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しい秩序への招き 새로운 질서로의 초대
- 日付
- 説教
-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ヨハネによる福音書 2章1節~12節
2:1三日目に、ガリラヤのカナで婚礼があって、イエスの母がそこにいた。
2:2イエスも、その弟子たちも婚礼に招かれた。
2:3ぶどう酒が足りなくなったので、母がイエスに、「ぶどう酒がなくなりました」と言った。
2:4イエスは母に言われた。「婦人よ、わたしとどんなかかわりがあるのです。わたしの時はまだ来ていません。」
2:5しかし、母は召し使いたちに、「この人が何か言いつけたら、そのとおりにしてください」と言った。
2:6そこには、ユダヤ人が清めに用いる石の水がめが六つ置いてあった。いずれも二ないし三メトレテス入りのものである。
2:7イエスが、「水がめに水をいっぱい入れなさい」と言われると、召し使いたちは、かめの縁まで水を満たした。
2:8イエスは、「さあ、それをくんで宴会の世話役のところへ持って行きなさい」と言われた。召し使いたちは運んで行った。
2:9世話役はぶどう酒に変わった水の味見をした。このぶどう酒がどこから来たのか、水をくんだ召し使いたちは知っていたが、世話役は知らなかったので、花婿を呼んで、
2:10言った。「だれでも初めに良いぶどう酒を出し、酔いがまわったころに劣ったものを出すものですが、あなたは良いぶどう酒を今まで取って置かれました。」
2:11イエスは、この最初のしるしをガリラヤのカナで行って、その栄光を現された。それで、弟子たちはイエスを信じた。
2:12この後、イエスは母、兄弟、弟子たちとカファルナウムに下って行き、そこに幾日か滞在された。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ヨハネによる福音書 2章1節~12節
새로운 질서로의 초대
2025년 7월 13일 센겐다이 교회 주일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요한복음 2장 1~12절
서론
오늘은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의 이야기입니다. 주 하나님께서는 결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창세기를 보더라도 인류를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의 결혼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을 봐도 역시 신랑이신 예수님과 신부인 교회의 결혼에 대해 묘사되어 있고, 천국에서 하나 되는 은혜에 대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그리는 결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언약의 축복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언약에 따른 잔치는, 예수님의 비유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그것은 천국의 기쁨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는 이 기쁜 잔치에 초대받은 것입니다. 오늘도 요한복음을 통해 말씀의 은혜를 함께 누리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어머니와 아들의 기묘한 대화
1절 첫머리에「사흘째 되던 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난 설교에서 다섯째 날의 사건인, 나다나엘과의 만남에 대해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사흘째 되던 날, 즉 세례자 요한의 증언으로부터 시작해서 일곱째 날의 사건이 오늘 본문입니다. 일곱째 날, 이 날 예수님은 공생애에서 처음으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은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입니다. 이 혼인잔치에는 예수님의 어머니와 장남인 예수님, 그리고 제자들이 초대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결혼하는 커플을 축복하시고, 축하하시기 위해 이 혼인잔치에 참석하셨습니다. 어쩌면 어머니 마리아의 친척의 결혼식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갈릴리 가나에서 갈릴리 나사렛은 그리 멀지 않고 어머니 마리아가 잔치를 위한 주방에 관여를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의 결혼식은, 7일에 걸쳐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과 제자들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기쁨에 넘친 잔치를 함께 즐겼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포도주가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왜 포도주가 다 떨어졌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가난한 신랑 신부가 이 혼인잔치를 위한 예산을 조금 아껴서인지, 아니면 초대받은 손님 중에 엄청난 술꾼이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초대받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사람 몫의 축의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포도주란 혼인잔치의 기쁨을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혼인잔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요소였습니다. 그것이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이대로는 신랑 신부에게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첫 출발인 결혼식이 망쳐질 것이 뻔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어머니 마리아는 마음이 조급해졌을 것입니다. 