約束の地に入ったなら 내가 주어 살게 할 땅에 들어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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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説教
- 川栄智章 牧師
- 聖書 民数記 15章1節~21節
15:1主はモーセに仰せになった。
15:2イスラエルの人々に告げてこう言いなさい。わたしが与える土地にあなたたちが行って住むとき、
15:3特別の誓願を果たすため、あるいは随意の献げ物をささげるとき、または祝日に、牛もしくは羊の群れから取って焼き尽くす献げ物あるいは和解の献げ物とし、燃やして主にささげる宥めの香りとするときには、
15:4奉納者は十分の一エファの上等の小麦粉に四分の一ヒンのオリーブ油を混ぜた穀物の献げ物を主に対する献げ物としてささげる。
15:5また、焼き尽くす献げ物あるいは和解の献げ物に加え、小羊一匹につき四分の一ヒンのぶどう酒をぶどう酒の献げ物としてささげる。
15:6雄羊の場合には、十分の二エファの上等の小麦粉に三分の一ヒンのオリーブ油を混ぜた穀物の献げ物と、
15:7三分の一ヒンのぶどう酒をぶどう酒の献げ物として主にささげて、宥めの香りとする。
15:8特別の誓願を果たすため、あるいは和解の献げ物として若い雄牛を焼き尽くす献げ物あるいはその他のいけにえとして主にささげるときには、
15:9若い雄牛に加えて、十分の三エファの上等の小麦粉に二分の一ヒンのオリーブ油を混ぜた穀物の献げ物と、
15:10二分の一ヒンのぶどう酒をぶどう酒の献げ物としてささげる。それは、燃やして主にささげる宥めの香りである。
15:11雄牛一頭、あるいは雄羊、小羊、子山羊それぞれ一匹について、以上のようにささげる。
15:12すなわち、あなたたちのささげる数に応じて、一匹ごとに、その数に応じて以上のようにささげる。
15:13土地に生まれた者はすべて、以上述べたように、燃やして主にささげる宥めの香りをささげる。
15:14あなたたちのもとに寄留する者や何代にもわたってあなたたちのもとに住んでいる人も、燃やして主にささげる宥めの香りをささげるときには、あなたたちの場合と同じようにする。
15:15会衆は、あなたたちも寄留者も同一の規則に従う。これは代々にわたって守るべき不変の定めである。あなたたちも寄留者も主の前には区別はない。
15:16あなたたちも、あなたたちのもとに寄留する者も、同一の指示、同一の法に従わねばならない。
15:17主はモーセに仰せになった。
15:18イスラエルの人々に告げてこう言いなさい。わたしが導き入れる土地にあなたたちが入り、
15:19そこから得た糧を食べるようになるときには、その一部を献納物として主にささげなさい。
15:20初物の麦粉で作った輪形のパンを献納物とし、麦打ち場からの献納物と同じように、それをささげる。
15:21あなたたちは、初物の麦粉で作ったものの一部を代々にわたって献納物として主にささげねばならない。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民数記 15章1節~21節
내가 주어 살게 할 땅에 들어가서
2026년 1월 4일 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민수기 15장 1~21절
서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 말씀은 민수기에 일관되게 등장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민수기는 예배에 관한 규정이 세세히 지시된 책으로, 현대의 예배 지침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되」라는 문구는 민수기 전체에 관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이 일시적으로 사라지는 부분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오늘 성경 구절 바로 앞인 민수기 13장, 14장입니다. 거기에는 무엇이 기록되어 있느냐 하면, 가데스바네아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데스바네아는 시내산(즉 호렙산)에서 걸어서 11일 거리에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냐 하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이 불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올라가기를 주저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직전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냈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이 부정적인 보고를 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불신앙에 빠져 그 자리에서 울부짖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집니다.「앞으로 38년 동안, 즉 처음 시내산에서의 2년 체류 기간을 포함하면 40년 동안, 너희는 광야를 방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신앙을 행한 첫 세대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는 심판입니다. 이 하나님의 심판 말씀을 들은 순간, 일부 백성은 후회하며 억지로 가나안 땅을 공격하려 했지만, 억지로 공격하려 했던 그들과는 주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아말렉 사람과 가나안 사람에게 패배하여 호르마까지 패주하는 비참한 처지를 겪게 되었습니다. 14:45에 나오는 호르마라는 지명의 의미는 「파멸」이나 「추방」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백성이, 호르마까지 패주했다는 매우 상징적인 경험을 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도 당시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죄나 어리석음이 있지 않을까요?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스라엘 백성과 마찬가지로 우여곡절을 겪으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죄를 범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읽는 15장을 보면 민수기의 어조가 변화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2026년도 첫 예배인 만큼 헌금에 관한 설교가 될 것입니다. 함께 민수기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내가 주어 살게 할 땅에 들어가서
