刈り入れる人は報酬を受ける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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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説教
-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ヨハネによる福音書 4章31節~42節
4:31その間に、弟子たちが「ラビ、食事をどうぞ」と勧めると、
4:32イエスは、「わたしにはあなたがたの知らない食べ物がある」と言われた。
4:33弟子たちは、「だれかが食べ物を持って来たのだろうか」と互いに言った。
4:34イエスは言われた。「わたしの食べ物とは、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方の御心を行い、その業を成し遂げることである。
4:35あなたがたは、『刈り入れまでまだ四か月もある』と言っているではないか。わたしは言っておく。目を上げて畑を見るがよい。色づいて刈り入れを待っている。既に、
4:36刈り入れる人は報酬を受け、永遠の命に至る実を集めている。こうして、種を蒔く人も刈る人も、共に喜ぶのである。
4:37そこで、『一人が種を蒔き、別の人が刈り入れる』ということわざのとおりになる。
4:38あなたがたが自分では労苦しなかったものを刈り入れるために、わたしはあなたがたを遣わした。他の人々が労苦し、あなたがたはその労苦の実りにあずかっている。」
4:39さて、その町の多くのサマリア人は、「この方が、わたしの行ったことをすべて言い当てました」と証言した女の言葉によって、イエスを信じた。
4:40そこで、このサマリア人たちはイエスのもとにやって来て、自分たちのところにとどまるようにと頼んだ。イエスは、二日間そこに滞在された。
4:41そして、更に多くの人々が、イエスの言葉を聞いて信じた。
4:42彼らは女に言った。「わたしたちが信じるのは、もうあなたが話してくれたからではない。わたしたちは自分で聞いて、この方が本当に世の救い主であると分かったからです。」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ヨハネによる福音書 4章31節~42節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2025년 9월 21일 센겐다이 교회 주일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요한복음 4장 31~42절
서론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께서 대화를 나누고 계실 때, 동네에 장보러 갔던 제자들이 돌아왔습니다.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보통 랍비는 여자와 대화를 나누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상대는 유대인이 아니라, 부정하다고 여겨지는 사마리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히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라고 묻는 이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랍비여 잡수소서」라고 권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더욱 놀라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하고 서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의 양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34절부터 밝혀 나가십니다. 제자들이 알지 못했던 예수님의 양식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도 요한복음을 통해 함께 말씀의 은혜에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1) 격언의 의미가 바뀌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양식이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 일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영적인 양식, 영적인 채움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고 그 일을 이루는 것」, 이것이 예수님의 양식이라고 하셨는데, 그 내용을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두 가지 격언을 들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35~36절을 보십시오.
35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씨 뿌림과 추수 사이에는, 보통, 꼬박 네 달이나 되는, 어쩔 수 없이 그저 기다려야만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메시아이신 그분 자신이 오셨기에, 더 이상 예전처럼 네 달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추수, 또는 수확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의 「끝」「종말」을 의미합니다. 메시아의 도래로 인해, 익어 희어져 열매 맺은 이삭이 추수되어, 구원에 들어간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희어져」라는 말은 헬러어를 보면 「하얗게」또는 「빛나다」라는 의미입니다. 일본어 번역은, 그 부분이 조금 이해하기 어렵지만, 영어나 한국어 성경은 「희어진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보리는 추수 때가 되면 아름답게 하얗게 빛났습니다. 그 보리밭처럼, 지금, 아름답게 하얗게 빛나고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삯이란 「상」이나 「임금」을 의미하지만,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함께 참여하는 자는, 상 받고 임금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왜 「상」이나 「임금」이야기가 나오는 걸까요? 이는, 구원이 마치 우리의 행실이나 공로에 의한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드리고, 일단,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37~38절 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격언이 나옵니다.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라는 격언은 본래, 부정적이고 경종을 울리는 격언이었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의 저주 때문에, 하나님의 천벌 때문에, 애써 고생하며 씨를 뿌려도 소용없을 것이다, 그 열매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신명기 28:30, 미가 6:15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신명기 28
