見よ、世の罪を取り除く神の子羊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日付
- 説教
-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ヨハネによる福音書 1章29節~34節
1:29その翌日、ヨハネは、自分の方へイエスが来られるのを見て言った。「見よ、世の罪を取り除く神の小羊だ。
1:30『わたしの後から一人の人が来られる。その方はわたしにまさる。わたしよりも先におられたからである』とわたしが言ったのは、この方のことである。
1:31わたしはこの方を知らなかった。しかし、この方がイスラエルに現れるために、わたしは、水で洗礼を授けに来た。」
1:32そしてヨハネは証しした。「わたしは、“霊”が鳩のように天から降って、この方の上にとどまるのを見た。
1:33わたしはこの方を知らなかった。しかし、水で洗礼を授けるために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方が、『“霊”が降って、ある人にとどまるのを見たら、その人が、聖霊によって洗礼を授ける人である』とわたしに言われた。
1:34わたしはそれを見た。だから、この方こそ神の子であると証ししたのである。」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ヨハネによる福音書 1章29節~34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2025년6월 1일 주일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요한복음 1장 19~28절
서론
기름 부음 받은 메시아의 도래에 대해서, 세례 요한은「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린 양」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구약에도 신약에도 나오지만, 특히 신약의 요한계시록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어린 양이란, 예수님이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와 같이 죄인으로 낮은 자리로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어린 양은 승리의 어린 양으로 묘사되며,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진 어린 양으로 묘사됩니다. 또한 하늘에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요한계시록 5:12)」라고 경배를 받고 있습니다. 어린 양은 땅에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죽임을 당하셨기 때문에 하늘에서 높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어린 양이라는 신비한 단어를 통해, 오늘도 요한복음의 말씀을 통해 함께 은혜를 받기를 소망합니다.
(1) 나는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요한복음은 1:19절부터 2:12절까지가 첫 번째 본론입니다. 첫 번째 본론에서는 가나의 혼인잔치의 기적에 이르기까지의 7일, 즉 일주일간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난번 예배에서 우리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는 제목으로 세례 요한을 중심으로 첫째 날의 사건을 살펴봤습니다. 오늘 29절 첫머리를 보면 「이튿날」이라고 되어 있으니, 오늘 본문은 둘째 날에 해당합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고 메시아를 증거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던 인물입니다. 이 세례 요한 밑으로, 예루살렘과 유대 전역, 나아가 요단강 연안 지방 일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혹시 그가 바로, 오실 메시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많은 군중들에게 자신이 메시아가 아님을, 그리고 메시아는 위대한 분이며, 자신은 그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증언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한은 좀 더 직접적이고 핵심을 꿰뚫는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29~30절을 보시겠습니다.
29 이틑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이 요한의 증언은 예수님께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후의 결과물인 것 같습니다. 전날 이미 세례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기 전까지는 이분을 알지 못했다고 두 번이나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1~3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이렇게 요한은「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라고 두 번이나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 따르면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사실 사촌 관계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 아마 함께 놀던 사이였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혈통을 소중히 여겼고, 비록 먼 친척이라 할지라도 피가 이어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친밀한 사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모를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라고 요한이 말한 것은 그 사촌 예수가, 설마 메시아라는 것을 몰랐다는 뜻일 것입니다. 세례를 베푸는 장면은 요한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마태복음 3:16~17절에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보시기 바랍니다.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때 하늘에서 내려온 비둘기 같은 성령을, 예수님과 세례 요한만이 목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때 비로소, 요한은 사촌동생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어린 시절 친구였던 예수가 자신이 길을 예비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때 요한의 충격은 엄청났을 것입니다. 그래서「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라는 말에는 요한의 놀라움과 큰 감동이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를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는 결코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머리로 메시아를 인식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요? 성령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주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인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교회에 나오게 되었을 때, 처음 믿음생활을 시작했을 때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을지도 모릅니다. 그야말로 노예처럼 고통에 허덕이고 있던 그런 시기였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메시아를 찾아 해매다가 발견한 것이 아닌, 오히려 예수님께서 방황하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자신을 드러내신, 그런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까요? 우리는 성령으로 인해 눈이 열리고, 성령으로 인해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깨닫고 믿음으로 인도받게 되는 것입니다.