2~3 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는 내가 주어 살게 할 땅에 들어가서
3 여호와께 화제나 번제나 서원을 갚는 제사나 낙헌제나 정한 절기제에 소나 양을 여호와께 향기롭게 드릴 때에
여기에는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면, 이러저러한 제물을 주님께 드리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죄를 지은 이스라엘과 여전히 함께 계시며, 모세를 통해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3절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께 드리는 제물이 「향기」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당시 세상에서 이교 신들에게 드리는 제물은 보통 신들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한 「식량 공급」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드리는 제물은 속죄라는 관점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즉, 주 하나님께서는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백성에게 섬김을 받으실 필요가 전혀 없으십니다. 그분 스스로 완전히 충만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화해의 향기」를 요구하시는 것은 죄인인 백성과의 교제를 간절히 원하시며, 그 교제를 방해하는 죄를 정결하게 하기 위한 제물을 규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가데스바네아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큰 죄를 범했더라도, 주님은 노하시는 데 더디신 분이시며, 이스라엘의 죄가 용서받는 그 길을 제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4절 이후에는 구체적으로 제물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은 아직 한참 먼 일이지만, 주님께서는 굳이 이 시점에서 백성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봉헌자가 어린 양이나 숫양, 혹은 수소를 바칠 경우, 그것들과 함께 바쳐야 할 밀가루와 올리브 기름, 포도주의 양이 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 양을 드릴지, 숫양을 드릴지, 수소를 드릴지는 자발적인 헌물의 경우 각자의 경제적 사정에 따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가장 작은 어린 양을 드릴 경우에는 그에 따라 밀가루와 기름과 포도주의 양도 적게 드려도 되지만, 가장 큰 수소를 드릴 경우에는 그에 따라 밀가루와 기름과 포도주의 양도 가장 많이 드려야 했습니다. 신공동역 성경(일본어성경) 말미에 도량형과 화폐 표가 있으니, 거기에 따르면 1에파는 23리터라고 합니다. 이를 무게로 환산하면 약 20킬로그램 정도 됩니다. 또한 1힌은 3.8리터이며, 6힌이 1에파와 같은 양이므로, 이를 바탕으로 계산하면 가장 작은 어린 양을 바칠 때에는 어린 양과 함께 밀가루 약 2.3리터(≒ 무게로 약 2kg), 그리고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가 각각 약 0.95리터씩 바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광야에서는 하늘에서 내린 만나와 그들의 소중한 가축만이 유일한 식량원이었을 테니, 애굽 생활을 알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밀가루나 올리브 기름, 포도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38년 후, 이스라엘 백성이 반드시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을 내다보시며 이런 규정을 주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반드시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이라는 보증이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주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선물로 마련해 주신 비옥한 땅, 풍성한 농작물을 맺는 땅으로 반드시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동시에 이 헌물의 규정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첫 세대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전해졌습니다. 그들은 이 가르침을 어떻게 들었을까요? 아마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마음의 아픔을 느끼며 들었을지도 모릅니다.「다음 세대는 들어가지만, 우리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이 헌물을 우리는 드릴 수 없다.」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다.」 가데스바네아에서의 자신들의 불순종이 정말로 후회스러웠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악됨, 자신의 교만이 날마다 떠올랐을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한 사람, 또 한 사람 하늘로 소환되어 가는 가운데, 그들은 다음 세대인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의 규정을, 모세가 전한 그대로 전해 나갔을 것입니다.