30 네가 여자와 약혼하였으나 다른 사람이 그 여자와 같이 동침할 것이요 집을 건축하여였으나 거기에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포도원을 심었느나 네가 그 열배를 따지 못할 것이며
미가6장
15 네가 씨를 뿌려도 추수하지 못할 것이며 감람 열매를 밟아도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포도를 밟아도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
이 말씀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 내리는, 하나님의 저주로 선포되었습니다. 즉, 저주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본래 있어야 할 모습이 아닌, 빗나간 상태에 빠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저주받은 상태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빗나가 있는 상태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제 메시아이신 그분 자신이 오셨기 때문에, 그 저주에서 해방되어, 그 격언이 그대로 축복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너희가 스스로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두기 위해, 내가 너희를 보냈다. 다른 사람들이 수고하고 너희는 그 수고의 열매를 누리고 있다」는 상황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메시아의 오심으로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라는 그런 복이 찾아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믿음에 의한 삯
그렇다면, 도대체 씨를 뿌리는 사람은 누구이며, 거두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단정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같은 사람이 때로는 씨를 뿌리는 사람이 되고, 때로는 거두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음 장면을 보면,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을 증언하여, 사람들이 여자의 말을 믿게 된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장면에서는, 분명히 거두는 사람은 사마리아 여자이며, 씨를 뿌리는 사람은 구약 시대의 예언자 모세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39~41절을 보십시오.
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께 왔을 때, 원래, 제자들은 그들을 거부해야 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인은 이방인과 다를 바 없었고, 유대인들은 부정한 이방인과의 교제를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방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설명이 지금 눈앞에서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마리아인들은, 평소에 흰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방금 전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바로 사마리아인들을 통해 제자들은 아름답게 추수를 기다리는 보리밭의 광경을 분명히 보았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사마리아인들이 회심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받아들이는 상황을 생생히 목격한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곳에 머물러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은, 이틀동안 그곳에 머무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예수님과의 개인적이고 친밀한 교제를 경험했음이 틀림이 없습니다. 이어서 4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사마리아 여인은, 처음에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냉대받았지만, 이제는 오히려 생명의 은인으로 진심으로 감사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세상의 구세주」를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기쁨으로 가득 찬 동네 사람들의 열기가 전해지지만, 이 구절에서 또 하나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것과, 직접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 사이에는 그 믿음의 질에,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직접 교제함으로써, 비로소 이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확신하게 되었으며, 예수님과 직접 교제함으로써 그들의 믿음이 확고하게 자리잡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처음에는, 사람이나 교회 목사님에게서 복음을 듣고, 믿음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시점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스스로 직접 성경을 읽고 성령을 통해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는 그런 믿음에 도달하고 싶습니다. 이번 달 월보에도 썼듯이, 우리는 항상 성경을 펴고 말씀 묵상의 시간을 가지도록 합시다.
여하튼 간에, 예수님이 세상의 구주이심을 알게 된 사마리아 사람들의 기쁨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경멸했기 때문에, 사마리아인들은 어쩌면 떳떳하지 못함이나 열등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열등감은 완전히 날라가 버렸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죄 많은 우리도 불쌍히 여겨 주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생수가 무궁무진하게 솟아나는, 그런 체험을 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한낮 12시쯤, 우물가에서 예수님과 교제를 나누며 체험한, 바로 그 기쁨입니다.