(2) 어린 양
그런데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왜 「어린 양」일까요? 일반적으로 양은 온순하고 단순하고 순종적인 동물입니다. 반면 어리석고, 약하고 시력이 좋지 않아 멀리 있는 늑대의 존재를 민감하게 감지하지 못합니다. 양은 목자가 없으면 생존하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또한 성경 안에서, 양은 소나 염소와 마찬가지로 정결한 동물로 여겨졌으며, 특히 아직 인간의 가축으로 이용된 적이 없는, 일년 된 어린 양은,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 제물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양과 관련된 성경 말씀을 구약성경에서 두 곳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이사야 53:7절을 펼쳐 보겠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깍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구약성경 이사야 53장은「고난의 종의 노래」로 유명한 장입니다. 고난의 종은,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입을 열지 않고 스스로 죽음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53:2~3절에 따르면 고난의 종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고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53:4~5절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53:4~5절을 보시겠습니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예수님 자신이 어떤 원인이 있어서, 하나님의 손에 잡혀,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예수님은 우리의 불순종의 죄와, 우리의 질고와 아픔을 모두 짊어지고 우리를 대신해 채찍을 맞고, 징벌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는,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7~8세기 전에 쓰여진 책인데, 고난 받는 종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제물의 어린 양」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한데, 이는 바로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죄인들을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사건과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제사이며, 하나님의 죄에 대한 분노를 달래기 위한 제물의 어린 양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고, 죄를 미워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인간은 죄 없는 상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날마다 죄를 짓고 또 짓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이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를 단절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에는 죄의 대가는 죽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은 반드시 심판을 받아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분이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죄의 대가를 치르셨기 때문에 우리는 제물이 되신 예수님으로,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고, 구원받아 하나님과 함께 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출애굽기 12:21~2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1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22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23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여기에도 어린 양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할 때, 애굽의 왕 바로는 마음이 완고해져서 어떻게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하나님은 완고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고, 마지막 열 번째 재앙으로 애굽 전역의 집안의 맏아들을 치셨습니다. 노예부터 가축에 이르기까지, 모든 맏아들이 죽게 된 것입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집 입구의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발라 놓았기 때문에, 멸하는 자는 그 피를 보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넘어가고 재앙을 면하게 된 것입니다. 그날 밤, 애굽 전역에서는 「이스라엘을 쫓아내지 않으면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는 비통한 외침이 터져 나왔고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에게「어린 양의 피를 뿌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통해 해방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조금 보충 설명을 하자면, 여기서, 피 자체에 어떤 신비한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 양의 피를 뿌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기 때문에, 이런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피는 생명을 상징하고, 피를 흘린다는 것은 생명이 하나님께 바쳐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를 위해 도수된 유월절 어린 양이시며,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셨던 것입니다. 고난의 종의 희생제사를 통해, 신학적으로 얻은 것이 너무 많아 그 풍성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고난의 아들은 아버지의 뜻에 대한 온전한 순종을 통해 높임을 받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삼일만에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셨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고, 교회의 머리로 높아지셨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받으셨고(빌2:9~11), 중보자로서의 영광(히 2:9),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엡1:21), 최후의 심판을 행하는 권세(요5:27)를 수여받으셨습니다. 말씀 한 구절만 살펴보겠습니다. 에베소서 1:20~21절을 보시겠습니다.
에베소서1장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승리하신 어린 양은 자신에게 속한 자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그 축복이란, 메시아가 세상의 빛이라는 것, 메시아가 참된 양식, 참된 음식, 열매 맺는 포도나무이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고, 둘째 아담, 마지막 아담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둘째 아담, 마지막 아담이란 무슨 뜻이냐 하면, 육적인 인류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신앙적인 교회의 대표자가 되셨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메시아는 우리의 지혜요, 우리의 의요, 우리의 거룩이요, 우리의 평강이요, 교회의 머리요, 하나님의 성전의 기초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메시아와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서만 비로소 그 충만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적용
오늘의 내용을 정리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메시아, 구제주는 희생제사에 자주 쓰이는 연약한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우리의 죄를 그 몸에 짊어지시고 친히 도수당하심으로써 우리 대신 죄의 대가를 치뤄 주셨습니다. 어린 양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이루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고,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하나님의 성전의 터가 되셨으며,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을 부여받아 우리 교회를 날마다 인도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하늘에서 예배를 받으시며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이라는 찬양을 들으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이 은혜 안에서 살아 가고 있음을 분명히 깨닫고, 예수님과의 교제 안에서 그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자들이 되도록 합시다. 그리고 우리도 세례 요한처럼 이 분을 일평생 증언하는 자가 되도록 합시다.
