読者よ、悟れ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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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説教
-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マタイによる福音書 24章15節~28節
15「預言者ダニエルの言った憎むべき破壊者が、聖なる場所に立つのを見たら――読者は悟れ――、
16そのとき、ユダヤにいる人々は山に逃げなさい。
17屋上にいる者は、家にある物を取り出そうとして下に降りてはならない。
18畑にいる者は、上着を取りに帰ってはならない。
19それらの日には、身重の女と乳飲み子を持つ女は不幸だ。
20逃げるのが冬や安息日にならないように、祈りなさい。
21そのときには、世界の初めから今までなく、今後も決してないほどの大きな苦難が来るからである。
22神がその期間を縮めてくださらなければ、だれ一人救われない。しかし、神は選ばれた人たちのために、その期間を縮めてくださるであろう。
23そのとき、『見よ、ここにメシアがいる』『いや、ここだ』と言う者がいても、信じてはならない。
24偽メシアや偽預言者が現れて、大きなしるしや不思議な業を行い、できれば、選ばれた人たちをも惑わそうとするからである。
25あなたがたには前もって言っておく。
26だから、人が『見よ、メシアは荒れ野にいる』と言っても、行ってはならない。また、『見よ、奥の部屋にいる』と言っても、信じてはならない。
27稲妻が東から西へひらめき渡るように、人の子も来るからである。
28死体のある所には、はげ鷹が集まるものだ。」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マタイによる福音書 24章15節~28節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2019년 2월24일 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마태복음 24장 15절~28절
기독교가 유대인의 민족 종교에서 세계 종교로 발전해 간 배경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으며,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주어진「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라는 대선교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는 것일 뿐, 실제로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결코 한 마디로 정리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동안 자신의 혈통을 중시하고, 조상들의 전승을 굳게 지키며, 전통과 관습을 소중히 여겨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온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정체성인 유대인으로서의 틀을 넘어서는 것이었으며, 상상 이상으로 힘든 일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당시 초대 교회 시대에도, 이른바 「할례파」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나타나, 만일 이방인이 예수님을 받아들인다면 할례를 행해야 하며, 모세의 율법을 지키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할례파의 주장은 후에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완전히 부정되었지만, 갈라디아서에 따르면 사도 베드로조차도 할례파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율법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율법적인 예배의 최종적인 폐기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운명지어졌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구약의 전통,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잘못된 믿음, 유대 국가에 대한 잘못된 망상에서 결별할 수 있도록, 그리고 오히려 그곳에서 벗어나 한결같이 도망치는 것이야말로 구원임을, 다니엘의 예언을 인용하여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너희는 앞으로 너희 민족을 떠나가는 것을 걱정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차면 형식적인 의식 율법이 중단되고 제사 제도가 폐지될 것임을 경고와 함께 증언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의 존재 자체가 그만큼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다니엘서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고 기록된 구절은 어디일까요? 다니엘서 11: 31절과 12: 11절에 나옵니다. 또한, 참고로 복수형으로 9: 27절에도 등장합니다. 먼저 다니엘서 11: 31절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으로 9: 27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다니엘 11장
31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사실 예수님의 예언과 같은 사건, 즉「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운 사건이,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기원전 168년에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입니다. 그는 성전에 제우스의 제단을 세웠습니다. 이때 제사장인 유다 마카베오가 일어나, 제우스 신전에 들여온 시리아 군대를 격파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의 외경인 마카베오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서 9:27절에는 「..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복수형)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라고 되어 있으며, 「황폐하게 하는 자」가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곧「우상」을 의미하므로, 다니엘서 9:27이야말로 과거에 일어난 안티오쿠스 사건이라고 여겨집니다. 따라서 제1마카베오서 1:54-59에는 그 성취로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적혀 있습니다.
제 1 마카베오서 1장
54 백 사십 오년 기슬레우월 십 오일에 안티오쿠스왕은 번제 제단 위에 가증스러운 파멸의 우상을 세웠다. 그러자 사람들은 유다의 근방 여러 도시에 이교제단을 세우고
55 집 대문 앞에나 거리에서 향을 피웠다.
56 율법서는 발견되는 대로 찢어 불살라 버렸다.
57 율법서를 가지고 있다가 들키거나 율법을 지키거나 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왕명에 의해서 사형을 당하였다.
58 그들은 여러 도시에서 권력을 휘두르며 왕명을 위반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매달 잡아들여 모질게 학대하였다.
