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年09月10日「人を汚すものは何か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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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を汚すものは何か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日付
説教
川栄智章 牧師
聖書
マルコによる福音書 7章14節~23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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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句のアイコン聖書の言葉

7:14それから、イエスは再び群衆を呼び寄せて言われた。「皆、わたしの言うことを聞いて悟りなさい。
7:15外から人の体に入るもので人を汚すことができるものは何もなく、人の中から出て来るものが、人を汚すのである。」
7:17イエスが群衆と別れて家に入られると、弟子たちはこのたとえについて尋ねた。
7:18イエスは言われた。「あなたがたも、そんなに物分かりが悪いのか。すべて外から人の体に入るものは、人を汚すことができないことが分からないのか。
7:19それは人の心の中に入るのではなく、腹の中に入り、そして外に出される。こうして、すべての食べ物は清められる。」
7:20更に、次のように言われた。「人から出て来るものこそ、人を汚す。
7:21中から、つまり人間の心から、悪い思いが出て来るからである。みだらな行い、盗み、殺意、
7:22姦淫、貪欲、悪意、詐欺、好色、ねたみ、悪口、傲慢、無分別など、
7:23これらの悪はみな中から出て来て、人を汚すのである。」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マルコによる福音書 7章14節~23節

原稿のアイコン日本語メッセージ

【序】

「なぜ、あなたの弟子たちは昔の人の言い伝えに従って歩まず、汚れた手で食事をするのですか。」というファリサイ派の人々と律法学者たちの質問は、当時の偽善的なユダヤ教を大変象徴的に現わしています。汚れと罪を身に招かないこと、さらに言えば、清さを保つこと(衛生的な清さではなく、霊的な聖さを保つことですが)、これは、まさに「昔の人の言い伝え」に従って歩むことにかかっていると、ファリサイ派の人々と律法学者たちは主張するのです。言い換えれば、彼らが日々行っている、手を洗う儀式にかかっていると主張するのであります。ところが、どうでしょうか。これまでのイエス様のガリラヤ地方での働きは、罪人や徴税人たちと一緒に食事をし、悪霊に取りつかれたゲラサ人や、出血の止まらない女と交わりをされ、さらに、ヤイロの娘の遺体に触れることさえ、善しとされました。イエス様の汚れに対する、ゆるく寛容な姿勢が見て取れます。さらに、ファリサイ派や律法学者たちの外側だけを、ちょこちょこっと繕う仕方を「偽善」という一言で一蹴されました。彼らはイエス様のこのような言動にイライラしていたに違いありません。本日の箇所でイエス様は、汚れとは何か、そして霊的な聖さとは何かについて、真実を語ってくださいます。

【1】. たとえを通して

14節の冒頭には、「それから、イエスは再び群衆を呼び寄せて言われた」とありますので、ファリサイ派と律法学者との論争していた所から、場面設定が変わっていることが分かります。ファリサイ派と律法学者たちの質問に対する答えは、直接、彼らに語られた訳ではなく、まず、群衆にたとえを通して語られました。14~17節をご覧ください。

“それから、イエスは再び群衆を呼び寄せて言われた。「皆、わたしの言うことを聞いて悟りなさい。外から人の体に入るもので人を汚すことができるものは何もなく、人の中から出て来るものが、人を汚すのである。」イエスが群衆と別れて家に入られると、弟子たちはこのたとえについて尋ねた。”

「たとえ」という言葉が出て来ます。ギリシア語で「パラボレ」という言葉ですが、イエス様がこの「たとえ(パラボレ)」によって教訓を話される時には、必ず何か大切な真理がそこに含まれています。この「たとえ」はまず群衆に語られ、再度、場面設定が変わり、今度は家の中で弟子たちだけに語られています。つまり、弟子たちと群衆との間には、境界線が引かれているのです。イエス様の語られる「たとえ」とは、許されている弟子たちには真理を悟るようにさせ、そして、許されていない者たちには謎として残るようにさせる、そのような性格を持っているということありましょう。しかし、マルコによる福音書は、このように特権に与っている弟子たちでさえ、群衆と同じように、その真理を全く悟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ということが、一貫して主張されています。この点が大変面白いところだと思います。弟子たちが真の悟りへと導かれるのは、イエス様の十字架と復活後の聖霊降臨を待た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続いて18~20節をご覧ください。19節20節は、聖書協会共同訳でお読みさせていただきます。