【序】
油注がれた者メシアの到来について、洗礼者ヨハネは「神の子羊」と言い表しました。「小羊」という言葉は、聖書の中で旧約聖書の中にも新約聖書の中にも出てきますが、特に新約聖書のヨハネの黙示録の中に多く出てくる言葉であります。小羊とは、イエス様が私たち罪人を救うために、私たちと同じように罪人として低く来られたことを意味します。ところが黙示録に出てくる小羊は、勝利の小羊として描写され、大変想像しにくいかもしれませんが、七つの角と七つの目を持つ小羊として描かれています。さらに天において「屠られた子羊は、力、富、知恵、威力、誉れ、栄光、そして賛美を受けるにふさわしい方です」と礼拝を受けています。小羊は地上で御父の御心に従って屠られたが故に、天において高められているのです。この小羊という不思議な言葉を通して、本日もヨハネの福音書の御言葉を通して共に恵みに与りたいと願います。
【1】. わたしはこの方を知らなかった。
ヨハネの福音書は、1:19から2:12まで、本論1となります。本論1では、カナの婚礼の奇蹟に至るまでの七日間、つまり一週間の営みが書かれています。前々回の礼拝で、私たちは「荒れ野で叫ぶ声」と題して、洗礼者ヨハネを中心に第一日目の出来事を見てまいりました。本日の29節の冒頭を見ますと、「その翌日」とありますので、本日の個所は第二日目に当たります。洗礼者ヨハネとは、メシアの道備えをし、メシアを証言するために、神様から遣わされ、ヨルダン川で洗礼を授けていた人物です。この洗礼者ヨハネの下に、エルサレムとユダヤ全土から、さらにはヨルダン川沿いの地方一帯から、洗礼を受けるために大勢の人々がやってきました。人々の中には、ひょっとしたら彼こそ来るべきメシアではないだろうか、と考える人もいました。洗礼者ヨハネは、大勢の群衆に対し自分がメシアではないこと、そしてメシアとは、とにかく偉大なお方で、自分がその履物のひもを解く資格さえないことを証言しました。本日の個所では、ヨハネの証言がより直接的に、さらに核心に迫った証言となっています。29~30節をご覧ください。
“その翌日、ヨハネは、自分の方へイエスが来られるのを見て言った。「見よ、世の罪を取り除く神の小羊だ。『わたしの後から一人の人が来られる。その方はわたしにまさる。わたしよりも先におられたからである』とわたしが言ったのは、この方のことである。”
このヨハネの証言は、ヨハネからイエス様が洗礼を受けた後の結果として生じたものと思われます。前日に既に洗礼を受けられたのでしょう。と言いますのは、ヨハネはイエス様に洗礼を授けるまでは、この方を知らなかったと二度も告白しているからです。31~33節をご覧ください。
“わたしはこの方を知らなかった。しかし、この方がイスラエルに現れるために、わたしは、水で洗礼を授けに来た。」そしてヨハネは証しした。「わたしは、“霊”が鳩のように天から降って、この方の上にとどまるのを見た。わたしはこの方を知らなかった。しかし、水で洗礼を授けるために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方が、『“霊”が降って、ある人にとどまるのを見たら、その人が、聖霊によって洗礼を授ける人である』とわたしに言われた。”
このようにヨハネは「わたしはこの方を知らなかった」と二度も告白しているわけです。しかしルカ福音書によりますと、洗礼者ヨハネとイエス様は、実はいとこの関係だったと書かれています。ヨハネはイエス様より6か月早く生まれて来ました。幼い頃は、恐らく一緒に遊んだ仲だったのでしょう。ユダヤ人は血統を大切にし、たとえ遠い親戚であったとしても、血がつながっているということだけで親しい間柄になったからです。従いまして、洗礼者ヨハネはイエス様のことを知らないはずがないのです。それにも拘わらず「わたしはこの方を知らなかった」とヨハネが語っているのは、あの弟分のイエスが、まさか、メシアであるということを知らなかったということなのでしょう。洗礼を授ける場面は、ヨハネ福音書には記述されていませんが、マタイ3:16~17には次のように描写されています。ご覧ください。
“イエスは洗礼を受けると、すぐ水の中から上がられた。そのとき、天がイエスに向かって開いた。イエスは、神の霊が鳩のように御自分の上に降って来るのを御覧になった。”