59 매달 이십 오일에는 옛 제단 위에 새로 세운 제단에 희생제물을 바쳤다.
안티오쿠스는 한 달에 한 번,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교도의 제사를 지냈으며, 이때 유대인들에게 있어 부정한 동물인 돼지도 제물로 바쳐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다니엘서 11장의 예언을 기원전 168년에 일어난 안티오쿠스의 사건이 아니라, 그 이후에 일어날 미래의 일로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안티오쿠스의 사건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한 사건이며, 결국 성전이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또한 다니엘서 11장의 예언대로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서기 70년의 예루살렘 함락입니다. 이 경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면, 로마 제국은 속주 내의 민족적 종교나 관습에 대해 처음에는 관용적이고 융화적인 정책을 취했으나, 본디오 빌라도 이후 점차 종교적 탄압이 심해졌습니다. 그러자 로마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감이 점차 강해졌고, 유대인들 중에서도 특히 열심당파가 더욱 과격한 사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국 로마와 유대인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서기 66년에 유대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네로 황제는 유대를 제압하기 위해 실력자인 베스파시아누스를 유대 총독으로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서기 68년에 네로가 자살하고, 이듬해인 69년에는 베스파시아누스가 로마 황제가 되어 로마로 돌아가, 대신 아들 티투스를 유대 총독으로 파견하게 됩니다. 티투스는 계속해서 유대인들을 제압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이때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 성 안으로 피신하지 않고 산으로 도망쳤습니다. 즉, 요단강을 건너 페라라는 마을로 피신했다고 역사가들의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그들이 페라로 피신하여 예루살렘의 상황을 자세히 알게 된 후에야, 비로소 예수님께서 하신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집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서는 안 되며, 밭에 있는 사람은 겉옷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자신의 집 지붕에서 저녁이 되면 쉬는 것이 유대인의 관습이었지만, 그대로 도망치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급한 상황이었다는 뜻입니다. 도망칠 때, 겨울이나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은, 겨울이 되면 비로 인해 길이 질퍽해져 다닐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는 성문이 닫혀 이동할 수 없게 되고,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1킬로미터 이상 걷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 도망치는 데 제약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함락 사건은, 세상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없었던 큰 환난이라고 합니다. 왜 이토록 끔찍한 재앙과 환난이, 예루살렘에 내리는가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린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다시 말해,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살해하고, 때가 차자 하나님의 독생자까지 살해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려고 강탈한 죄가, 이 시대에 최종적으로 정산되어, 하나님의 보복이라는 형태로 유대인과 예루살렘 성전에 임했다는 것입니다. 이 예루살렘 함락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그대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종말의 심판의 모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는, 온 인류의 죄가 남김없이 청산되고, 하나님께 복수를 외치는, 의인들의 피의 목소리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날입니다. 믿지 않는 경건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복수의 날이며,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없을 만큼 무서운 심판의 날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두려운 진노의 날에도, 자신의 백성에게는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거짓 메시아나 거짓 예언자가 나타나서「그리스도가 여기 있다」거나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라고 말하며, 가능하다면 선택받은 사람들까지도 미혹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세례 요한이 나타났던 것처럼, 공개적으로 메시아처럼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든, 혹은 골방에서 비밀리에 메시아처럼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든, 결코 믿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왜냐하면 인자가 재림하실 때, 어떻게 재림하느냐 하면 27절에 기록된 대로이기 때문입니다.