무심코 아들 예수에게 혼잣말을 내뱉었습니다. 3~5절을 보시겠습니다.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어머니 마리아와 아들 예수와의 대화가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도저히 부모와 자식의 대화라고 생각할 수 없는 대화입니다. 먼저「포도주가 없다」라는 어머니가 무심코 던진 말에 예수님은 「여자여」라고 불렀습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에서 분명 예의바른 말이지만, 친어머니에게 쓰는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먹서먹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분명히 어머니의 부탁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머니가 곤란해하고 있는데,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요? 정말 기묘한 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일단 보류하겠습니다만, 여기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키워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요한복음에는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7:6)」「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7:8)」「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7:30, 8:20)」라는 말이 여러번 나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에 이르러서야 「때가 이르렀다」고 예수님은 자신의 입으로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예수님께 있어서 「내 때」는 십자가를 통한 구속 사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
이후,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십니다. 먼저 하인들에게 6개의 돌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게 하셨습니다. 「하인」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둘로스」가 아니라, 「디아코노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일꾼, 섬기는 사람, 봉사자라는 뜻입니다. 사실 「집사」라는 단어도 이 「디아코노스」에서 유래했습니다. 여기서 하인이란 아마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인들, 즉 섬기는 자들은 시키는 대로 돌항아리에 물을 아귀까지 채웠습니다. 그리고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이 「연회장」이란 이 연회를 주관하는 사회자 같은 사람을 뜻합니다. 연회장에게는 아직 포도주가 다 떨어졌다는 주방의 뒷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연회장이 포도주로 변한 물을 맛보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는 신랑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이렇게 신랑을 극찬했습니다. 이 칭찬으로 인해 혼인잔치의 분위기가 드디어 더 무르익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뭐야! 더 좋은 포도주가 준비되어 있다니!” “신랑이 얼마나 인심이 좋은 사람인가!”라고 말하며 사람들은 두 사람의 새출발을 기뻐하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을 것입니다.
9절에 「연회장은 물로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라는 주의를 주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물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이 물은 6절에 기록된 대로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사용되는 물이며, 돌로 만든 돌항아리에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식사 전에 손을 씻기 위한 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비누로 손을 씻는 느낌과는 다릅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권위가 있고, 율법과 율법에서 파생된 조상들의 전승이 유대인의 삶을 규정하고 지배했습니다. 그 규정들을 열심히 지킴으로써 세상의 죄와 더러움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청결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그 종교적 의식을 위해 식사 전에 손을 씻었습니다. 이를 위해 많은 양의 물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돌항아리 하나에는 두세 통(‘통’은 헬라어로 메트레테스로 한 통은 약 38ℓ의 양이다), 즉, 약 80ℓ 내지 120ℓ의 물을 담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큰 돌항아리들이 무려 6개나 이 연회장에 준비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돌로 만든 이유는 세균 번식을 막기 위해서 입니다. 하인들은 그 돌항아리의 아귀까지 물을 가득 채웠고, 그 많은 양의 물은 이제 최고의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이 얼마나 풍성하고 호화로운 기적입니까?