この時、天から降って来た鳩のような聖霊を、イエス様と洗礼者ヨハネだけが目撃したのだと思われます。そしてその時初めて、ヨハネはいとこのイエスが、神がお遣わしになったメシアであることを知ることとなりました。その時初めて、幼馴染のイエスが、自分が道を備えていた、まさにその人であったことを知ることとなったのです。その時のヨハネの衝撃は大変なものだったに違いありません。ですから「わたしは、この方を知らなかった」という言葉には、ヨハネの驚きと、そして大きな感動が含蓄されているのであります。このことを私たちに適用しますと、私たちは、決してメシアを自分たちの目や、自分たちの頭で、認識する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ことではないでしょうか。聖霊によって初めて、主イエスがキリストであることを認識できるのです。私たちが初めて教会に来るようになった頃のこと、初めて信仰に踏み出した頃のことを思い返してみてください。もしかしたら、それぞれの人生において最もつらい時期だったのかもしれません。まさに奴隷のように苦しみにあえいでいた、そんな時期だったのかもしれません。私たちがメシアを探し求めて見出したのではなく、むしろイエス様の方からさまよっていた私たちのところに来てくださり、ご自身を現わしてくださった、そのようなことに思い当た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私たちは聖霊によって目が開かれ、聖霊によってイエス様がメシアであることを認識し、信仰へと導かれるのです。
【2】. 小羊
さて、洗礼者ヨハネは自分の方へイエス様が来られるのを見て、「見よ、世の罪を取り除く神の小羊」と言いました。なぜ「小羊」なのでしょうか。一般的に羊とは、おとなしく、素直で従順な動物ですね。その半面、愚かで、弱く、視力が悪いため、遠く離れた狼の存在に敏感に察知することもできません。羊は羊飼いがいなければ生存することも難しいとされています。また聖書の中では、羊は、牛や山羊と同じように、きよい動物とされていて、とりわけ人間の家畜としてまだ利用されたことのない、一歳の小羊は、神に捧げる祭儀用の生贄としてよく用いられました。羊に関連する聖書の御言葉を旧約聖書から二か所、調べてみたいと思います。最初にイザヤ書53:7をお開きください。
“苦役を課せられて、かがみ込み/彼は口を開かなかった。屠り場に引かれる小羊のように/毛を刈る者の前に物を言わない羊のように/彼は口を開かなかった。”
旧約聖書のイザヤ書53章は、「苦難の僕の詩」として有名です。苦難の僕は屠り場に引かれる小羊のように、口を開かず自ら死の道を進んでいきました。苦難の僕は、53:2~3節によれば、見るべき面影はなく、輝かしい風格も、好ましい容姿もない、人々に軽蔑され、見捨てられ、多くの痛みを負い、病を知っている人でありました。ところが、53:4~5を見ますと、次のように書かれています。イザヤ書53:4~5をご覧ください。
“彼が担ったのはわたしたちの病/彼が負ったのはわたしたちの痛みであったのに/わたしたちは思っていた/神の手にかかり、打たれたから/彼は苦しんでいるのだ、と。彼が刺し貫かれたのは/わたしたちの背きのためであり/彼が打ち砕かれたのは/わたしたちの咎のためであった。彼の受けた懲らしめによって/わたしたちに平和が与えられ/彼の受けた傷によって、わたしたちはいやされた。”
私たちは、彼自身に何か原因があって、神の手にかかり、苦しんでいるのだと考えがちですが、実は、彼は、私たちの背きの罪や、私たちの病や痛みの全てを背負われて、私たちの代わりに打ち砕かれ、懲らしめを受けたと言うのです。イザヤ書は、イエス様が生まれる7~8世紀前に書かれた書物ですが、苦難の僕が、私たちの罪を贖うための「生贄の小羊」として描写されているのです。この点が大変重要でありますが、これは、まさに新約聖書の中で、神の子であるイエス様が罪人の代わりに十字架に掛けられ死なれる出来事と重なってくるのであります。イエス様の十字架の死とは、祭儀であり、神様をなだめるための生贄の羊であったということが分かるのです。神様は罪のないお方であり、そして罪を嫌われるお方ですから、人間は、罪のない状態で神様の御前に出なければなりません。ところが、私たちは日々罪を重ねてしまいます。罪を犯さないでは一日たりとも過ごすことはできません。この私たちの罪が神様と人間との交わりを断絶させているのです。律法には罪の代価は死であると書かれています。ですから罪人は必ず裁かれて死ななければなりません。しかし、罪のないお方が私たちの代わりに十字架で死んでくださり、罪の代価を支払ってくださったために、私たちはイエス様の生贄によって、イエス様の血によって、罪の赦しを受けられるのです。こうして罪人は、イエス・キリストにあって、神様との交わりが回復され、救われて、神様と共に生きる者とされるのです。続いて、出エジプト記12:21~23をご覧ください。