(2)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거제로 드리라
계속해서 15:18~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8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인도하는 땅에 들어가거든
19 그 땅의 양식을 먹을 때에 여호와께 거제를 드리되
20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거제로 타작 마당의 거제 같이 들어 드리라
21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대대에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
여기에 기록된 헌물은, 성전이나 성소에 가져가는 헌물이 아니라 자발적인 헌물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대인의 전통으로, 가정 주부가 떡을 만들 때 밀가루 한 줌을 주님께 바치기 위해 제단으로 삼은, 난로 안에 던져 넣음으로써 부엌이, 하나님의 집이 된다는 생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제물이 가정 부엌 수준에서도 이루어지고, 작은 예배가 주님께 드려졌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그렇다 치고, 이 구절에서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처음 익은 곡식」이라는 표현입니다. 「처음 익은 곡식」이란 그 해에 처음 수확된 것으로, 가장 좋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출 23:19). 그 가장 좋은 수확물로 가루 떡을 만들어 대대로 주님께 드리라 하십니다. 더 나아가 성경은 무엇보다 수확물뿐만 아니라 가축이든 이스라엘 백성이든 첫 태어난 자는 모두 주님께 드려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애초에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레위인이 예배 봉사자로 세워지게 된 이유는 모든 처음 태어난 자 , 즉 첫 열매가 주님께 드려져야 한다는 데 기인했습니다. 민수기 8:17~18을 보십시오.
민수기 8장
17 이스라엘 자손 중에 처음 태어난 것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내게 속하였음은 내가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태어난 자를 치전 날에 그들을 내게 구별하였음이라
18 이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 레위인을 취하였느니라
여기에 기록된 바와 같이, 레위인이라는 지파가 이스라엘 전체의 예배 봉사자로 세워진 그 이유는, 원래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첫째 아들을 주님의 것으로 삼아야 했으나, 그 대신 레위인이 세워졌고, 더욱이 그들 가운데서 아론의 가계를 잇는 제사장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 하나님께서는 왜 수확의 첫 열매나 맏아들, 레위인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주 하나님을 달래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죄가 있어 주와 함께 걸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가나안 원주민과 전혀 다름없이 주님 앞에 완전한 죄인이었고, 멸망당해도 마땅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처음 태어난 자가 제물로 주께 드려짐으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 전체가 거룩하게 구별된 것으로 여기시고, 자신의 백성으로 여기십니다. 그것과 전혀 마찬가지로, 밀과 보리의 첫 열매가 각각 주께 드려짐으로 하나님께서는 그 뒤를 잇는, 그해 남은 모든 수확물도 거룩하게 구별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첫 열매와 그 뒤를 잇는 것 사이의 연대성을 주님께서는 분명히 보시고 계십니다. 이 첫 열매의 헌물은 시대가 흐르면서 자발적으로 드리는「십일조」라는 개념으로 변화해 갔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당시 사람들이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셨습니다. 마태복음 23:23을 보십시오.
마태복음 23장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율법학자와 바리새인들의 십일조 헌물이 예수님께 거부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십일조를 바치는 것보다 율법에서 가장 중요한「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그러한 열매가 율법학자와 바리새인들에게 맺히지 않았다고 단정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십일조 헌금, 그 자체를 부정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십일조, 즉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의 중요성을 긍정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십일조 헌금은 사실 수입이 많은 사람에게도, 수입이 적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부담스러운 금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래 헌금이라는 것은 이 「부담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앞서 예로 든 것처럼, 헌물을 드렸는데도 하나님께서 그 헌물을 받아들이지 않으신 사례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규정을 따라 가장 좋은 것을 따로 떼어 드려야 하며, 자신이 부담되지 않을 정도의 남은 것의 헌물로는, 하나님께서 받아주시지 않으실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상의 제물, 첫 열매를 드린다면 그 뒤를 잇는 것들도 거룩하게 구별되고 축복받는다는 신학적 원리는 오늘날 신약 시대에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원리가 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께 드리는 최상의 제물이시며, 첫 열매로 드려지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을 보십시오.
고린도전서 15장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도다
여기에는 예수님께서 첫 열매가 되셨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보다 앞서 죽음과 죄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위한 맏아들이자 첫 열매로서 드려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도 첫 열매이신 예수님을 따라 죽음과 죄의 권세를 이기고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이 보장된 것입니다.
결론
오늘의 내용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평소 드리는 십일조 헌금은 첫 열매의 헌물이며, 우리의 신앙 고백이라는 점을 오늘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자발적으로 첫 열매를 드림으로써, 이어지는 수확물 전체가 거룩하게 되고 축복받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드렸듯이,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수입의 첫 열매, 즉 가장 좋은 것을 헌금으로 따로 떼어 주님께 드림으로써, 우리는 수입 전체가 거룩하게 되고 축복받는다는 그런 믿음을 고백해 나가야 합니다. 이는 동시에 마지막 날의 부활에 참여한다는 믿음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십일조를 드리고, 그 헌금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때, 우리 안에 기쁨과 감사가 넘쳐흐르게 됩니다.
