内に宿っている神の御霊 내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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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説教
-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ローマの信徒への手紙 8章1節~11節
1従って、今や、キリスト・イエスに結ばれている者は、罪に定めら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2キリスト・イエスによって命をもたらす霊の法則が、罪と死との法則からあなたを解放したからです。
3肉の弱さのために律法がなしえなかったことを、神は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つまり、罪を取り除くために御子を罪深い肉と同じ姿でこの世に送り、その肉において罪を罪として処断されたのです。
4それは、肉ではなく霊に従って歩むわたしたちの内に、律法の要求が満たされるためでした。
5肉に従って歩む者は、肉に属することを考え、霊に従って歩む者は、霊に属することを考えます。
6肉の思いは死であり、霊の思いは命と平和であります。
7なぜなら、肉の思いに従う者は、神に敵対しており、神の律法に従っていないからです。従いえないのです。
8肉の支配下にある者は、神に喜ばれるはずがありません。
9神の霊があなたがたの内に宿っているかぎり、あなたがたは、肉ではなく霊の支配下にいます。キリストの霊を持たない者は、キリストに属していません。
10キリストがあなたがたの内におられるならば、体は罪によって死んでいても、“霊”は義によって命となっています。
11もし、イエスを死者の中から復活させた方の霊が、あなたがたの内に宿っているなら、キリストを死者の中から復活させた方は、あなたがたの内に宿っているその霊によって、あなたがたの死ぬはずの体をも生かしてくださるでしょう。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ローマの信徒への手紙 8章1節~11節
내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영
2019년 6월 9일 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로마서 8장 1절~11절
오늘은 오순절 예배입니다. 오순절에 일어난 사건이란, 성령이 강림하셔서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안에 내주하게 되신 사건입니다. 성령이 강림하심으로써 도대체 무엇이 일어났느냐 하면,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에게 적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는, 성자가 얻으신 모든 것을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적용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해진 후에야 비로소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떠올리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 성취하신 일과, 그로 인해 그들이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에 대해 성령을 통해 비로소 깨닫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오순절 날,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 비로소 신앙 고백이 생겨났고, 신약의 교회가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로마서 8장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내주하시는 성령님에 의해 우리의 매일의 신앙 생활이 지탱되고, 격려받으며, 율법을 지키는 자로 만들어지고, 마침내 생명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머지않아 구원이 완성될 것이라는 확실한 보증으로서 성령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바울은 7장까지 그리스도인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육신과 맞서 싸우며, 육신의 생각과 마음에 새겨진 법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대해 길게 이야기한 후, 신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다시 돌아오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7장에는「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결코 바울의 과거,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을 무렵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신학자는 이것이 예전에, 아직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시절을 회상한 것이며, 여기서는 바울의 참회 고백으로서 삽입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하지만, 그렇지 않고 여전히 육체의 연약함 속에 놓여 있다는 것도 바울의 현실입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결론적으로 8장부터「그러므로」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에서 말해지는 「구원」이란 구원의 완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구원의 시작에 관한 것이며, 여전히 육신 속의 연약함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고자 희망하는, 우리가 처해 있는 긴장 상태가 드러나 있고, 여전히 믿음 안에서의 전투 상태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본래 우리 위에 내려졌어야 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은, 죄가 없으셨으나 사람이 되신 예수님께 죽음의 형벌이 내려졌기 때문에, 죽음은 더 이상 우리를 죄의 노예로 묶어둘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죽음의 지배에서 해방되어, 생명을 주는 영의 지배로 옮겨진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보충 설명을 드리자면, 2절에 나오는「생명의 성령의 법」이나 「죄와 사망의 법」은, 헬라어 원문을 보면 모두 「노모스(nomos)」 즉 「율법」이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영어로는 the law입니다. 헬라어에서 「율법」과 「법칙」을 구별하는 표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예: 대문자로 표기하는 등). 따라서 번역자가 어떤 곳에서는 「율법」으로, 어떤 곳에서는 「법칙」으로, 문맥에 따라 다르게 번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7장에서 율법에 대해 지극히 많이 다루고 있으므로,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법칙」이 아니라 「율법」으로 번역하는 것이 무난하다고 생각됩니다. 참고로 이러한 번역의 어려움은 「영」이라는 단어에서도 드러납니다. 「영」 앞에 「거룩한(프뉴마 하기온)」과 같은 수식어가 붙어 있다면 틀림없이 성령을 가리키지만, 단순히 「영, 프뉴마」라고만 적혀 있다면, 성령인지 인간의 영인지, 글자 자체만으로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10절을 보면 「영」이라는 단어가 쉼표로 묶여 있는데(구일본어공동역성경), 이 쉼표의 의미가 무엇이냐 하면, 이는 번역자가 성령임이 틀림없다고 생각되는 구절에만 쉼표를 붙인 것입니다. 번역자의 주관적 판단일 뿐, 아무런 객관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따라서 새로 번역된 성경협회 공동역에는 이 쉼표가 삭제되어 있습니다.