“イエスは言われた。「あなたがたも、そんなに物分かりが悪いのか。すべて外から人の体に入るものは、人を汚すことができないことが分からないのか。”

19~20節

“それは人の心に入るのではなく、腹に入り、そして外に出されるのだ。」このようにイエスは、すべての食べ物を清いものとし、さらに言われた。「人から出て来るもの、これが人を汚す。”

聖書協会共同訳では、19、20節の翻訳が若干変更されています。古い方の新共同訳では「こうして、すべての食べ物は清められる」という箇所は、イエス様の語られた御言葉の一部として翻訳されていますが、新しい翻訳では、鍵かっこが閉じられていますね。かっこが閉じられてから、「このようにイエスは、すべての食べ物を清いものとし、」と続き、この部分は著者マルコの補足説明として解釈されています。最近では、この解釈を支持する学者が増えていて、私も新しく出た、聖書協会共同訳の翻訳が正しいと思います。そうしますと、イエス様のおっしゃっていることは、どうなるかと言いますと、「いかなる食べ物も、その人を霊的に、或いは倫理的に汚す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これはひょっとしたら、重大発言ではないでしょうか。なぜなら律法には明らかに食物規定というものがありまして、汚れた動物と清い動物が厳重に区別されていたからです。おそらく(ファリサイ派と律法学者たちを除くと)「昔の人の言い伝え」を厳格に守っていた人々はそれ程多くはなかったかもしれませんが、しかし、律法の食物規定は、ユダヤ人であればほとんどが守っていたと思われます。レビ記11章と、申命記14章に食物規定について具体的に書かれていますが、申命記14:3~8を調べてみましょう。ご覧ください。

“すべていとうべきものは食べてはならない。食べてよい動物は次のとおりである。牛、羊、山羊、雄鹿、かもしか、子鹿、野山羊、羚(れい)羊(よう)、大(おお)かもしか、ガゼル。その他ひづめが分かれ、完全に二つに割れており、しかも反すうする動物は食べることができる。ただし、反すうするだけか、あるいは、ひづめが分かれただけの動物は食べてはならない。らくだ、野兎、岩狸。これらは反すうするが、ひづめが分かれていないから汚れたものである。いのしし。これはひづめが分かれているが、反すうしないから汚れたものである。これらの動物の肉を食べてはならない。死骸に触れてはならない。”

食物規定とは、簡単に言えば、食べて良い動物、食べてはならない動物が律法によって区別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食べても良い動物とは、牛、羊、山羊、鹿などです。食べてはならない動物は、らくだ、岩狸、いのししなどです。この、「いのしし」の中に豚も含まれているため、ユダヤ教の人々は、今日も豚を食べません。ユダヤ人であるイエス様も、そして弟子たちも、この食物規定をきちんと守っていたと思われます。というのは、福音書の中に、食物規定を破って飲み食いしたという描写はありませんし、そして使徒言行録を見ますと、ペトロは、イエス様の復活後も依然として食物規定をきちんと守っていて、夢の中で汚れた動物を食べることを拒否したからであります。使徒言行録10:13~14をご覧ください。

“そして、「ペトロよ、身を起こし、屠って食べなさい」と言う声がした。しかし、ペトロは言った。「主よ、とんでもないことです。清くない物、汚れた物は何一つ食べたことがありません。」”

ペトロはこのように答えました。ところが、イエス様はあえて、本日の箇所で「すべて外から人の体に入るものは、人を汚すことができない、それは人の心に入るのではなく、腹に入り、そして外に出されるのだ」と言われました。

もちろんイエス様は、律法を廃棄するためにこのことをおっしゃったのではないと思われます。なぜなら、先ほども申しましたように、イエス様も弟子たちも食物規定を守っていたと考えられるからです。少し余談になりますが、ではなぜ、旧約聖書において、このような食物規定が定められたのでしょうか?これが定められた理由とは、イスラエルを目に見える形で、異教の人々から区別するためであったと考えられます。異教の人々が美味しそうに食べる豚肉ですが、イスラエルの民はあえて食べることをしませんでした。豚が汚れた動物として区別されていたからです。このように周囲の異教の民が当然のようにしていることを、イスラエルの民には許されなかった、それは自分たちが神の民として区別されており、神の宝の民であるというアイデンティティを、はっきり自覚させるためであったと考えられます。汚れを身に招くことを、未然に防止するためにこの食物規定が定められたのではなく、イスラエルの民は汚れた、罪深い者でありますが、神様がその罪を赦してくださり、清めてくださったことを覚えるために、食物規定を守ったのです。言い換えるなら、自分たちが聖なる民であるという、その主の約束に堅く立つため、神との関係が和解されたという、その信仰に生きるために、食物規定を守ったのであります。