(3) 표적이 가리키는 것
자, 이 기적을 통해 첫째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주 예수님은 결코 호화로움과 부귀영화를,「그런 것은 사치다」라고 죄로 규정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금욕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호화로움과 풍부함을 스스로 누리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호화로운 기적은, 어머니의 부탁을 받고 행하신 기적이었을까요? 단지 혼인잔치 자리에서 즐거움과 기쁨의 자리를 깨뜨리지 않으려는 목적을 위해 예수님은 호화로운 기적을 행하신 것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11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더라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표적」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영어로는 sign입니다. 즉, 그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한 표적, 징조이며,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표적이 가리키는,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드러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표적, sign이 가리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모세가 애굽의 바로를 상대로 가장 먼저 행한 기적은 나일강의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나일 강을 치니, 강물이 모두 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표적도 이 모세의 기적과 동일합니다. 즉, 이스라엘의 구속은, 하나님의 백성의 구속은, 자신의 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도주는, 자신의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율법의 규정을 지켜서 정결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로고스 그 자체이신 예수님이 나타나셨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자신의 구속 사역을 통해 정결함을 얻게 된다는 것을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지금 바로 시작되었고, 구약의 질서가 아닌, 새로운 질서가 주 예수님 자신에 의해 주어졌다는 것을 주장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아까, 2:4절의 기묘한 대화를 주고 받음에 대해 잠시 보류했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자여」라는 말은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된 이래로 일관되게 마리아를 향해 사용하신 단어이며, 직접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요, 자신의 형제요, 자신의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목음 3:3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 3장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그리스도인은 주 안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하나님으로 모시고, 그리스도인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머니요, 형제요, 자매라는 뜻입니다. 이어서「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의 「내 때」는 십자가의 구속사역을 의미합니다. 이 십자가의 사역은 결코 어머니의 요청에 의해, 혹은 사람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인간 측의 요인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친히 스스로 나아가시는 길이며, 구원이란, 일방적으로 위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물을 길어온 하인들만이 자신들이 채운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신랑의 세심한 배려라고 여겨 감탄하며 즐거워했지만, 그 뒤에서 제자들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그 신적 영광은, 인간으로, 종으로, 낮은 자로 이 세상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하나님 나라의 일부분을 엿보이기라도 하듯 나타난 영광입니다. 