【序】
「主はモーセに仰せになった。」この言葉は、民数記に一貫して出てくる御言葉でございます。民数記とは、礼拝に関する規定が細かく指示されている書物であり、まさに現代における礼拝指針書であると言えるでしょう。ですから「主はモーセに仰せになった。」というフレーズは、民数記全体に貫かれているのです。ところが、このフレーズが一時的になくなってしまう個所が何か所かありまして、そのうちの一箇所が、本日の聖書個所の直前である民数記13章、14章でございます。そこには何が書かれているのかと言いますと、カデシュ・バルネアの事件が書かれています。カデシュ・バルネアとは、シナイ山(即ちホレブ山)から歩いて11日の道のりにある場所ですけれども、そこで何が起こったのかと申しますと、神の約束の御言葉に対し、イスラエルの民が不従順になり、カナンの地に攻め上ることを躊躇するという事件が起こりました。いざ、カナンの地に攻め上る前に、12人の偵察隊を送ったのですが、ヨシュアとカレブを除いて10人の偵察隊が否定的な報告をしたため、イスラエルの民は不信仰になり、その場に泣き崩れました。そこで神様の裁きが下されます。「向こう38年間、つまり最初のシナイ山での2年の滞在期間を含めると40年間、あなた方は荒れ野を彷徨うことになるだろう。そして、不信仰を働いた第一世代の者たちは、カナンに入ることができないだろう」という裁きです。この神の裁きの言葉を聞いた瞬間、一部の民は後悔し、強引にカナンに攻め上ろうとしますが、強引に攻め上ろうとした彼らとは、主は共におられなかったため、アマレク人とカナン人に撃破され、ホルマまで敗走させられるという、憂き目にあったのです。14:45に出てきますホルマという地名の意味は、「破滅」とか、「追放」という意味です。神様に不従順だった民は、ホルマまで敗走したという、大変象徴的な経験をしたのであります。私たちの中にも、当時のイスラエルの民のような罪や愚かさがあ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私たちの信仰生活とは、イスラエルの民と同じように、紆余曲折をしながら、歩んでいくのであります。時には失敗し、時には罪を犯してしまうこともあるでしょう。しかし、本日の15章と読みますと、民数記のトーンが変化していることに気づかされます。本日は、2026年度の最初の礼拝ということで、献金についての説教となります。共に民数記の御言葉から恵みに与りたいと願います。
【1】. 約束の地に入ったなら
2~3節をご覧ください。
“イスラエルの人々に告げてこう言いなさい。わたしが与える土地にあなたたちが行って住むとき、特別の誓願を果たすため、あるいは随意の献げ物をささげるとき、または祝日に、牛もしくは羊の群れから取って焼き尽くす献げ物あるいは和解の献げ物とし、燃やして主にささげる宥めの香りとするときには、”
ここでは、約束の地カナンに入ったなら、これこれの献げ物を主に捧げるようにと書かれています。主は罪を犯したイスラエルと、なお共におられ、モーセを通して語ってくださっているのです。これはどれほど大きな恵みでしょうか。3節で注目していただきたいのは、イスラエルの民が主に捧げる供え物は「宥めの香り」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これは大変重要なポイントです。当時の世界において、異教の神々に捧げる供え物は、普通、神々の生命力を維持するための、「食糧の供給」として位置づけられていました。ところが、イスラエルの民が捧げる供え物は、贖罪という観点から、神の怒りを宥めるものとして位置づけられていたのであります。つまり、主なる神は「お腹がすいたから何か食べるものを持ってこい」と、民に仕えてもらう必要は全くありません。御自身において全く満ち足りたお方であるからです。主が「宥めの香り」を求められるのは、罪人である民との交わりを切に願われ、その交わりを妨げている罪をきよめるための献げ物を規定しておられるからです。たとえ、カデシュ・バルネアにおいてイスラエルの民が大きな罪を犯してしまっても、主は怒るのに遅いお方であり、イスラエルの罪が赦されるその道を提示してくださるお方なのです。