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예수님께서는, 27절의 말씀에서, 3절에 나오는 제자들의 질문인「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라는 질문에 처음으로 답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마치 갑자기 「번개」가 치듯,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누구나 알아볼 수 있으며, 틀림없는 사건으로서 일어납니다. 그것은 초림 때처럼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 사람들에게 눈치채이지 않게, 세상의 한 구석에 나타나는 방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현대에 있어서, 만약 「사실 성경에 기록된 재림의 메시아가 이미 오셨습니다」라는 말을 듣더라도, 결코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거짓 메시아라고 생각하십시오. 설령 그 사람이야말로 메시아가 아닐까 생각될 만한 사람이, 수많은 기적과 표적의 일을 행한다 하더라도 가짜 메시아입니다. 왜냐하면 인자의 재림은, 어떤 사람에게는 인식될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인식되지 않는 식의 재림 방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성질로, 어디에 있는 누구에게나 모든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형태로 재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재림하실 때는, 세상에 대한 심판이자 불신자에 대한 보복의 때이며,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에게는, 몸의 속량의 때,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영광의 때입니다. 우리는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그리스도의 재림 때,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를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중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성령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하나하나 떠올리게 하시고, 그 의미를 나중에 깨달을 수 있게 하셔서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세상에 나가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확신은 날마다 굳건해졌으며, 구약 시대에도 신약 시대에도 동일한 한 분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그리고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언약 또한 하나라는 것, 즉 그것은, 일방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백성에게 은혜로 주어지지만,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그것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구약의 율법과 제사 제도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제물로 단 한 번 드려짐으로써 그것들을 완전히 성취하셨음을 이해한 것입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개인적인 종말로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개인적인 종말이든 우주적인 만물의 종말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날, 불신자들에게는 심판의 날, 죄의 정산 날을 맞이하고, 신자들에게는 기쁨의 날, 예수 그리스도께로 들려 올려져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련과 어려움을 주시지만, 그것들은 우리를 단련하고 정화하여, 머지않아 주님 앞에 서게 될 때를 준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말세의 날, 세상의 끝날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는 인내와 감사를 가지고 걸어가도록 합시다.
キリスト教がユダヤの民族的宗教から世界宗教になって行った背景には、神のご計画があり、そして、イエスさまの弟子たちに対する「あなた方は全世界に出て行って、全ての民を私の弟子にしなさい」という大宣教命令があったからと考えることが出来ます。