예수님이 로고스로서 아버지와 함께 소유하셨던 그 영광의 일부분입니다. 물론 하나님 나라의 전모가 여기서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일어난 기적은, 주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다는 표적이며, 하나님 나라의 전조를 맛볼 수 있는 그런 표적이었던 것입니다. 주 예수님 안에서 율법이나 정결 규정과 같은 옛 질서는 지나가고 새로운 질서가 도래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이 새로운 질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5: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율법이나 조상들의 전승이 주장하는 낡은 규정은 예수님에 의해 폐기되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질서가 도래했습니다. 그 영광의 전모는 여전히 우리에게 숨겨져 있지만, 믿음으로 그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결론
오늘의 내용을 정리합니다. 요한복음은, 1:19절부터 본론 1이 시작되어 오늘 2:12절까지 7일에 걸친 사건으로 묶여 있습니다. 이 7일간이 어떤 한 주간이었는가 하면, 한 마디로 말해서 주 예수님을 증거하는 한 주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세례자 요한의 증언이 있었고, 그 다음 안드레와 빌립과 나다나엘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여섯째 날에 대한 기록은 없고, 일곱째 날에 예수님 자신의 간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의 일부를 보여주심으로써, 자신이 하나님 백성의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는 구세주이며, 새로운 질서를 가져오는 메시야라는 것을 주장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질서로 오늘 우리는 초대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하나님 나라의 영광의 완전한 모습을 이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는 것이 허락되었고, 이 기쁜 잔치에 영원히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습니다.
【序】
本日はガリラヤのカナで行われた結婚式のお話しです。主なる神様は結婚に関心を持っておられます。と言いますのは、創世記を見ても、一番最初に書かれている内容がまさにアダムとエバの結婚によってスタートされているからです。また黙示録を見ても、やはり花婿であるイエス様と花嫁である教会の結婚について描写されていて、天国で一つにされる恵みについて書かれているからです。それでは聖書が描く結婚とは何でしょうか。それは神と人間との契約の祝福を表しているのだと思います。とりわけ契約に伴う祝宴は、イエス様のたとえ話にもたびたび登場していますが、それは、天国の喜びを象徴しています。私たちはイエス様にあるこの喜ばしい祝宴に招かれているのです。本日もヨハネによる福音書を通して共に御言葉の恵みに与りたいと願います。
【1】. 母と子の奇妙な会話
1節の冒頭に「三日目に」とあります。前回の説教で、ナタナエルとの出会いについて第五日目の出来事を見てまいりました。それから三日目、つまり洗礼者ヨハネの証言から初めて、第七日目の出来事が本日の個所であります。第七日目、この日、イエス様は公生涯で初めて奇跡を行いました。それは結婚式の宴において水をぶどう酒に変えるという奇跡です。この婚宴にはイエス様の母と、長男であるイエス様、それに弟子たちが招かれました。イエス様は結婚するカップルを祝福し、お祝いするために、この婚宴に出席されました。もしかしたら母マリアの親族であったり、母マリアの親しい友人の結婚式だったのかもしれません。と言いますのは、ガリラヤのカナからガリラヤのナザレはそれほど離れていませんし、母マリアがおもてなしのための台所を任されているからです。当時、ユダヤの婚礼は、七日間に渡って盛大に行われました。恐らくイエス様と弟子たちも、ごちそうを食べ、ぶどう酒を飲み、喜びに満ちあふれた時間を共に過ごしていたのではと思われます。
