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の子の再臨 인자의 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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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マタイによる福音書 24章29節~36節
29「その苦難の日々の後、たちまち/太陽は暗くなり、/月は光を放たず、/星は空から落ち、/天体は揺り動かされる。
30そのとき、人の子の徴が天に現れる。そして、そのとき、地上のすべての民族は悲しみ、人の子が大いなる力と栄光を帯びて天の雲に乗って来るのを見る。
31人の子は、大きなラッパの音を合図にその天使たちを遣わす。天使たちは、天の果てから果てまで、彼によって選ばれた人たちを四方から呼び集める。」
32「いちじくの木から教えを学びなさい。枝が柔らかくなり、葉が伸びると、夏の近づいたことが分かる。
33それと同じように、あなたがたは、これらすべてのことを見たなら、人の子が戸口に近づいていると悟りなさい。
34はっきり言っておく。これらのことがみな起こるまでは、この時代は決して滅びない。
35天地は滅びるが、わたしの言葉は決して滅びない。」
36「その日、その時は、だれも知らない。天使たちも子も知らない。ただ、父だけがご存じである。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マタイによる福音書 24章29節~36節
인자의 재림
2019년 3월3일 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마태복음 24장 29절~36절
우리가 믿는,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전혀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만약 이 세상에서 현세가 전부이며, 마지막 날의 구원과 악에 대한 심판 따위가 없다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인자의 재림과,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 그리고 완전한 속죄에 대해 설명하고 계십니다. 인자의 재림에 희망을 두는 것으로, 앞으로 제자들에게 닥칠 어려운 시기를 인내하도록 격려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격려의 말씀은,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암시적으로 설명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이 필요하게 됩니다. 29절을 보십시오.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여기에는 하늘의 만상이 이변을 일으키고 세상의 질서 체계가 뒤흔들린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이는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자가 재림하기 전에 일어날「시련과 고난」에 대해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인용된 이사야서 13장 9-10절을 펼쳐 보십시오.
이사야 13장
9 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10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
태양과 달과 별, 천체들이 빛을 잃는다는 것은, 종말에 이르러 모든 악이 절정에 달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믿음을 지키고 경건하게 살아가려 해도, 한편으로는 이 세상이 마치 그리스도를 거스르는 듯 점점 더 어두워지고 빛을 잃으며, 악의 구름이 온 세상을 뒤덮어 세상을 더욱 깊은 어둠 속으로 빠뜨리게 할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가려지고,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을 보면, 인자의 도래에 따른,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 및 구속에 대해서는 평화, 공의, 기쁨, 모든 선한 것에 대한 성취로서 화려하고 호화롭게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제자들의 관심은,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쯤, 그「하나님 나라의 완성」과 「완전한 구속」과 같은 「영광과 안식」이 자신들에게 찾아올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나라가, 예수님에 의해 지금 막 시작되려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모욕과 박해를 받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그리스도처럼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한다는 점에 있어, 예수님께서 그 나라에 대한 「이전」과 「이후」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에게는 좀처럼 납득이 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데, 도대체 어떤 권위로 해와 달과 별을 어둡게 하여 세상의 체제와 질서를 뒤흔들려는 것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왜 여전히 그런 시련과 어려움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의문입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과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에는, 인내해야 할 과정, 우리가 달려야 할 과정, 죄와 싸워 나가야 할 과정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인자의 재림」이야말로 이 과정을 종결 짓는 궁극적인 해답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고통과 고난이 더해가는 가운데, 더 이상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인자가 재림하셔서 즉시 어둠을 걷어내시고, 한낮 같은 밝은 빛 속에서 그리스도의 위대한 위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30절을 보십시오.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예수님께서는, 그날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적할 것을 미리 아시고,「땅의 모든 족속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울며 통곡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 마음껏 자신들의 번영을 누리고 쾌락에 취해 온 끝에, 하나님을 조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해 온 것에 대한 심판이 내려짐으로써, 그동안의 그들의 번영과 쾌락이 비통과 이를 갈음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주님의 날, 즉 여호와의 날을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의 날」로 표현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 34:8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사야 34
8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복하시는 날이요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 신원하시는 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엘 1:15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엘 1장
15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아모스 5:18절도 보시겠습니다.
아모스 5장
18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스가랴 12:10입니다. 보십시오.