4節以降には、具体的に献げ物の内容が書かれています。約束の地に入れられるのは、まだ随分先のことですけれども、あえて主はこの時点で民に語ってくださっているのです。内容を要約しますと、奉納者が小羊か、御羊か、或いは雄牛を捧げる場合、それらに伴って一緒に捧げられるべき小麦粉とオリーブ油とぶどう酒の量が規定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小羊を捧げるのか、御羊を捧げるのか、雄牛を捧げるのかは、自発的な献げ物の場合、それぞれの経済的事情によって選択することが出来ます。最も小さな小羊を捧げる場合には、それに伴って小麦粉と油とぶどう酒の量も少なくて済みますが、最も大きな雄牛を捧げる場合、それに伴って小麦粉と油とぶどう酒の量も最も多く捧げ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新共同訳聖書の巻末に度量衡と通貨の表がありますので、そこを見ますと、1エファとは23リットルとあります。これを重さに還元すると約20キロほどになります。また1ヒンとは、3.8リットルで、6ヒンが1エファと同量になりますので、それに基づいて計算すると、最も小さな小羊を捧げる場合には、小羊と一緒に、小麦粉が約2.3リットル(≒重さで2キロほどです)、それにオリーブ油とぶどう酒が両方とも約0.95リットルずつ捧げなさいと規定されています。
想像してみてください。荒れ野では、天からのマナと、彼らの貴重な家畜だけが唯一の食料源であったはずですから、エジプトの生活を知らない小さな子供たちにとって、小麦粉や、オリーブ油や、ぶどう酒という概念が一体何なのか、さっぱり分からなかったことでしょう。しかし主は38年後、イスラエルの民が約束の地に、必ず入ることを見据えながら、このような規定を与えてくださっているのです。これは、イスラエルの民が約束の地に、必ず入れられるという保証にもなったことでしょう。神様との関係が回復され、主の民として、神様が賜物として備えてくださる肥えた地に、豊かな農作物をもたらす地に、導いてくださるに違いない、そんな希望を持てるように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それと同時に、この献げ物の規定は、カナンの地に入れない第一世代の人々に対しても、同じように語られました。彼らはこの教えをどのように聞いたでしょうか。もしかしたら、カナンの地に入れない者たちにとっては、心の痛みを感じながら聞いたのかもしれません。「次の世代は入れるけれど、自分たちはもう入ることができない。」「神様が求めておられる、この献げ物を自分たちは捧げることができない。」「捧げたくても、捧げられない。」カデシュ・バルネアでの自分たちの不従順が本当に悔やまれるのであります。自分自身の罪深さ、自分自身の高慢さが、日々思い起こされたに違いありません。歳月が経過していき、一人、また一人と天に召されていく中で、彼らは、次の世代である自分たちの子どもたちに、神様への献げ物の規定をモーセから語られた通り語り継いでいったと思われるのです。
【2】. 初物を献納物として捧げなさい
続いて15:18~21をご覧ください。
“イスラエルの人々に告げてこう言いなさい。わたしが導き入れる土地にあなたたちが入り、そこから得た糧を食べるようになるときには、その一部を献納物として主にささげなさい。初物の麦粉で作った輪形のパンを献納物とし、麦打ち場からの献納物と同じように、それをささげる。あなたたちは、初物の麦粉で作ったものの一部を代々にわたって献納物として主にささげねばならない。”
ここに書かれている献げ物とは、神殿や聖所に持ち込む献げ物ではなく、自発的な献げ物であった可能性があります。と言いますのは、ユダヤ人の伝統として、家庭の主婦がパンを作る時、麦粉の一握りを、主に捧げるために、祭壇に見立てた暖炉の中に投げ込み、それによって、台所が神の家になるという、そんな考え方が残っているからです。献げ物が、家庭の台所レベルにおいてもなされ、ちょっとした礼拝が主に捧げられていたのかもしれません。それはそれとして、この個所で特に注目したいのは、「初物」という言葉でございます。初物とは、その年に最初に収穫されたものであり、最も良いものと考えられていました(出23:19)。その最も良い収穫物で、パンを作って、代々にわたって主に捧げなさいと言うのです。そしてさらに言うと、何も収穫物だけでなく、家畜であれ、イスラエルの民であれ、初子はすべて主に捧げられるべきであると聖書は語ります。そもそもイスラエルの民の中から、レビ人が礼拝奉仕者として立てられるようになった理由は、初子、即ち初物が、主に捧げら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に起因していました。民数記8:17~18をご覧ください。
“イスラエルの人々のうちに生まれた初子は、人間であれ、家畜であれ、すべてわたしのものである。エジプトの国ですべての初子を打ったとき、わたしは彼らを聖別して、わたしのものとした。わたしはレビ人を、イスラエルの人々のすべての長子の身代わりとして受け取った。”