본문 2절로 돌아가 보면,「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여러분을 해방시켰다는 점에서, 율법의 두 가지 측면이 설명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 두 측면은 서로 충돌하며, 생명을 주는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 승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순절 사건이란, 사실 율법의 의미가 이전의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율법에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3절에 나와 있듯이, 우리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율법이 할 수 없었던 것을 하나님께서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본래 율법 자체는 거룩한 것이며, 의의 기준이자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한 이후, 인간의 육신으로는 율법을 지키고 행할 수 없게 된 이후로는, 율법은 오로지 인간의 죄를 규탄하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너는 이때 유죄다!」, 「너는 그때도 죄를 지었잖아!」라고 선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 율법의 당초 목적이었던 「의롭게 하는」 일은, 인간의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성취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율법은 인간을 죄의 포로로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율법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저주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또 다른 측면을 약속해 주십니다. 예레미야 31: 31~33절을 보십시오.
예레미야 31장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서에 따르면, 하나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시고 그들의 마음에 기록해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사망에 이르게 하던 이전의 율법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의의 외적 기준으로서가 아니라,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기록하고 생명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와 유사한 말씀으로 에스겔36: 26~27절을 살펴보십시오.
에스겔 36장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부드러운 마음」이란 완고한 마음이 아니라, 고기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의미합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이 주어지며, 새로운 영이 내주하셔서 율법을 따라 행하게 하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강림은 구약 시대에는 없었던 것일까요? 구약 시대에도 개인적인 성령의 임재는 있었습니다. 삼손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초인적인 힘을 얻었습니다. 다윗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배와 찬양을 회복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예언자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가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주어지며, 그리스도의 영을 갖지 않은 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지 않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또한 이사야44:3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44장
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마지막 날, 하나님의 구원의 계시가 가리키는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보내심을 받아, 십자가 위에서 그 육신으로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구원의 사역이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부어주신 성령은 우리에게 구원에 관한 새로운 계시를 주시는 것보다, 오히려 십자가 위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상기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해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인을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며,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이루게 하는, 율법의 새로운 측면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단지 믿음으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오순절의 사건이었습니다. 성령을 통해 이전에는 이룰 수 없었던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로마서로 돌아가서 8장 4~7절을 보십시오.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이 대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율법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보여줍니다. 즉, 4절에 따르면 은혜가 주어지는 것은 바로 율법이 성취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필사적으로 노력하여 율법을 온전히 지키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걸어감으로써, 외부의 힘에 의해, 대가 없이 율법의 요구가 성취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을 가진다거나 믿음으로 걷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만약 성령으로 걷는다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율법에 합당한 행보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성령으로 걷는다면,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 주시는 것입니다. 만일 성령의 음성을 어떻게 듣는지, 성령의 인도를 어떻게 확인하느냐고 반론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대답할 뿐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을 지닌 하나님이시니, 그저 성령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육체의 연약함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해 성령의 인도하심에도 순종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육이 원하는 것과 성령이 원하시는 것이 180도 정반대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서는 항상 영과 육의 갈등, 영과 육의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바울이 고백했던 것과 같은 고민에 항상 시달리게 됩니다. 7장 22~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로마서 7장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그러므로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결코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싸움은 이미 승리가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8장 9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보십시오.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이처럼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육신의 지배에 승리하시고, 확실히 우리를 율법의 요구를 충족하도록 인도하시며, 생명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방해하는 사망과 마귀의 세력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원리상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성령이 내주하고 있다면, 다시 말해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받아들여져 있다면,「죄와 사망의 법」에 맞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1절을 보십시오.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우리가 확실히 성령을 모시고 있다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반드시 사망의 몸에서 우리를 구원해 낼 것입니다. 성령의 육체와 영의 통치 사이에서 놓인 우리의 몸은 결국 일시적인 죽음에 복종하게 되고, 우리의 몸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성령의 다스림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의 죽어야 할 죄의 몸도 용서받고, 의롭다 함을 받고, 부활하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 구원의 완성을 보증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기 계발이나 생활 개선, 노력 같은 데에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손쓸 수 없이 약하고 연약한 나라는 인간을 무대로 삼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성령께서」무엇을 하시는지, 혹은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해 주셨는지, 또 앞으로 나를 어떻게 이끌어 주실지, 성령의 인도를 찬양과 감사를 담아 바라보고자 소망합니다.