스가랴 12장
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아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불신자들은 2000년 전,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았던 그분을, 두려움 속에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2000년 전, 비천한 종의 모습으로 오셨던 그분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위대한 능력과 영광을 입고 오시는 것을 슬퍼하며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멸망의 때이며, 불타는 지옥에 던져질 때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택하신 백성을 소집하기 위해 나팔을 사용하시고 천사들을 보내십니다. 백성을 소집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나팔 소리는 무서운 심판의 신호가 아니라, 완전한 구원의 신호임을 기억해 주십시오. 31절을 보십시오.
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이 나팔 소리는 버림받은 자들에게는, 소름이 끼칠 만한 파멸을 알리는 소리일지 모르지만, 선택받은 자들에게는 완전한 속죄를 의미하며, 새로운 생명을 얻으라고 알려주는 기쁜 소리가 됩니다. 옛날에 뿔나팔은 새로운 왕이 즉위할 때 불렸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그리스도께서 왕 중의 왕으로서 명실상부하게 통치하심을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함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그리스도께서 인자로 오셨을 때도 왕이신 것은 틀림없지만). 나팔과 뿔나팔 물건은 다르지만 용도는 같았다고 생각됩니다. 바울은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우리, 믿는 자들의 상태를 로마서 8장 23절에서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피조물뿐만 아니라 「영」의 첫 열매를 받은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지시는 것, 즉 몸의 속량을 마음속으로 탄식하며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나팔 소리를 듣게 된다면 상황이 바뀌게 됩니다. 누가복음의 병행 구절인 21:28절을 보십시오.
누가복음 21장
28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구원의 때란, 즉 영어 성경에서는 redemption, 곧 구속의 때가 가까웠다는 의미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소집의 목적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데살로니가전서 4: 16-17절을 보십시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즉, 인자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셔서, 나팔 소리에 따라 자신의 백성을 소집하십니다. 그리고 천사를 보내어 온 세상의 끝에서 끝까지 그리스도인들을 모으십니다. 그들은 구름에 싸여 하늘로 들려 올려져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고, 아버지께 나아가, 아들과 함께 나라를 상속받아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그날은 얼마나 놀랍고 영광으로 가득 찬 날이겠습니까. 현재 인류는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같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똑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끝에 일어날 그리스도의 재림은, 전 인류에게 똑같이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 안에는 두 가지로 나뉘게 되며, 그 구분에 따라 전혀 다른 사건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사건을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여름이 되면 맛있는 무화과를 먹을 수 있습니다. 첫 무화과는 6~7월에 열매를 맺는데, 특히 무화과 열매는, 잎이 무성해지기 전에 열매를 맺기 때문에, 첫 무화과의 경우,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자라 맛있는 무화과 열매를 먹을 수 있게 되면, 이제 본격적인 여름도 코앞이라는 뜻입니다. 겨울 동안 죽은 듯했던 무화과나무가 다시 살아나는 듯, 열매를 맺고 잎을 무성하게 틔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도 이와 같아서, 어둠과 고난 속에서 죽은 듯한 고통스러운 시기는 결국 끝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 있는 동안,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 인내해야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36절을 보십시오.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재림을 믿으며 인내하며 간절히 기다리기를 바라시지만, 그것이 언제일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굳이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날은 천사도 아들이라도 알지 못하므로, 오만하게 그것을 캐물으려 하지 말고,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더라도 그 날이 올 것을 인내하며 기다리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은 이 구절을 들어, 아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즉, 예수님은 확실히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아들이실지 모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하나님의 아들이지, 하나님 그 자체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은, 예수님께서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완전한 하나님이신 아들에게서, 지식의 부족이라는 것이 과연 신성을 부정하는 것이 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혹은 그리스도께 무지가 있었다는 것이, 죄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첫째, 재림의 때에 대해서는 천사들도 알지 못한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무지는 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사들은 결코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만약 하늘에 반역하여 죄를 짓는다면, 그 순간 악령이나 사탄으로 변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며, 그들에게는 버림받은 자들과 함께 멸망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둘째로, 그리스도께서 중보자의 직무를 수행하시는 데 있어, 그리스도의 신성은, 인성이 처리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면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아시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면에서는, 무언가를 모르신다고 해도 그것은 조금도 부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생활하시면서 실제로 슬퍼하시거나, 불안해하시거나,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시거나, 사람들의 불신을 놀라워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왜 그런 반응을 보이시는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되어 버리겠지요.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애초에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짊어지시기 위해 육신을 취하시고, 완전한 사람이 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인 그리스도께서, 재림의 날을 알지 못하셨다는 사실은 결코 그리스도의 신성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그때까지의 종으로서의 겸손한 기간이 끝나고, 마침내 왕 중의 왕, 주의 주로 높이 들려지셨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만물에 대한 통치와 권세가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전지하신 주로서 통치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주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만물이 구속되고, 나팔 소리와 함께 그 나라를 상속받는 영광의 날이 올 것을 바라보며, 점점 더 거세지는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도 일어나 머리를 들고, 인내하는 자가 되도록 합시다.