【2】. 汚れの根源である心

人を汚すのは、むしろその人の中から、人の心から出てくると、主イエス様は言われます。人の心こそ、汚れ、罪、腐敗の根源だと言うのです。人の心から出て来る「悪い思い」を7:21~23において、12個列挙しています。21~23節をご覧ください。

“中から、つまり人の心から、悪い思いが出て来る。淫行、盗み、殺人、姦淫、貪欲、悪意、欺き、放縦、妬み、冒瀆、高慢、愚かさ、これらの悪はみな中から出て来て、人を汚すのである。」”

これら12個の悪い思いは、まさに心から出て来るのであり、人の心こそ、罪と汚れの根源であるのです。罪とは、人の外側に、人の周辺にあるのではなく、実に人の心の中にあり、ここから、人格に全体に満ち、人類全体に、社会全体に拡大していくのであります。そして、聖書は、罪のない人は一人もいないと主張します。人間の心そのものが、人間の良心そのものが、人間の意志そのものが、既に罪によって暗くなり、腐敗していると主張するのです。考えられますでしょうか?人は、幼い時から、赤ん坊の時から、もう既に、心に罪を持って生まれて来るのです。どんなに、上品で清らかに見える人でも、主の御前に堂々と立つことができる人は、いません。汚れとは、すべての人間の心に既に存在し、どんなに外側を儀式的に清めても、全く意味がないのです。内側の心を清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

日本では以前、万引きの検挙数が増加し社会問題化しました。最近では、減少傾向にありますが、セルフレジの普及と、人員削減により、検挙数には現れていないものの、隠れた被害があるのではないかとも言われています。そして、最近では経済的に余裕のある人まで万引きに手を染めるケースがあるようです。万引きは、アルコールやギャンブルと同じように依存症に陥りやすく、一度成功すると、習慣化し、徐々にエスカレートしていくというデータもございます。それでは、なぜ万引きをしてしまうのでしょうか、万引きをする側において、様々な理由があるかと思いますが、その理由として、経済的理由の他にも、ストレスを発散させるため、スリル感を味わうため、などが挙げられています。つまり突き詰めれば、犯罪の原因は、ストレスや、心の中の孤独感、夫婦問題、家族不和に行きつくのです。孤独でストレスに晒された心が癒さ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心が平安に満たさ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心が清めら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では、それは、一体どのようにして可能だと言うのでしょうか。人間は自分が罪人であることや、自分が汚れていることを、光である神様に照らしてもらわないと認識することすらできません。人を聖くするのは、専ら神さまの御業であって、人間の行いによるの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なぜなら、人間にはその汚れさえ認識できないからです。聖霊の光に照らされて、初めて自分の罪に、気づきが与えられるのです。罪からの聖めとは、私たちの罪の為に十字架に架かられ、復活してくださった神様の恵みによる以外にはあり得ません。イエス・キリストを受け入れる時に、聖霊により、私たちがキリストの血によって洗い清められたという霊的事実を、心の深い部分で、信じ、受け入れられるようになり、平安に包まれるのです。イエス・キリストを受け入れる時に、心が清められ、罪の赦しを実感し、依存症や悪い習慣から離れることが出来るのです。

【結論】

罪と汚れは、私たちの心の中から出て来ます。決して外側をきれいにすることで、清められるのではありません。私たちは絶えず、心の中から罪を犯します。イエス様を救い主として信じ、受け入れた後でさえ、日々私たちは、罪を犯してしまう弱い存在です。兄弟姉妹を心の中で裁き、自分のことを他人より優れていると考え、そのような心から、舌を通して、あらゆる罪がまき散らされるのです。この心は、イエス・キリストの血によってでなければ、清めら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私たちは特に言葉に注意し、言葉によって罪を犯さないように致しましょう。そして、罪を犯したなら、何度でもイエス様に罪を告白し、清めをいただくように致しましょう。腐敗し、汚れてしまった私たちの心を清め、救い出してくださるイエス・キリストに依り頼み、主イエス様との交わりを心から感謝し、この方を心から礼拝してゆく私たちとならせていただきましょう。そして、主の足跡に従うこの私たちの歩みに、共に足並みをそろえて行くことができる兄弟姉妹が、この教会において与えられていることに感謝して、歩んでいく私たちとならせていただきたいと願います。