ここに書かれていますように、レビ人という部族がイスラエル全体の礼拝奉仕者として立てられたその理由とは、元来、イスラエルの民から、初子を主のものとするべきでありましたが、その代わりにレビ人が立てられ、さらに彼らの中からアロンの家系を引く祭司が立てられたという次第であります。それでは、主なる神様は、なぜ収穫の初物や初子、レビ人を、御自身のものとしなさいと言われるのでしょうか。それは、主なる神様を宥めることと関係があります。本来、イスラエルの民には、罪があり、主と共に歩むことが許されない存在であります。イスラエルの民もカナンの原住民と全く同じように、主の御前に全くの罪人であり、滅ぼされて当然の民でありました。しかし神様は、初子が献げ物として主に捧げられることにより、イスラエル12部族全体が、聖別されたと見做してくださり、御自身の民として見做してくださるのです。それと全く同じように、小麦や大麦の初物がそれぞれ主へ捧げられることにより、神様はそれに続くその年の残りの収穫物も全て聖別してくださり、祝福してくださるのです。初物と後続するものとの連帯性を、主ははっきりと見ておられるのです。この初物の献げ物は、時代が流れまして、自発的に捧げられる「十分の一の捧げもの」という概念に変化していきました。イエス様ご自身も、当時の人々が十分の一の捧げものを捧げることを、肯定的にご覧になっておられます。マタイによる福音書23:23をご覧ください。
“律法学者たちとファリサイ派の人々、あなたたち偽善者は不幸だ。薄荷、いのんど、茴香の十分の一は献げるが、律法の中で最も重要な正義、慈悲、誠実はないがしろにしているからだ。これこそ行うべきことである。もとより、十分の一の献げ物もないがしろにしてはならないが。”
これはイエス様が直接語られた言葉です。ここには律法学者とファリサイ人の、十分の一の献げ物が、イエス様に拒絶されているように見えます。十分の一を捧げることよりも、律法の中で最も重要な「正義、慈悲、誠実」をないがしろにしてはならない、そのような実が律法学者とファリサイ人に結ばれていないと断じているのです。それにも拘わらず、イエス様は十分一の献げ物、それ自体を否定し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十分の一、即ち、初物を捧げることの大切さを肯定されているのが分かります。今日、私たちが捧げている十分の一の献げ物は、実際のところ収入の多い人にとっても、収入の少ない人にも同じ様に、多少、しんどい額だと思います。しかし本来、献金というのは、この「しんどさ」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だと思います。なぜなら、聖書の中には、先ほどの例のように、献げ物をしたのに、神様がその献げ物を受け入れられなかったというケースが出てくるからであります。定められた規定に従って、最も良い物を取り分けて捧げるべきであって、自分自身が痛まない程度の、残り物の献げ物では、神様が受け入れてくださられないという事態も起こり得るのであります。最良の供え物、初物を捧げるならば、その後に続くものも、聖別され、祝福されるという神学的原則は、今日、新約時代に生きる私たちキリスト者にとっても大変重要な原則となっています。なぜなら、イエス・キリストこそ、神様への最良の供え物であり、初穂として捧げられたからであります。1コリント15:20をご覧ください。
“しかし、実際、キリストは死者の中から復活し、眠りについた人たちの初穂となられました。”
ここには、イエス様が初穂になられたとはっきりと書かれていますね。イエス様は私たちに先立って、死と罪の力に打ち勝ち、復活してくださいました。それは、私たちの長子であり、初穂として、捧げられたということが分かるのです。ですから、私たち教会も、初穂であるあるイエス様に続いて、死と罪の力に打ち勝ち、終わりの日に復活することが保証されているのです。
【結論】
本日の内容をまとめます。私たちの普段捧げている十一献金とは、初物の献げ物であり、私たちの信仰の告白であると言うことを、今日は覚えていただければと思います。旧約の時代、イスラエルの民が自発的に初物を捧げることにより、続く収穫物全体が聖別され、祝福されるという信仰をもって捧げたように、今日、私たちも神様からいただいたすべての収入の初物を、即ち最も良い物を、献金として取り分け、主に捧げることにより、私たちは、収入全体が聖別され、祝福されるという、そのような信仰を告白していきましょう。それは、同時に終わりの日の復活に与るという信仰の告白でもあるのです。私たちが真心から十一献金を捧げていき、その献金が神様に受け入れられる時に、私たちの内に喜びと感謝が満ち溢れるのであり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