そんな時、とんでもないハプニングが起こりました。ぶどう酒が切れてしまったのです。なぜ、ぶどう酒を切らしてしまったのか、その理由についてはっきり書かれてはいません。貧しい新郎新婦がこの婚宴のための予算を少しケチったためなのか、或いは招かれた客の中にとんでもない酒豪がいたためなのか、或いは招かれたイエス様の弟子たちが、支払うべき一人分のご祝儀をきちんと支払わなかったためなのか、よく分かりませんが、いずれにせよ、ぶどう酒とは、婚宴の喜びを象徴するようなアイテムであり、婚宴において欠かすことのできない必須の要素でありました。それを切らしてしまったのです。このままでは、新郎新婦にも恥をかかせてしまいます。何より二人の門出である、この結婚式が台無しになってしまうでしょう。そのことを知った母マリアは焦ったのだと思います。思わず息子イエスに独り言を漏らしました。3~5節をご覧ください。
“ぶどう酒が足りなくなったので、母がイエスに、「ぶどう酒がなくなりました」と言った。イエスは母に言われた。「婦人よ、わたしとどんなかかわりがあるのです。わたしの時はまだ来ていません。」しかし、母は召し使いたちに、「この人が何か言いつけたら、そのとおりにしてください」と言った。”
母マリアと息子イエスとの会話が、ここに記述されていますが、とても親子の会話と思えないような会話です。まず、「ぶどう酒がなくなりました」という母の何気ない言葉に対して、イエス様は「婦人よ」と呼びました。この言葉はギリシャ語において確かに丁寧語ではありますけれども、実の母親に向かって使う言葉ではありません。よそよそしさを感じずにはいられないのであります。さらに、「わたしとどんなかかわりがあるのです」と言っています。これは明らかに母親の頼みを拒絶しているように見えてしまいます。母が困っているのに、こんな言い方はあるでしょうか。これは一体どういうことなのでしょう。全く奇妙な会話であります。これについては一旦保留とさせていただきますが、ここで「わたしの時はまだきていません」と言われたイエス様のお言葉が、どうやらキーワードになっているようです。実は、ヨハネの福音書の中で、「わたしの時はまだきていない」とか「イエスの時はまだ来ていない」という言葉が何回も出てまいります(7:6, 8, 30, 8:20)。そして、いよいよイエス様が十字架に掛かられる直前になると「時が来た」と、イエス様はご自身の口から語られました。従いましてイエス様にとって「わたしの時」というのは、十字架による贖いの御業を指し示していると考えられるのです。
【2】. 水をぶどう酒に変える奇跡
この後、イエス様は奇跡を起こされます。まず召し使いたちに6つの水がめに水をいっぱいに入れさせました。「召し使い」という言葉は、ギリシア語で「ドゥロス」ではなく、「ディアコノス」が使用されています。これは、仕える人、奉仕者という意味です。実は「執事」という言葉も、この「ディアコノス」から生まれました。ここでの召し使いとは、恐らくイエス様の弟子たちによって主に構成されていたと思われます。召し使いたち、つまり奉仕者たちは言われた通りに、かめの縁まで水を満たしました。そしてそれを汲んで宴会の世話役のところに持って行きました。「世話役」というのは、この宴会を取り仕切っている司会者のような人を意味します。世話役には、まだ、ぶどう酒を切らしてしまったという台所の裏事情は伝わっていませんでした。世話役がぶどう酒に変わった水を味見してみた時、何が起こったでしょうか。彼は花婿を呼んで言いました。10節です。
“だれでも初めに良いぶどう酒を出し、酔いがまわったころに劣ったものを出すものですが、あなたは良いぶどう酒を今まで取って置かれました。”
と花婿を大絶賛したのです。この褒め言葉によって婚宴はいよいよ盛り上がったに違いありません。「何!もっとおいしいぶどう酒が準備されているだと!」「何と気前の良い花婿なんだ!」などと言いながら人々は、お二人の門出を喜び、心からお祝いしたことでしょう。
9節に、「このぶどう酒がどこから来たのか、水をくんだ召し使いたちは知っていたが、世話役は知らなかった」と注意書きが書かれていますが、それではこの水は一体どこから来たのでしょうか。そうです。この水とは6節に書かれている通り、ユダヤ人が清めのために用いるための水であり、石でできた水がめに蓄えられていました。簡単に言えば、食前に手を洗うための水です。しかしそれは、私たちが石鹸で手を洗う感覚とは異なります。ユダヤ人にとって、神様から授かった律法に権威があり、律法と、そして律法から派生した先祖の言い伝えがユダヤ人の歩みを規定し、支配していました。それらの規定を一生懸命に守ることによって、世の罪や汚れから自分たちを分離しよう、自分たちの清潔さを維持しようと考えました。その宗教的儀式のために食前に手を洗ったのです。そのために大量の水が用意されていました。一つの水がめには二ないし三メトレテス、つまり、およそ80ℓないし、120ℓの水を入れることが出来ます。こんなに大きな水がめが何と6つもこの宴会場に用意されていたと言うのです。石で作られていたのは、そうすることによって雑菌の繁殖を抑えるためです。召し使いたちは、その水がめに、縁いっぱいまで水に満たし、その大量の水が、今、極上のぶどう酒に変わったのであります。なんという豊かで豪華な奇跡でしょうか。
【3】. しるしが指し示すもの
さて、この奇跡を通して、第一に言えることは、主イエスは決して豪華さ、豊かさを「そんなの贅沢だ」と、罪に定めることはなかったと言うことであります。イエス様は決して禁欲主義者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むしろその豪華さ、豊かさをご自身も享受されたのであります。それでは、この贅沢な奇跡は、お母さんの御用聞きのためになされた奇跡だったのでしょうか。ただ婚宴の席において、楽しみと喜びの場を崩さないようにしようという目的のため、忖度してこのような贅沢な奇跡をイエス様は起こされたのでしょうか。もちろんそう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それは11節を見れば分かります。ご覧ください。
“イエスは、この最初のしるしをガリラヤのカナで行って、その栄光を現された。それで、弟子たちはイエスを信じた。”