原稿のアイコンハングル語メッセージ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2023년 9월 10일 센겐다이교회 주일설교

마가복음 7장 14~23절

서론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라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질문은 당시 위선적 유대교를 매우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더러움과 죄를 초래하지 않는 것, 나아가 정결함을 유지하는 것(위생적인 깨끗함이 아니라 영적인 성결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만), 이것은 바로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는데 달려 있다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주장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이 매일 행하고 있는, 손을 씻는 의식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떨까요? 지금까지 예수님의 갈릴리 지방에서의 사역은 죄인이나 세금 징세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더러운 귀신 들린 거라사인과 출혈이 멈추지 않는 여인과 접촉하며 심지어 야이로 딸의 시신을 만지는 것조차 선한 사역으로 여겨졌습니다. 예수님의 더러움에 대한 느슨하고 관용적인 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의 외면만 살짝살짝 다듬는 방법을 「위선」이라고 한마디로 일축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언동에 짜증이 났음에 틀림없습니다. 오늘 자리에서 예수님은 더러움이 무엇인지, 그리고 영적인 거룩함이 무엇인가에 관해서 진실을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1) 비유를 통해서

14절의 첫머리에는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의 논쟁으로부터 장면 설정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질문에 대한 답은 직접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먼저 무리에게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14~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17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비유」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스어로 「파라볼레」라는 말인데 예수님께서 이 「비유 (파라볼레)」로 교훈을 말씀하실 때에는 반드시 무언가 소중한 진리가 거기에 담겨 있습니다. 이 「비유」는 먼저 무리들에게 이야기 되었고, 다시 장면 설정이 바뀌었고, 이번에는 집안에서 제자들에게만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즉, 제자들과 무리 사이에는 경계선이 그어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비유」란 용서받은 제자들에게는 진리를 깨닫게 하고, 용서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수수께끼로 남게 하는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이처럼 특권을 누리고 있는 제자들조차 무리와 마찬가지로 그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 일관되게 주장되고 있습니다. 이 점이 매우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이 진정한 깨달음으로 인도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후 성령강림을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18~20절을 살펴보겠습니다. 19, 20절은 성경협회 공동역(일본어)으로 읽겠습니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19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20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일본어의 성경협회 공동역에서는 19,20절 번역이 약간 변경되었습니다. 오래된 번역본에는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는 구절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말씀의 일부로서 번역되었습니다만, 새로운 번역에서는 괄호가 사용되어져 있습니다.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라고 이어지는 「이러므로.. 」 이 부분부터는 저자 마가의 부속설명으로서 해석되어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 번역을 지지하는 학자가 늘었고 저도 최근 나온 성경협회 공동역의 번역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어떤 음식도 그 사람을 영적으로 혹은 윤리적으로 더럽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중대발언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율법에는 분명히 음식 규정이라는 것이 있어서 부정한 동물과 정결한 동물이 구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제외하면) 장로들의 전통을 엄격히 지키던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율법의 음식 규정은 유대인이라면 대부분이 지켰을 것으로 보입니다.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장에 음식 규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데, 신명기 14장 3~8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보시기 바랍니다.

3 너는 가증한 것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라

4 너희가 먹을 만한 짐승은 이러하니 곧 소와 양과 염소와

5 사슴과 노루와 불그스름한 사슴과 산 염소와 볼기가 흰 노루와 뿔이 긴 사슴과 산양들이라

6 짐승 중에 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도 하는 모든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라

7 다만 새김질을 하거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것이니 곧 낙타와 토끼와 사반, 그것들은 새김질은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니 너희에게 부정하고

8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런 것의 고기를 먹지 말 것이며 그 사체도 만지지 말 것이니라