私たちが信じている死者の復活が、もし無ければ、私たちの信仰は全く意味のないものになってしまいます。もし、この世において、現世が全てであり、終わりの日の救いと悪に対する裁きなどなかったなら、信仰をもって歩んでいる私たちこそ、この世界で最も惨めで、愚かな者となってしまうでしょう。本日の箇所では、イエス様は弟子たちに、人の子の再臨と、そして御国の完成と、完全な贖いについて説明しています。人の子の再臨に希望を持つことによって、今後弟子たちに襲い掛かるだろう困難な時代を忍耐するようにと励ましておられます。しかし、イエスさまの励ましの言葉は、預言者の言葉を使いながら黙示的に説明しておられるので、そのことが何を意味するのか、そこに解釈が必要になってまいります。29節をご覧ください。
「その苦難の日々の後、たちまち/太陽は暗くなり、/月は光を放たず、/星は空から落ち、/天体は揺り動かされる。
ここには天の万象が異変をもたらすことと、世の秩序体系が揺さぶられるということが書かれていますが、これは、エルサレムの神殿滅亡について言っているのではなくて、人の子が再臨する前に起こる「試みと困難」について書かれていると思われます。引用元であるイザヤ書13:9-10をお開きください。(旧約p1080)
見よ、主の日が来る/残忍な、怒りと憤りの日が。大地を荒廃させ/そこから罪人を絶つために。
天のもろもろの星とその星座は光を放たず/太陽は昇っても闇に閉ざされ/月も光を輝かさない。
太陽と、月と、星と、天体が光を失うというのは、終末において、全ての邪悪の集大成がなされることを意味しています。ですから、教会が信仰を守り、敬虔に歩もうとしても、一方においてこの世はキリストに逆らうかのように、いよいよ暗く、光を失い、邪悪の雲が全体を覆い、世の中を一層、深い闇へ落とし入れるようにします。そこでは、キリストの恵みが隠ぺいされ、人々を救いに導くことがいよいよ難しくなってくるでしょう。
しかし、旧約聖書を見ると、人の子の到来に伴う御国の完成と贖いについては、平和、公義、喜び、すべての善なることに対する成就として華々しく豪華絢爛に約束されています。ですから当然ですが、弟子たちの関心は、それでは一体いつになったら、その「御国の完成と、完全な贖い」というような、「栄光と安息」が自分たちに訪れるのでしょうかということでした。というのは、キリストの国が、イエスさまによって、今まさに始まろうとしているのに、その国は相変わらず人々から辱められ、迫害され、キリストの弟子たちもキリストと同じように十字架を担い、死を覚悟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教えられるからです。キリストの国が臨むということにおいて、イエスさまからその国のついてのビフォーとアフターで分かり易く説明していただいても、弟子たちには中々納得の行くもの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キリストの国が始まったというのに、一体何の権威によって、太陽と月と星を暗くさせて、世の体系と秩序を揺さぶろうとするのか、という疑問です。なぜ相変わらずそのような試練と困難が起こるのかという疑問です。
これについては、神の国の開始と、神の国の完成には忍耐すべきプロセス、私たちが走り終えるべきプロセス、罪と戦っていくプロセスが備えら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した。そして「人の子の再臨」こそが、このプロセスを終結させる究極の答え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最後の苦痛と艱難が増し加わる中にあって、もうこれ以上、信じ続けることが難しいような状況にあって、人の子が再臨し、直ちに暗黒を取り除いて、真昼のような明るさの中で、キリストの大いなる威厳が現れるのです。30節をご覧ください。
そのとき、人の子の徴が天に現れる。そして、そのとき、地上のすべての民族は悲しみ、人の子が大いなる力と栄光を帯びて天の雲に乗って来るのを見る。
