたしはあなたたちと共にいる。それから、自分をお遣わしになった方のもとへ帰る。”
ここで神殿警備隊がイエス様に手をかけなかった理由について、著者であるヨハネは、30節において「イエスの時はまだ来ていなかったから」と説明していました。「イエスの時」とは、何なのでしょうか。33節を見ますと、イエスの時とは、イエス様が自分をお遣わしになった方のもとへ帰る時であると考えられます。「帰る」ということは、本来イエス様はその場所におられたと言うことです。神の御子であられるイエス様は、もともと神のロゴスとして天におられました。ところが今から約2,000年前に、肉を取られ人間としてお生まれになられ、この世に遣わされたのです。今や救い主としての働きを成し遂げ、再び天の神の右の座に上げられようとしていること、そのことを「帰る」という言葉が意味していると思われます。続いて34節をご覧ください。
“あなたたちは、わたしを捜しても、見つけることがない。わたしのいる所に、あなたたちは来ることができない。”
これは、どういう意味でしょうか。「わたしのいる所」とは、イエス様が挙げられることになる、神の右の座であります。そこに「あなたたちは来ることができない。」そう言っているのです。つまり、この言葉はイエス様を信じようとしない者たちに対する裁きの言葉と考えられます。イエス様を信じ、悔い改めて、罪の赦しを得られるチャンスは、今しばらくの間に限られています。人は誰でも、この世での生を全うし、死を迎えることになりますが、死んでから恐ろしい陰府の中で悔い改めようとしても、時既に遅しであります。死んでから恐ろしい陰府の中で救い主を捜そうとしても時既に遅しであります。恵みの時である今、神の招きの言葉に応答し、イエス様を信じ受け入れるべきなのです。続いて35節です。
“すると、ユダヤ人たちが互いに言った。「わたしたちが見つけることはないとは、いったい、どこへ行くつもりだろう。ギリシア人の間に離散しているユダヤ人のところへ行って、ギリシア人に教えるとでもいうのか。”
これは、ギリシア人の間に離散しているユダヤ人、所謂「ディアスポラ」のことを指しています。ディアスポラの人々はユダヤの三大祭りの時には、遠い異国の地からエルサレムに巡礼するためにやって来ていました。本土の人々は彼らディアスポラを少し下に見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イエス様を信じないユダヤ人たちは、次のように思ったのでしょう。「本家本元のイスラエルで相手にされなくなったからといって、イスラエルを出て異国の地に散らされているディアスポラの人間を相手にするということなのか。」彼らにとってイエス様のお言葉は、荒唐無稽であり、全くもって愚かな戯言であるというふうに聞こえたのです。しかし、ユダヤ人のこの言葉は、ヨハネの福音書を読む私たち読者には、むしろ預言の言葉のように響いてきます。と言いますのは、イエス様が天に昇られて、その後五旬節に聖霊が注がれた後、弟子たちは聖霊に満たされ、ユダヤ、サマリヤをはじめ、地の果てにまで、福音を携えて宣教に出て行くのですが、初期の頃は、ユダヤ人のシナゴーグで福音を語っていました。しかし、ユダヤ人たちによって迫害され、追放されるようになり、結果的に福音は、ギリシア人の間に離散しているディアスポラに伝えられるようになったからです。ユダヤ人の嘲りの言葉は、皮肉でありますが、自分たちに対する裁きの預言でもあったのです。
このようにイエス様を信じないユダヤ人たちは、イエス様のいるところ、即ち「神の右の座」に来ることは出来ないということが分かりましたが、それでは、イエス様を信じ、受け入れた弟子たちはどうなるのでしょうか。イエス様は、ヨハネ福音書の他の箇所で次のようにおっしゃっています。ヨハネ17:24をご覧ください。
“父よ、わたしに与えてくださった人々を、わたしのいる所に、共におらせてください。それは、天地創造の前からわたしを愛して、与えてくださったわたしの栄光を、彼らに見せるためです。”
これは、イエス様が父なる神に弟子たちをとりなしてくださっている場面です。ここでイエス様は御自身がおられるところに、弟子たちが、共にいるようにさせてください。神の右の座で、創造の前から御子にお与えくださった栄光を、弟子たちがはっきりと見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してくださいと祈っています。この言葉は、現代におけるキリストの体である私たち教会に対する執り成しの祈りでもあります。私たちが、この世の生を全うし、天に入れられるように、イエス様は執り成して祈ってくださっているのです。また違う場面では、弟子たちに次のようにも言われました。14:1~3をご覧ください。
“心を騒がせるな。神を信じなさい。そして、わたしをも信じなさい。わたしの父の家には住む所がたくさんある。もしなければ、あなたがたのために場所を用意しに行くと言ったであろうか。行ってあなたがたのために場所を用意したら、戻って来て、あなたがたをわたしのもとに迎える。こうして、わたしのいる所に、あなたがたもいることになる。”
イエス様は、私たち教会に先立って天に上げられました。私たち教会は、この世での生を全うした後、キリストが挙げられた神の右の座に共にいるようにされるのです。そして、仮庵の祭りが指し示している恵みとは、まさにこのことであります。仮庵の祭りとは出エジプトをしたイスラエルの民が荒れ野で仮の幕屋生活を懐かしく思い起こしたことをお祝いすると同時に、イエス様が天に上げられ、帰還されたその場所に、私たち教会も共にいることになること、信じる者たちに、地上の仮住まいの生活を終え、イエス様と永遠に生きる安息の場所が備えられていること、その恵みをお祝いするのが仮庵の祭りなのであります。
【結論】
本日の内容をまとめます。イエス様の天への帰還が迫る中、イエス様は仮庵の祭りの半ば頃、大声で力の限りメッセージをお語りになられました。その内容は、御自身がメシアであり、父なる神から遣わされたことについてです。そして同時に、イエス様を信じないユダヤ人の裁きについても語られました。今しばらくの間、人々は福音の招きの言葉を聞き続けることが出来るでしょう。しかし、時が来ると、もはや悔い改めようとしても、悔い改めることができない時がやって来るのです。もはや救い主を捜そうとしても、捜すことができない時がやって来るのです。今この恵みの時に、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を受け入れ、招きの言葉に応答し、イエス様と永遠に生きる安息の場所が備えられていることに慰めを受けながら、残された地上の営みを重ねていく者たちとならせていただきま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