이 장면에서, 분명히 씨를 뿌린 사람은 구약 시대의 모세이며, 예수님께서 보내신 추수꾼은 사마리아 여자입니다. 그렇다면 여자는 하늘의 상을 받을 만한 훌륭한 행위를 한 것일까요? 그녀는 단지 예수님께 사람들을 데려왔을 뿐이 아닐까요? 애초에 그녀가 전한 증언이라는 것도, 사실은 예수님께서 그녀를 통해 말씀해주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단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달려가서, 주님께 쓰임받아, 추수꾼의 역할을 맡았을 뿐입니다. 여자는 하나님의 선교에, 주님의 싸움에, 믿음으로 참여하게 된 것에 불과합니다. 실질적으로 일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그 싸움에 참여한 자로써 풍성한 상, 풍성한 전리품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3) 거두는 자가 받는 복
종말에 사는 우리 교회도, 싸우는 교회이며, 거두는 자로서 이 세상에 보내졌습니다. 그렇다면, 그 일과 예수님의 영의 양식, 영의 충만함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아들 예수님도 사실은 아버지께 의해 이 세상에 보내졌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의 목적, 아버지의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종으로 이 세상에 보내져,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의 사역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의 교제 속에서 자신의 부르심을 항상 의식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뜻에 하나하나 순종하며 걸어가셨고, 마지막에는 우리에게 내려질 저주를 십자가의 형벌로 대신 짊어지시고 그 십자가 위에서 「테텔레스타이(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며 숨을 거두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모두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들이 아버지께로투버 그 이루신 순종에 대한 삯, 상을 받으셨다는 점입니다. 아들은 가장 낮고 가장 작은 종으로 이 세상에 보내졌으나, 모든 율법에 순종하시고 아버지의 뜻을 완전히 이루셨을 때, 아버지께서 그를 부활시키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위대한 이름을 주셨습니다. 에베소서 1:20~21절을 보십시오.
에베소서 1장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즉,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걸으신다는 것은, 하늘에서 상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영적인 양식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걸으며, 하늘에서 큰 상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너희도 자신의 부르심에 굳게 서서 순종하며 걸으라고 하십니다. 영적인 양식으로 채우라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십자가 위에서 구원의 사역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믿음으로, 순종으로 그 구원의 사역에 참여할 수는 있습니다. 그 믿음의 사역은, 우리 눈에는 결코 훌륭한 일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코 웅변적인 증거라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증언을 사용하셔서, 영혼이 거두어지는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그것은, 그분 자신이 하늘에서 큰 상을 받으신 것처럼, 예수님께 보내심을 받은 제자들도, 하늘에서 풍성한 상을 받기 위함입니다.