“モーセは、イスラエルの長老をすべて呼び寄せ、彼らに命じた。「さあ、家族ごとに羊を取り、過越の犠牲を屠りなさい。そして、一束のヒソプを取り、鉢の中の血に浸し、鴨居と入り口の二本の柱に鉢の中の血を塗りなさい。翌朝までだれも家の入り口から出てはならない。主がエジプト人を撃つために巡るとき、鴨居と二本の柱に塗られた血を御覧になって、その入り口を過ぎ越される。滅ぼす者が家に入って、あなたたちを撃つことがないためである。”
ここでも羊が出てきます。イスラエルの民がモーセに率いられ出エジプトをする際、エジプトの王ファラオは心が頑なになり、なんとしてもイスラエルの民がエジプトから去って行くことを拒みました。神は頑ななエジプトに対し、十の災いを下され、最後の十番目の災いにおいて、エジプト全土の家の長子を打たれました。奴隷から家畜に至るまで、すべての長子が死に至ったのです。一方、イスラエルは神の御言葉に従って、羊を屠り、その血を家の入口の門の鴨居と二本の柱に塗っておいたため、滅ぼす者は、その血を見て過越していきました。神の裁きが過ぎ越され、災いから免れたのです。その夜、エジプトでは全土から悲痛の叫び声が上がり「イスラエルを追い出さない限り、われわれも皆死んでしまう」という極度な恐れに見舞われました。このようにして、430年間エジプトで奴隷であったイスラエルに「羊の血を塗りなさい」という神の命令を通して、解放がもたらされたのです。少し補足説明をしますと、ここで、血そのものに神秘的な力があるということではありません。血を塗りなさいという神の御言葉に従ったので、このような神秘的な出来事が起こったということです。血は命を象徴し、血を流すとは、命が神様に捧げられるということを意味しています。イエス様は、まさに私たちのために屠られた過越しの祭りの子羊であり、世の罪をその身に負われた、神の子羊であったのです。苦難の僕が、このようなご自身の犠牲祭儀を通して、神学的に獲得したものはあまりにも多く、その豊かさを言い表すことは出来ないほどです。苦難の僕は、御父の御心に対する完全な従順を通して、自らが高められることを獲得しました。具体的に言えば、三日目の復活、天に昇ること、神の右への着座、教会の頭として高められること、すべての名の上に優る名(フィリ2:9-11)、仲保者としての栄光(ヘブ2:9)、天と地の一切の権力(エフェ1:21)、最後の審判を行う権能(ヨハ5:27)を授けられました。御言葉を一箇所調べてみましょう。エフェソ1:20~21をご覧ください。
“神は、この力をキリストに働かせて、キリストを死者の中から復活させ、天において御自分の右の座に着かせ、すべての支配、権威、勢力、主権の上に置き、今の世ばかりでなく、来るべき世にも唱えられるあらゆる名の上に置かれました。”
勝利した小羊は、ご自身に属する者たちに、計り知れない祝福を、もたらしてくださいました。その祝福とは、メシアが世の光であること、メシアが真の糧、真の食べ物であること、実を結ばせるぶどうの木であり、道、真理、命となられ、第二のアダムにして、最後のアダムとなられました。第二のアダム、最後のアダムとはどういうことかと言いますと、肉的な人類の代表ではなく、霊的で信仰的な教会の代表となられたということです。さらに言えば、メシアは私たちの知恵であり、私たちの義であり、私たちの聖さであり、私たちの平和であり、教会の頭、神の神殿の土台となられました。ですから、私たちは、このメシアとの人格的な交わりを通して、初めてその満ち満ちた祝福に与ることが出来るのです。
【適用】
本日の内容をまとめます。イスラエルに与えられたメシア、救い主は、犠牲祭事でしばしば用いられる弱い「小羊」として来られました。罪のないお方が私たちの罪をその身に担い、ご自身が屠られることで、私たちの代わりに罪の代価を支払ってくださいました。小羊は、御父の御心に従順になり、十字架の死を成し遂げ、復活し、神の右の座に着座され、教会の頭となり、神の神殿の土台となられ、天と地の一切の権力と、権能を授けられ、私たち教会を日々導いてくださる道、真理、命となられました。今、この時間においても天において礼拝を受けておられ、「力、富、知恵、威力、誉れ、栄光、賛美を受けるにふさわしい方です」と賛美をお聞きになっておられます。私たちは、小羊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が成就されたこの恵みの中に生かされていることをはっきり理解し、イエス様との交わりの中でその豊かな恵みを享受する者たちとならせていただきましょう。そして私たちも、洗礼者ヨハネのように、このお方を、生涯を通して証しする者とならせていただきま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