しかし、それは現代を生きる私たちがそのように簡単に考えることであって、実際、当時のユダヤ人にとっては、それは決して一言で片づけられる問題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と言うのは、彼らはこれまで、自分たちの血統を重んじ、先祖たちの言い伝えをしっかりと守り、伝統と慣習を大事にしてきたからです。彼らにとって全世界に出て行き福音を宣べ伝えるということは、自分たちのアイデンティティである、ユダヤ人としての枠を超えていくという事であり、想像以上に大変なことであったと推定されます。また、当時初代教会の時代においても、いわゆる「割礼派」と呼ばれる人々が現れて、もし異邦人がイエスさまを受け入れたなら、割礼を施さ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そしてモーセの律法を守らせ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を主張しました。割礼派の主張は後にエルサレム会議において完全に否定されましたが、ガラテヤ書を見ますと、使徒ペトロでさえ、割礼派の人々の主張に対して面と向かって論駁す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ほどです。しかし、イエスさまがこの世に来られたことによって律法が成就されたために、律法的な礼拝の最終的な廃棄や、エルサレム神殿の破壊は運命づけられていたとも言うことができるのです。
イエスさまは、ご自分の民が、旧約の伝統、そしてエルサレム神殿に対する誤った信仰、ユダヤ国家に対する誤った妄想から、彼らが決別することが出来るように、そして、むしろそこから離れ一目散に逃げることこそ救いであるということを、ダニエルの預言を引用して弟子たちに教えられました。あなた方は今後、自分たちの民族から離れて行くことを心配してはならない。神は時が満ちた時に、形式的な儀式律法が中止され、祭祀制度を廃棄されるだろうということを警告と共に証言されたのです。ユダヤ人にとってエルサレムの神殿の存在自体が、それほど影響力があったということです。15-16節をご覧ください。
「預言者ダニエルの言った憎むべき破壊者が、聖なる場所に立つのを見たら――読者は悟れ――、
そのとき、ユダヤにいる人々は山に逃げなさい。
ダニエル書に「憎むべき破壊者」と書かれている箇所はどこでしょうか。ダニエル書11:31と12:11に出てきます。また、余談ですが複数形として9:27にも出てきます。最初にダニエル書11:31(旧p1400)をご覧ください。その次に9:27についても考え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
彼は軍隊を派遣して、砦すなわち聖所を汚し、日ごとの供え物を廃止し、憎むべき荒廃をもたらすものを立てる。
実はイエスさまの預言のような出来事が、つまり「憎むべき破壊者が神殿に立つ」という事件が、過去にもありました。それは、セレウコス朝シリアのアンティオコス4世エピファネスという王がBC168年にエルサレムに攻め上った時です。彼は神殿にゼウスの祭壇を築きました。この時は祭司であるユダ・マカバイが立ち上がり、ゼウス神殿を持ち込んだシリア軍を撃破しました。詳しい内容は聖書の続編であるマカバイ記に書かれています。
それで、ダニエル書9:27(旧p1397)には「憎むべきものの翼の上に荒廃をもたらすものが座す。」とありまして、複数形になっています。これは即ち「偶像」を意味していますので、ダニエル記9:27こそ、過去に起こったアンティオコスの事件だと考えられるのです。ですから第1マカバイ1:54-59にその成就として次のような記事が書かれています。
第百四十五年、キスレウの月の十五日には、王は祭壇の上に「憎むべき破壊者」を建てた。人々は周囲のユダの町々に異教の祭壇を築き、
家々の戸口や大路で香をたき、
律法の巻物を見つけてはこれを引き裂いて火にくべた。
契約の書を隠していることが発覚した者、律法に適った生活をしている者は、王の裁きにより処刑された。
悪人たちは毎月、町々でイスラエル人を見つけては彼らに暴行を加えた。
そして月の二十五日には主の祭壇上にしつらえた異教の祭壇でいけにえを献げた。
アンティオコスは、月に一度、エルサレムの神殿で異教の祭りを捧げ、この時、ユダヤ人にとって汚れた動物である豚も捧げられたということです。
ところで、イエスさまはダニエル記11章の預言をBC168年に起きたアンティオコスの事件ではなく、これから後に起こる未来のこととして弟子たちに語られました。そしてアンティオコスの事件に比較できないほど悲惨な出来事であり、ついには神殿が完全に破壊されるだろうという預言でした。
そしてイエスさまのご指摘の通り、そして、ダニエル書11章の預言の通りの事件が本当に起こります。AD70年のエルサレム陥落です。この経緯について、詳しく説明しますと、ローマ帝国における属州における民族的宗教や慣習に対して、最初は寛容で融和政策をとりましたが、ポンテオピラト以降、次第に宗教的な圧迫が激しくなっていきました。するとローマに対するユダヤ人の反感が次第に強くなって行き、ユダヤ人の中で特に熱心党が、さらに過激な思想を持つようになりました。ついに、ローマとユダヤ人の間に衝突が起こり、AD66年にユダヤ戦争が勃発しました。皇帝ネロはユダヤを制圧するために実力者であるウェスパシアヌスをユダヤの総督として派遣しました。ところが、AD68年にネロは自殺し、翌年69年には、ウェスパシアヌスがローマ皇帝となってローマに戻り、息子のティトスを代わりにユダヤの総督として派遣することになります。ティトスは、引き続きユダヤ人の制圧に力を注ぎました。
ローマの戦略はまず、周辺の要塞から攻撃していき、最後にエルサレムを包囲して陥落させました。このエルサレムに対する所謂、兵糧攻めが6か月間続き、その間、城内の人々には食べる物がなく、飢死した人々が大勢出てきました。最終的に、AD70年の9月にエルサレムが陥落しましたが、この時11万人が殺され、9万人が捕虜にされたと言われています。このユダヤ戦争において神殿に執着し続けた祭司(サドカイ派)や熱心党が滅び、歴史からその姿を消しました。現在のイスラエルの子孫は進歩的ファリサイ派と言われています。