음식 규정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먹어도 좋은 동물, 먹어서는 안된는 동물이 율법에 의해서 구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먹어도 되는 동물이라는 것은 소, 양, 산양, 사슴등입니다. 먹지 말아야 할 동물은 낙타, 사반(바위 너구리), 멧돼지 등입니다. 이 멧돼지 속에 돼지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유대교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돼지를 먹지 않습니다. 유대인이신 예수님도 그리고 제자들도 이 음식 규정을 잘 지켰다고 생각됩니다. 그 말은 복음서 속에 음식 규정을 어기고 먹었다는 묘사는 없고, 그리고 사도행전을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 후에도 여전히 음식 규정을 잘 지키고 있어 꿈속에서도 더러운 동물을 먹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0장 13,14절을 참조하십시오.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굳이 오늘의 구절에서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기하기 위해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도 제자들도 음식 규정을 지켰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조금 여담이 되겠지만, 그럼 왜 구약성경에서 이런 음식규정이 정해졌을까요? 이것이 정해진 이유는 이스라엘을 가시적인 형태로 이교도 사람들로부터 구별하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교도인들이 맛있게 먹는 돼지고기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굳이 먹지 않았습니다. 돼지가 부정한 동물로 구별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위의 이교도인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고 하나님의 기업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자각시키기 위함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더러움을 몸에 초래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 음식 규정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더럽고 죄 많은 자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죄를 용서해 주시고 정결하게 해 주셨음을 기억하기 위해 음식 규정을 지킨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들이 거룩한 백성이라는 그 주의 약속에 굳게 서기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해되었다는 그 믿음에 살기 위해 음식 규정을 지킨 것입니다.

(2) 더러움의 근원인 마음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오히려 그 사람 안에서,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나온다고 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더러움, 죄, 부패의 근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나쁜 열두 가지 생각을 7장 21~23절에서 12개 열거하고 있습니다.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이 열두 가지 나쁜 생각은 바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죄와 더러움의 근원입니다. 죄란 사람의 바깥쪽에, 사람의 주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로 사람의 마음속에 있고, 여기서부터 인격 전체에 영향을 주고, 인류 전체에, 사회 전체에 확대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죄가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마음 자체가, 인간의 양심 자체가, 인간의 의지 자체가 이미 죄로 인해 어두워지고 부패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아기 때부터 이미 마음에 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상하고 청렴하게 보이는 사람이라도 주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더러움이란 모든 인간의 마음에 이미 존재하고 아무리 바깥을 의식적으로 맑게 해도 전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내면의 마음이 정결해야만 합니다.

일본에서는 이전에 도둑질 검거 수가 증가하여 사회 문제화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감소 추세이지만 셀프 계산대의 보급과 인력 감축으로 검거 수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숨은 피해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까지 훔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도둑질은 알코올이나 도박과 마찬가지로 중독에 빠지기 쉽고, 한 번 성공하면 습관화되어 점점 더 에스컬레이트 되는 경향이 있다는 데이터도 있습니다. 그러면 왜 도둑질을 하게 될까요? 도둑질을 하는 사람에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로 경제적인 이유 외에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스릴감을 느끼기 위해서 등이 꼽히고 있습니다. 즉 따지면 범죄의 원인은 스트레스나 마음속의 고독감, 부부문제, 가족불화에 이르는 것입니다. 고독하고 스트레스에 노출된 마음이 치유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평안하게 채워져야 합니다. 마음이 정결해져야 하는 거죠.

결론

죄와 더러움은 우리 마음속에서 나옵니다. 보여지는 외면을 깨끗이 한다고 결코 정결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마음속으로 죄를 짓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받아들인 후에도 날마다 우리는 죄를 짓는 약한 존재입니다. 형제자매를 마음속으로 심판하고 자신을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그런 마음에서 혀를 통해 온갖 죄가 뿌려지는 것입니다. 이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면 정화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특히 말에 주의하고 말로 죄를 짓지 않도록 합시다. 그리고 죄를 지었더라도 몇번 이라도 예수님께 죄를 고백하고 정결함을 받도록 합시다. 부패하고 더러워진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구원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의지하며 주 예수님과의 교제를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 분을 진심으로 예배드리는 우리가 되도록 합시다. 그리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이 우리의 발걸음에 함께 발맞춰 갈 수 있는 형제자매가 이 교회에서 주어졌음에 감사하며 걸어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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