결론
오늘의 내용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기도 가운데 자신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소명에 대해 항상 기도하시며,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듯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 있어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바로 영적인 양식이며, 하늘에서 풍성한 상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신 지금, 우리 교회도, 예수님에 의해 이 세상에 보내졌습니다. 이 말세의 시대에 우리도 믿음으로, 뜻에 순종하는 걸음을 거듭한다면, 예수님은 연약한 우리를 통해 일하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여, 하늘에서 풍성한 상을 받는 자가 될 것입니다.
【序】
サマリアの女とイエス様が会話をしている時、町へ買い物に行っていた弟子たちが帰って来ました。弟子たちはその様子を見て大変驚きました。というのは、普通ラビは女性とは会話を交わさないものだからです。しかも相手はユダヤ人ではなく、汚れているとされているサマリア人だったからです。しかし、あえて「何をこの人と話しておられるのですか」などと質問する者はいませんでした。「ラビ、食事をどうぞ」と勧めると、イエス様は弟子たちに「わたしにはあなたがたの知らない食べ物がある」と言われました。このお言葉を聞いて、弟子たちは再び驚き「だれかが食べ物を持って来たのだろうか」と互いに言い合いました。すると、イエス様は「わたしの食べ物」とは何なのかについて、34節から解き明かされていくのであります。弟子たちが知らなかったイエス様の食べ物とは一体何だったのでしょうか。本日もヨハネの福音書を通して共に御言葉の恵みに与りたいと願います。
【1】. 諺の意味が変えられる
イエス様が言われるには、その食べ物とは、「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方の御心を行い、その業を成し遂げること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どうやら、霊的な食べ物、霊的な満たしのことを仰っているようです。「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方の御心を行い、その業を成し遂げること」、これがイエス様の食べ物だと言われるのですが、そのことをもう少し分かりやすく説明するために、当時の人々に用いられていたと思われる二つの諺を取り上げて、イエス様は弟子たちに語りかけて行かれました。新共同訳聖書で35節と37節において、二重かぎ括弧で括られた部分がその諺に該当します。最初に35~36節をご覧ください。
“あなたがたは、『刈り入れまでまだ四か月もある』と言っているではないか。わたしは言っておく。目を上げて畑を見るがよい。色づいて刈り入れを待っている。既に、刈り入れる人は報酬を受け、永遠の命に至る実を集めている。こうして、種を蒔く人も刈る人も、共に喜ぶのである。”
種蒔きと刈り入れの間には、通常、丸々四か月ほどの、なす術もなくただ待たなければならない時間がありました。ところが今やメシアである御自身が到来したために、もう、かつてのように四か月、待つ必要はない。「目を上げて畑を見るがよい。色づいて刈り入れを待っている」と言われるのです。
聖書の中で刈り入れ、或いは収穫というのは、この世の「終わり」「終末」を意味します。メシアの到来により、色づいて実った穂が刈り入れられ、救いに入れられるということを言われているのだと思います。因みに「色づいて」という言葉ですが、ギリシア語を見ますと「白く」とか「輝いて」という意味です。日本語訳は、その辺が少し分かり難いのですが、英語や韓国語の聖書は、「白くなる」と翻訳されています。大麦は刈り入れ時になると美しく白く輝きました。あの大麦畑のように、今や、美しく白く輝いていると、イエス様は言われるのです。そして「刈り入れる人は報酬を受け、永遠の命に至る実を集めている。」と言われました。報酬とは、「報い」とか、「賃金」のことですが、神の救いの御業に、共に参与する者は、報いに与る、賃金に与ると言っているのです。ここで、なぜ、「報い」とか「賃金」の話しが出てくるのでしょうか。これは、救いというものが、あたかも私たちの行いや功績によるというふうに誤解を招きかねないと思いますが、そのことにつきましては後で説明しますので、一旦、先に進みたいと思います。37~38節をご覧ください。二番目の諺が出てきます。