本日はペンテコステ礼拝です。ペンテコステにおける出来事とは、聖霊が降臨し、信者一人ひとりの内に内住するようになったという出来事です。聖霊が降臨されたことによって一体、何が起こったのかと言えば、神の救いが人間に適用されたということです。神学的には、御子が獲得されたすべてのものを聖霊によって私たちに適用されたということです。ですから聖霊に満たされて、初めて弟子たちは、イエス様の十字架の意味について、イエス様の教えを思い出し理解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そして、イエス様が自分たちのために成就されたことについて、それによって自分たちがどのような恵みを受け取ったのかについて聖霊によって初めて悟り、理解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言ってみればペンテコステの日の、聖霊の満たしによって、初めて信仰の告白が生まれ、新約の教会が誕生したと言っても過言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本日のローマ書8章が私たちに語っていることは、内住の聖霊によって、私たちの日々の信仰生活を支えられ、励まされ、律法にかなう者とされ、ついには命に至るようにされるということです。さらに言うと、やがて、救いが完成されることが確かであることの保証として聖霊が与えら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1節をご覧ください。
“従って、今や、キリスト・イエスに結ばれている者は、罪に定めら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パウロは7章まで、キリスト者が絶え間なく、自分自身の肉に立ち向かい、肉の思いと、心に記された律法の間において繰り広げられている戦闘についてさんざん語った後に、信者を慰めるために再び戻ってくる箇所です。ところで、7章には、「私はなんと惨めな人間なのでしょう」という言葉がありますが、これは決してパウロの過去の、まだ、聖霊を頂いていない頃の話ではありません。ある神学者は、これは以前、まだパウロがイエス様と出会う前の頃の回想であり、ここでパウロの懺悔の告白として、挿入されているだけだと説明しますが、そうではなく、依然として肉の弱さに置かれているということもパウロの現実なのです。そのことを踏まえながら、結論的に8章から、「従って」と始まっているのです。ですから、ローマ書8章で語られている「救い」というのは、救いの完成についてではなく、救いの始まりについてであって、依然として肉における弱さを持ちつつも、一方で聖霊の導きに従って行きたいと希望する、私たちの置かれている緊張状態が表されていて、依然として信仰にある戦闘状態は続い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2~3節をご覧下さい。
“キリスト・イエスによって命をもたらす霊の法則が、罪と死との法則からあなたを解放したからです。肉の弱さのために律法がなしえなかったことを、神は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つまり、罪を取り除くために御子を罪深い肉と同じ姿でこの世に送り、その肉において罪を罪として処断されたのです。”
本来、私たちの上に下されるはずだった神の怒りの審判は、罪はないですが、人となられたイエス様に対して、死の刑罰が下されたために、死はもはや、私たちを罪の奴隷として束縛することが出来なくなりました。私たちは死の支配から解放され、命をもたらす霊の支配へと移されたのです。
少しここで補足説明ですが、2節で「霊の法則」とか、「罪と死の法則」とかがありますが、これはギリシャ語を見ると、全て「ノモス」つまり律法という意味の言葉です。英語では、the lawです。ギリシャ語において「律法」と「法則」を区別するしるしは何もありません(ex: 大文字にするなど)。ですから、翻訳する人が、あるところでは「律法」とし、あるところでは「法則」とし、文脈によって訳し分けているのです。しかし7章においてさんざん律法について書かれていますので、ここでも同じく「法則」ではなく「律法」と訳すのが無難だと思われます。因みにこのような、翻訳の難しさは霊という言葉にも表れて来ます。霊の前に「聖なる(プニューマ・ハギオン)」などの修飾語がついていれば、間違いなく聖霊を指しますが、ただ「霊、プニューマ」と書かれているだけなら、御霊なのか、人間の霊なのか、文字そのものからは確定するのが難しいのです。例えば10節を見ると霊という言葉がコンマでくくられていますが、このコンマの意味は何かといいますと、これは、翻訳者が聖霊に間違いないと思われる箇所にだけ、コンマでくくっているのです。翻訳者の主観的判断であって、何ら客観的な記しはありません。ですから新しく翻訳された聖書協会共同訳には、このコンマは削除されています。