イエスさまはその日、大多数の人々が、キリストの教えを無視し、キリストの国に逆らうことを予め見通されて、「地上の全ての民族」はという言葉を使っています。そして彼らは泣きながら慟哭するだろうとおっしゃっているのです。この世において不敬虔な者が思う存分、自分たちの繁栄を享受し、快楽に陶酔してきた挙句に、神をあざけり、イエス・キリストを無視してきたことに対する審きが下されることによって、それまでの彼らの繁栄と快楽が、悲痛と歯ぎしりに変えられるのです。旧約の預言者たちは、主の日、つまりヤハウェの日を人間の罪に対する、「神の復讐の日」として表現しました。例えば、そのままお聞きくださればと思いますが、イザヤ34:8には、
まことに、主は報復の日を定められる/シオンにかかわる争いを正すための年を。
とあります。ヨエル1:15には、
ああ、恐るべき日よ/主の日が近づく。全能者による破滅の日が来る。
とありまして、アモス5:18には、
災いだ、主の日を待ち望む者は。主の日はお前たちにとって何か。それは闇であって、光ではない。
最後にゼカリヤ12:10です(旧p1492)。ご覧ください。
わたしはダビデの家とエルサレムの住民に、憐れみと祈りの霊を注ぐ。彼らは、彼ら自らが刺し貫いた者であるわたしを見つめ、独り子を失ったように嘆き、初子の死を悲しむように悲しむ。
不信者は、自分たちが2000年前に十字架に刺し通したそのお方を、恐怖の中で眺めることになるのです。2000年前、卑しい僕の姿をもって来られたはずのお方が、天から雲に乗って大いなる力と栄光を帯びてやって来るのを悲しみながら眺めることになるのです。なぜなら彼らの破滅の時であり、燃える火の地獄へ投げ込まれる時だからです。一方においてイエスさまは、ご自分の選びの民を召集するためにラッパを用いられ、天使たちを遣わされます。民を召集する目的は何でしょうか。それは贖うためです。ですからラッパの音は恐ろしい審判の合図ではなく、完全な贖いの合図であることを覚えておいてください。31節をご覧ください。
人の子は、大きなラッパの音を合図にその天使たちを遣わす。天使たちは、天の果てから果てまで、彼によって選ばれた人たちを四方から呼び集める。」
このラッパの音は、遺棄された者たちには鳥肌が立つような破滅を知らせる音かもしれませんが、選ばれた者たちにとっては、完全な贖いを意味し、新しい生命を取るようにと知らせてくれる喜ばしい音となります。昔、角笛は、新しい王が即位した時に吹かれました。ですから、キリストが王の王として名実共に君臨された事を全世界に告げ知らせるためであるとも考えられます(キリストは人の子として来られた時も王であることには違いないが)。ラッパと角笛は物は違いますが、用途は同じだったと考えられます。パウロは、再臨を待ち望む私たち信仰者の状態をロマ書8:23において「体の贖われることを待ち望んでいる」と言い表しています。
被造物だけでなく、“霊”の初穂をいただいているわたしたちも、神の子とされること、つまり、体の贖われることを、心の中でうめきながら待ち望んでいます。
そして、もしラッパの音を聞いたなら状況が変えられるのです。ルカによる福音書の並行節である21:28をご覧ください。
このようなことが起こり始めたら、身を起こして頭を上げなさい。あなたがたの解放の時が近いからだ。
解放の時とは、つまり英語の聖書ではredemptionつまり、贖いの時が近いという意味です。ルカには召集の目的がはっきり書かれているのです。また、1テサロニケ4:16-17をご覧ください。
すなわち、合図の号令がかかり、大天使の声が聞こえて、神のラッパが鳴り響くと、主御自身が天から降って来られます。すると、キリストに結ばれて死んだ人たちが、まず最初に復活し、
それから、わたしたち生き残っている者が、空中で主と出会うために、彼らと一緒に雲に包まれて引き上げられます。このようにして、わたしたちはいつまでも主と共にいることになります。
つまり、人の子が天の雲に乗って来られ、ラッパの音によってご自身の民を召集します。そして、み使いを遣わし全世界の果てから果てまでキリスト者を集められます。彼らは雲に包まれて引き上げられ、空中で主とお会いし、御父のもとに出て御子と共に御国を相続し、永遠に主と共に生きることになります。その日は何と素晴らく、栄光に満ちた日でしょうか。現在、人類はキリスト者であろうが、非キリスト者であろうが同じ歴史の流れの中で、同じように時を過ごしています。しかし歴史の終わりに起こる、キリストの再臨は、全人類に同じように訪れるのではありません。人類の中に二つの色分けがなされ、その色分けに従って全く異なる出来事として現れるのです。