“そこで、『一人が種を蒔き、別の人が刈り入れる』ということわざのとおりになる。あなたがたが自分では労苦しなかったものを刈り入れるために、わたしはあなたがたを遣わした。他の人々が労苦し、あなたがたはその労苦の実りにあずかっている。」”
「一人が種を蒔き、別の人が刈り入れる」というこの諺は、本来、否定的で、警鐘を鳴らすような諺でありました。どういうことかと言いますと、神の呪いのゆえに、神の天罰のゆえに、せっかく苦労して種を蒔いても意味がないだろう。その実りを刈り取ることはできないだろうという意味です。申命記28:30、ミカ書6:15には次のような御言葉があります。ご覧ください。
申命記28:30
“あなたは婚約しても、他の男がその女性と寝る。あなたは家を建てても、住むことはできない。ぶどう畑を作っても、その実の初物を味うことはできない。”
ミカ書6:15
“お前は種を蒔いても、刈り入れることなく/オリーブの実を踏んでも/その油を身に塗ることはない。新しいぶどうを搾っても/その酒を飲むことはない。”
これらの御言葉は、イスラエルの民が御言葉に背いた時に下される、神の呪いとして語られています。つまり、呪いとは神様との関係が断絶されてしまったために、本来あるべき姿ではない、的外れな状態に陥ってしまったことを指しているのです。呪われた状態とは、イスラエルの罪のゆえに、的外れな状態にあることを意味します。ところが、今やメシアである御自身が到来したために、その呪いから解放され、その諺がそのまま祝福となると言われました。つまり「あなたがたが自分では労苦しなかったものを刈り入れるために、わたしはあなたがたを遣わした。他の人々が労苦し、あなたがたはその労苦の実りにあずかっている」という状況が訪れるということです。メシアの到来によって「種を蒔く人も刈る人も、共に喜ぶ」、そんな祝福が訪れると言うのです。
【2】. 信仰による報酬
それでは、一体種を蒔く人とは誰であり、刈り入れる人とは誰なのでしょうか。それについては、はっきり断定することは難しいのかもしれません。なぜなら、同じ人が時には種を蒔く人となり、時には刈り入れる人となる可能性があるからです。しかし次の場面を見ると、サマリアの女がイエス様を証して、人々が女の言うことを信じたという事件が起こりますが、この場面では、明らかに刈り入れる人とはサマリアの女であり、種を蒔く人とは旧約時代の預言者モーセであるというふうに考えられます。39~41節をご覧ください。
“さて、その町の多くのサマリア人は、「この方が、わたしの行ったことをすべて言い当てました」と証言した女の言葉によって、イエスを信じた。そこで、このサマリア人たちはイエスのもとにやって来て、自分たちのところにとどまるようにと頼んだ。イエスは、二日間そこに滞在された。そして、更に多くの人々が、イエスの言葉を聞いて信じた。”
サマリア人たちがイエス様のところにやって来た時、本来、弟子たちは彼らを拒絶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と言いますのは、ユダヤ人にとってサマリア人とはほとんど異邦人と変わりがなく、ユダヤ人は汚れた異邦人との交わりを極度に嫌っていたからです。しかし、弟子たちがそのようにしなかったのは、先ほど、イエス様が語られていた説明が今、目の前に現実として起こっていたからだと思われます。サマリア人は、普段、白い服を着ていました。今でもそうです。イエス様は先ほど「目を上げて畑を見るがよい。白く輝いて刈り入れを待っている。」と言われましたが、今まさにサマリア人たちを通して、弟子たちは、美しく、刈り入れを待っている大麦畑の光景をはっきりと見たに違いないのであります。弟子たちはサマリア人が回心し、イエス様をメシアとして信じ、受け入れる状況をまざまざと見せつけられたのです。それだけではありません。彼らは、イエス様が自分たちのところに留まってくれるようにと頼み込みました。イエス様は、二日間そこに滞在しました。そこで彼らはイエス様との個人的で親密な交わりを体験したに違いないのであります。続いて42節をご覧ください。
“彼らは女に言った。「わたしたちが信じるのは、もうあなたが話してくれたからではない。わたしたちは自分で聞いて、この方が本当に世の救い主であると分かったからです。」”
サマリアの女は、当初、町の人々から白い目で見られていましたが、今では逆に命の恩人として心から感謝される存在となっています。「世の救い主」を伝えてくれたからです。喜びにあふれた町の人々のボルテージが伝わってきますが、この個所からもう一つ気づかされることは、人の話を聞いてイエス様を信じるのと、自分で直接イエス様の御言葉を聞いて信じるのとでは、その信仰の質において、違いがあるということです。彼らはイエス様と直接交わることにより、初めて本当にこの方が世の救い主であることを確信したのであり、イエス様と直接、交わることによって、彼らの信仰が確固たるものとされたのであります。