イエス様のなされた奇跡のことを、ヨハネの福音書は「しるし」と表現しています。ここが非常に重要です。英語ではサインです。即ちそれは弟子たちがイエス様を信じさせるためのしるし、サインであって、イエス様は奇跡を行うことそれ自体を目的としたのではなく、しるしが指し示している、その先にあるものを明らかにさせることを目的としたのであります。それでは、そのしるし、サインが指し示すものとは一体何なのでしょうか。これについては少し考えなければなりません。旧約聖書において、モーセがエジプトのファラオに対し、一番最初に行った奇跡は、ナイル川の水を血に変えることでありました。モーセがナイル川の岸辺において、杖で水を打つと川の水はことごとく血に変わっていきました。イエス様のなされた最初のしるしも、このモーセの奇跡と同じです。つまり、イスラエルの贖いは、神の民の贖いは、ご自身の血によってなされると言うことを示しているのです。ですからぶどう酒とは、ご自身の血を表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そして、民は律法の規定を守って清められるのではなく、神の御言葉、ロゴスそのものであるご自身が現れたので、これ以降、ご自身の贖いの御業を通して清めが与えられる、そのことをイエス様は主張なさっているのです。イエス様の公生涯が今、まさに始まり、旧約の秩序ではなく、新しい秩序が主イエスご自身によってもたされた、そのことを主張なさっているのです。
先ほど、2章4節の奇妙な会話のやり取りについて一旦保留にいたしましたが、このような観点から眺めますと、その理由が分かってきます。なぜ、イエス様は母親に対し「婦人よ、わたしとどんなかかわりがあるのです。わたしの時はまだ来ていません。」という言葉を語られたのかですが、「婦人よ」という言葉は、イエス様の公生涯が始まって以来、一貫してマリアに対し使用している言葉であり、直接母と呼ぶ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これは、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にとって、弟子たち一人ひとりがご自身の母であり、ご自身の兄弟であり、ご自身の姉妹であるからです。マルコ3:35をご覧ください。
“神の御心を行う人は誰でも、私の兄弟、姉妹、また母なのだ。”
キリスト者は主にあって、天の父を神として仰ぎ、そしてキリスト者は互いに母であり、兄弟、姉妹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続きまして「わたしの時は、まだ来ていない」の、「わたしの時」とは、十字架の贖い御業のことを意味しています。この十字架の御業は、決して母の要請によって、或いは人の要請によってなされ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救いは人間の側の要因によってもたらされるものではなく、それは、主ご自身が自ら進んで進まれる道であり、救いとは、一方的に上から与えられる神の恵みであるということをイエス様は語っておられるのです。そのために、「わたしとどんなかかわりがあるのです。」と言われたのです。
イエス様の十字架の時はまだ来てはいませんが、イエス様の命令に従って水を汲んだ召し使いたちだけが、自分たちがかめに満たした水がぶどう酒に変わったという、その奇跡を体験しました。他の人々は新郎の行き届いた気配りを賞賛して盛り上がっていましたが、その背後において弟子たちは、イエス様の中に神的栄光を確かに見たのです。その神的栄光とは、人間として、僕として、低くこの世に来られたにも拘わらず、神の国のほんの一部分を垣間見せるかのように現れた栄光です。イエス様がロゴスとして父と共に所有していたあの栄光の一部分であります。もちろん神の国の全貌が、ここで明らかにされた訳ではありませんが、カナの婚礼で行われた奇跡とは、主イエスにあって、神の国が到来したというしるしであり、神の国の前味を味わうことができるような、そんなしるしであったのです。主イエスにあって律法とか清めの規定などのような古い秩序は過ぎ去り、新しい秩序がもたらされたのです。パウロは、キリストによってもたらされたこの新しい秩序について次のように語っています。2コリント5:17をご覧ください。
“だから、キリストと結ばれる人はだれでも、新しく創造された者なのです。古いものは過ぎ去り、新しいものが生じた。”
律法や先祖の言い伝えが主張する古い規定はイエス様によって廃棄されました。キリストにあって神の国が到来し、キリストにあって新しい秩序がもたらされたのです。その栄光の全貌は、依然として私たちに隠されていますが、信仰によってそれを享受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結論】
本日の内容をまとめます。ヨハネの福音書は、1:19から本論1が始まり、本日の2:12までを七日間に渡った出来事として括られています。この七日間がどのような一週間であったのかと言いますと、一言でいえば、主イエスを証しする一週間だったと言えるでしょう。最初に洗礼者ヨハネの証しがあり、それからアンデレやフィリポやナタナエルの証しがありました。六日目の記述はなく、七日目にイエス様ご自身の証しが記されています。それは、水をぶどう酒に変えることによって、神の国の、その栄光の一部分を見せることにより、ご自分こそ神の民の贖いの御業をなされる救い主であり、新しい秩序をもたらすメシアであることを主張しているのです。
キリストにある神の国へ、キリストにある新しい秩序へ、今日私たちは招かれています。私たちはまだ神の国の栄光の完全な姿を、この目で見ることはできませんが、信仰によって、イエス様にある神の国の栄光を見ることが許されており、この喜ばしい祝宴に永遠に与ることが許されている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