この終末とキリストの再臨の出来事を私たちは信じなければなりません。イスラエルでは夏になるとおいしいイチジクを食べることが出来ます。初なりのイチジクは6~7月に実を結びますが、特にイチジクの実というのは葉が生い茂る前に結実しますので、初なりのイチジクの場合、枝が柔らかくなり、葉が伸びて、おいしいイチジクの実が食べられるようになると、もう夏本番も間近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冬の間、死んでいたかのようなイチジクの樹木が息を吹き返すかのように実を結び、葉を生い茂らせるのです。キリストの再臨もこれと同じであり、暗闇と苦難の中で死んだような辛い時期は、ついには終わるということを教えてくれます。ですから、私たちはこの地上で生かされている間、最後まで信仰をもって耐え忍ば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最後に36節をご覧ください。
「その日、その時は、だれも知らない。天使たちも子も知らない。ただ、父だけがご存じである。
イエスさまは、主の再臨を信じながら、忍耐して待ち望むことを切望されますが、それがいつになるのだろうかという問題に対しては、あえて知ろうとしてはならないとおっしゃっています。その日は天使も御子も知らないので、傲慢にそれを詮索しようとしないで、確実な時期は分からないけれど、その日が来ることを、耐えながら待つことを願われています。
ところがエホバの証人は、この箇所を取り上げて、御子は、全知の神ではないと主張します。つまり、イエスさまは確かに聖書に書かれている神の子であるかもしれないが、それは神の被造物としての神の子であって、神そのものではないと主張するのです。三位一体を受け入れません。
私たちの信仰告白は、イエスさまは、完全な神であり完全な人であると告白します。それでは完全な神である御子において、知識の不足といういのが、果たして神性を否定することになるのかということを考えてみなければなりません。或いは、キリストにおいて無知があったということは、罪の故であると言えるのかどうかと言うことです。
第一に、再臨の時については、み使いたちも知らないと書かれていることから、無知は罪の故ではないということが分かります。み使いは一切罪を犯してはいないからです。み使いがもし天に反逆し罪を犯すならその瞬間に悪霊やサタンに代わってしまうからであり、彼らには遺棄される者と共に滅びが約束されているのです。
第二に、キリストが仲保者の職務を成し遂げることにあたって、キリストの神性は、人性が処理できる問題に対しては前面に現れることは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す。ですからすべてのことを知っておられるキリストが、人間として理解できる面においては、何かを知らずにいるといってもそれは少しも不自然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もし、そうでなかったとしたら、キリストが、弟子たちと生活する中で、実際に悲しまれたり、不安になられ、血の汗を浸らせながら祈ったり、人々の不信仰を驚かれたりしましたが、神が、なぜそのような反応をするのか、そんなことはあり得ないということになってしまいますね。しかし、キリストはそもそも、私たちの罪の刑罰を代わりに引き受けるために肉体をとられ、完全な人となられたのでした。ですから、人であるキリストが再臨の日を知らなかったという事実は、決してキリストの神性を傷つけること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キリストが復活されて、それまでの僕としての遜りの期間が終了し、ついに王の王、主の主として高く挙げられたとき、キリストは明白に万物に対する支配と権力がご自身に与えられたという御言葉を語られたのです。その時、全知の主として君臨されるのです。
私たちはこの救い主キリストに信頼し、そして、主が再び来たりたまいて、万物が贖われ、ラッパの音と共に御国を相続する栄光の日が来ることを見据えながら、いよいよ激しくなる、試練や困難にあっても、身を起こして頭を上げながら、耐え忍ぶ者とならせていただきま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