私たちも最初は、人から、或いは教会の先生から、福音を教えられて、信じるということが始まるのだと思います。しかし、その時点に留まっていてはならないのであって、自分から直接聖書を読んで、聖霊を通して直接イエス様に教えていただくような、そのような信仰に達したいものであります。今月の月報にも書きましたが、私たちは常に聖書を開いて、御言葉の黙想の時を持つようにいたしましょう。
兎にも角にも、イエス様が世の救い主であることを知ったサマリア人たちの喜びとは、大変なものでありました。特にユダヤ人はサマリア人を軽蔑していましたから、サマリア人はもしかしたら後ろめたさや劣等感のようなものを感じていたのかもしれませんが、そのような引け目は完全に吹き飛んでしまい、神様がこのような罪深い私たちをも憐れんでくださったということを確信したのであります。生ける水が無尽蔵に湧き出るような、そんな体験をしました。サマリアの女が昼の12時ごろ、井戸端でイエス様と交わって体験した、あの喜びであります。
この場面において、明らかに種を蒔いた人とは旧約時代のモーセであり、イエス様に遣わされた刈り入れ人とは、サマリアの女であります。それでは女は、天の報いに与るような、立派な行いを何かしたのでしょうか。女はただ、イエス様のもとに人々を連れてきただけではないでしょうか。そもそも女の語った証しというものも、実はイエス様が女を通して語ってくださったと見ることも出来ます。女はただ、水がめをそこにおいたまま町に飛び出して行き、そして主に用いられて、刈り入れの役割を担ったに過ぎないのであります。女は神様の宣教に、主の戦いに、信仰によって参与させていただいたに過ぎないのであります。実質的に働きをなされているのは神様でありました。それにも拘わらず信仰によって、御言葉の従順によって、その戦いに参与した者として、豊かな報酬、豊かな分捕りに与らせていただいているのです。
【3】. 刈り入れる者の祝福
終末に生きる私たち教会も、戦う教会であり、刈り入れる者としてこの世に遣わされています。では、そのことと、イエス様の霊の食べ物、霊の満たしとは、どのような関係があるのでしょうか。御子イエス様も、実は御父によってこの世に遣わされました。イエス様が遣わされた御父の目的、御父の御心とは何だったのでしょうか。それは、僕としてこの世に遣わされ、そして、十字架と復活を通して救いの御業を成就するということであります。イエス様は、御父との交わりの中で御自身の召しを常に意識していました。そして御心を一つ一つ従順に歩まれ、最後には私たちに下されるはずの呪いを、十字架刑によって代わりに負ってくださり、その十字架上で「テテレスタイ(成し遂げられた)」と言われ、息を引き取られました。御父の御心を全て成遂されたということです。ここで、重要なことは、御子は御父から、その成し遂げられた従順に対し、報酬、報いを受けられたということです。御子は、最も低く、最も小さい僕としてこの世に遣わされましたが、全ての律法に従順にされ、御心を完全に成し遂げられた時、御父によって復活させられ、あらゆる名に優る偉大な名を与えられたのであります。エフェソ1:20~21をご覧ください。
“神は、この力をキリストに働かせて、キリストを死者の中から復活させ、天において御自分の右の座に着かせ、すべての支配、権威、勢力、主権の上に置き、今の世ばかりでなく、来るべき世にも唱えられるあらゆる名の上に置かれました。”
つまり、イエス様が父の御心に従順に歩むということは、天において報いを受けると言うことであります。イエス様の霊的な食べ物とは、父の御心に従順に歩み、天において大きな報いに与ることとイコールなのであります。その上でイエス様は、あなた方も自らの召しにしっかり立ち、従順に歩みなさい。霊的な食べ物で満たされなさいと言われるのです。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のように十字架上で救いの御業を成就させることなどできませんが、信仰によって、従順によって、その救いの御業に参与することは出来るのであります。その信仰の業とは、私たちの目に決して立派な働きとは言えるものではないでしょう。決して雄弁な証しとは言えないの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イエス様は、私たちの証しを用いられ、魂が刈り取られる奇跡を起こされるのです。それはご自身が天において大きな報いを受けたように、イエス様に遣わされた弟子たちも、天において豊かな報いを受けるためなのであります。
【結論】
本日の内容をまとめます。イエス様は、祈りの中で御自身が世に遣わされた召しについて常に祈りつつ、御父の御心をこの地上において成し遂げるように歩まれました。イエス様にとって、父の御心を成し遂げることこそ、霊的な食べ物であり、天において豊かな報いに与ることでありました。メシアが到来した今、私たち教会も、イエス様によってこの世に遣わされています。この、終末の時代、私たちも信仰によって、御心に従順する歩みを重ねるなら、イエス様は弱いわたしたちを通して働いてくださり、私たちは神様の御業に参与し、天で豊かな報いに与る者とされるのであり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