この時、キリスト者は、エルサレムの城内に逃げ込まないで、山に逃げました。つまりヨルダン川を渡ってペラという町に逃れたと歴史家の記録に書かれています。彼らがペラに逃れて、そしてエルサレムの状況を詳しく知った後で初めて、イエスさまの語られた預言がその通りに成就されたことを認識できたことでしょう。イエスさまは屋上にいる者は家にある物を取り出そうとして下に降りてはならない、畑にいる者は、上着を取りに帰ってはならないと教えられました。自分の家の屋上で夕方には休むのがユダヤ人の習慣でしたが、そのまま逃げなさいというのです。それほど、急を要したということです。逃げるのが冬や安息日にならないようにと言われるのは、冬になると雨で道がぬかってしまい通れなくなります。安息日には門が閉まって移動できなくなりますし、ユダヤ人の言い伝えによって1キロ以上歩くことが禁じられていて、逃げることが制限されるからです。
エルサレム陥落の事件は世界の初めから今までにない、大きな苦難であると言われます。なぜこれほどの恐ろしい災いと苦難がエルサレムに下るのかと言えば、それは神の審判だからです。つまり、神が遣わされた御子キリストを信じないで、祭司と律法学者たちはイエスさまを十字架に架けて殺してしまったという罪に対する審判です。つまり、悪人に対する神の復讐でもありました。
神を信じない者は、旧約の時代、神によって遣わされた預言者たちをことごとく殺害し、時が満ちて神の一人子までも殺害し、神の栄光を自分たちのものにしようと強奪した罪が、この時代に最終的に精算されて、神の復讐という形でユダヤ人とエルサレム神殿に臨んだということです。このエルサレム陥落における、神の怒りは、そのままイエスさまが再臨される終末の裁きの模型であると言うこともできます。イエスさまが再臨するときは、全ての人類の罪が残らず精算され、神に復讐を叫ぶ、義人の血の声に、神さまがお答えになられる日なのです。信じない不敬虔な者にあって、神の復讐の日であり、これまでにも、これからもないような恐ろしい裁きの日なのです。22節をご覧ください。
神がその期間を縮めてくださらなければ、だれ一人救われない。しかし、神は選ばれた人たちのために、その期間を縮めてくださるであろう。
神さまはそのような恐ろしい怒りの日であっても、ご自身の民に対しては顧みを与えてくださり、恵みを施してくださいます。
しかし、偽メシアや偽預言者が現れて、「ここにメシアがいる」、とか「いや、こっちにいる」と言って、できれば選ばれた人たちをも惑わそうとします。ですから荒れ野において洗礼者ヨハネが現れたのと同じように公開的にメシアらしき人が現れても、或いは奥の部屋のような小部屋で秘密裏にメシアらしき人が現れても、決して信じてはならないと警告します。なぜなら、人の子が再臨するときには、どのように再臨するかというと、27節に書いてある通りだからです。
稲妻が東から西へひらめき渡るように、人の子も来るからである。
イエスさまは27節の御言葉において、3節の弟子たちの質問である、「おっしゃってください。そのことはいつ起こるのですか。また、あなたが来られて世の終わるときには、どんな徴があるのですか」という質問に、初めて答えられたと言えるでしょう。イエスさまの再臨とは、突然「稲妻」が光るように、どこからでも見える、誰でも認識できる、間違いようのない出来事として起こるのです。それは、初臨の時のように処女マリアから生まれて、人々に気づかれずに世の片隅に現れるような仕方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ですから、現代において、もし「実は聖書に書かれている再臨のメシアが、既に来られているのです」などと言われても、決してついて行ってはなりません。それは間違いなく偽メシアであると思ってください。たとえ、彼こそメシアではないかと思われる人が、数々の不思議としるしの業を行ったとしても偽メシアです。なぜなら、人の子の再臨は、ある人には認識できて、ある人には認識できなかったというような再臨の仕方ではないからです。これまでと全く異なった性質によって、どこの誰にでもすべての人に認識できるような形で再臨されるからです。そして再臨される時は世の裁きであり不信者に対する復讐の時であり、神の民であるキリスト者においては体の贖いの時、永遠の安息に入れられる栄化のときなのです。私たちは、信者であれ、不信者であれ、キリストの再臨の時、神の御前に立たされる時の準備をしているのです。
弟子たちには、イエスさまの語られた御言葉について他にまだ、理解しきれていないことがたくさんあったことと思われますが、聖霊が語られた御言葉を一つ一つ思い起こさせてくださり、その意味を後になって悟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り、恵みに与ることとなりました。ですから、弟子たちは聖霊に満たされて、世界に出て行き、御言葉を大胆に宣べ伝えることが可能となりました。彼らの確信は日々強められ、旧約時代においても、新約時代においても、同じお一人の神がおられること、そして、旧約の時代と新約の時代の貫かれている神と民との契約も一つであること、つまり、それは一方的に神から民へ恵みとして与えられますが、信仰によってでしか、それを受け取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ことを深く理解したのです。また、旧約の律法と祭祀制度が全てイエスキリストを指し示しているものであり、キリストが十字架上で、神の完全な供え物として一度捧げられることで、それらを完全に成就されたことを理解したのです。私たちはやがて個人的な終末として死を迎えることになりますが、個人的な終末であれ、宇宙的な万物の終末であれ、同じです。私たちはその日、不信者にとっては裁きの日・罪の精算の日を迎え、信者にとっては喜びの日、イエスキリストのもとに引き上げられ、永遠の安息に入れられる日を迎えるのです。この地上で生かされている中で、神は私たちに試練と困難を与えますが、それらは私たちを練り浄めて、やがて主の御前に立たされる時の準備としてくださるのです。終末の日、世の終わりの日を念頭に置きながら、私たちは忍耐と感謝をもって歩ませていただきま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