本文の2節に戻りますが、すると、「命をもたらす霊の律法」が、「罪と死との律法」からあなたを解放したということで、律法における二つの側面が説明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そしてこの二つの側面は互いにぶつかり合い、命をもたらす霊の律法が、罪と死との律法に勝利したということであります。ペンテコステの出来事とは、実は律法の意味が以前の「罪と死との律法」から「命をもたらす霊の律法」替えられたということなのです。それでは、なぜ律法にこのような2つの側面が出てくるのでしょうか。その理由は、3節にありますように、私たちの肉の弱さのために、律法がなしえなかったことを、神がしてくださったからです。本来、律法自体は、聖なるものであり、義の基準であり人に命を与えることを目標としていました。しかし、アダムが堕落してしまった以降、人間の肉によっては、律法を守り行うことができなくなってしまってからは、律法は、ひたすら人間の罪を糾弾するものとなってしまいました。「お前はこの時、有罪である!」「お前はあの時も罪を犯したじゃないか!」と宣告するのです。こうして結局、律法の当初の目的である所の、「義とする」ことは、人間の肉の弱さの故に成就することができなくなりました。むしろ律法は、人間を罪の虜にして、そして究極的には死に至らせるものとなりました。律法が死に至らせる呪いになってしまったのです。しかし神は、律法のもう一つの側面を約束されます。エレミヤ31:31~33をご覧ください。
“見よ、わたしがイスラエルの家、ユダの家と新しい契約を結ぶ日が来る、と主は言われる。この契約は、かつてわたしが彼らの先祖の手を取ってエジプトの地から導き出したときに結んだものではない。わたしが彼らの主人であったにもかかわらず、彼らはこの契約を破った、と主は言われる。しかし、来るべき日に、わたしがイスラエルの家と結ぶ契約はこれである、と主は言われる。すなわち、わたしの律法を彼らの胸の中に授け、彼らの心にそれを記す。わたしは彼らの神となり、彼らはわたしの民となる。”
エレミヤ書によれば律法を彼らの胸の中に授け、心にそれを記すと書かれています。それは、死に至らせる以前の律法とは異なるものでした。人間の努力ではとうてい達成できない義の外的基準としてではなく、聖霊によって私たちの心に記し、命を与える目的として与えられるというのです。また、同じような御言葉としてエゼキエル書36:26~27をご覧ください。
“わたしはお前たちに新しい心を与え、お前たちの中に新しい霊を置く。わたしはお前たちの体から石の心を取り除き、肉の心を与える。また、わたしの霊をお前たちの中に置き、わたしの掟に従って歩ませ、わたしの裁きを守り行わせる。”
肉の心というのは、頑なな心ではなく、肉のような柔らかい心という意味です。聖霊が降り、私たちに新しい心が与えられ、新しい霊が内住されて、掟に従って歩ませると書かれているのです。それでは聖霊の降臨とは旧約にはなかったのでしょうか。旧約の時代においても個人的な聖霊の臨在はありました。サムソンは聖霊に満たされ怪力が与えられました。ダビデは聖霊に満たされて礼拝と讃美を回復しました。聖霊に満たされた預言者の口を通して、神の啓示を語られました。しかし、終わりの日にはキリスト者すべてにキリストの霊が与えられ、キリストの霊を持たない者は、キリストに結ばれていないとパウロは言います。またイザヤ書44:3には次のように書かれています。※或いはヨエル3:1
“わたしは乾いている地に水を注ぎ/乾いた土地に流れを与える。あなたの子孫にわたしの霊を注ぎ/あなたの末にわたしの祝福を与える。”
終わりの日、神の救いの啓示が指し示す本体であられるイエス・キリストが世に遣わされ、十字架上で、その肉において罪を罪として処罰されました。救いの御業が完全に成就されました。ですから五旬節に注がれた聖霊は、私たちに救いについての新しい啓示を与えるというより、むしろ十字架上で示された神の愛を思い起こさせてくださるのです。神が私たちをこのように愛してくださったということを悟らせ、聖霊を通してキリスト者を愛の人へと変え、律法の要求を全うさせるという、律法の新しい側面が現れることになったのです。キリスト者はこれをただ、信仰によって受け入れるだけです。これこそペンテコステの出来事だったのです。聖霊によって以前、成しえなかった律法の要求を満たすことです。ロマ書に戻り8章4~7節をご覧ください。
“それは、肉ではなく霊に従って歩むわたしたちの内に、律法の要求が満たされるためでした。」肉に従って歩む者は、肉に属することを考え、霊に従って歩む者は、霊に属することを考えます。肉の思いは死であり、霊の思いは命と平和であります。なぜなら、肉の思いに従う者は、神に敵対しており、神の律法に従っていないからです。従いえないのです。”
ここにおいて、イエス・キリストの恵みと、律法とが、どれほど密接に関わっているのかを見せてくれるのです。つまり4節によれば恵みが与えられるのは、まさに律法が満たされるためでした。ですから、私たちが一生懸命努力して律法を全うするのではなく、神の力により頼みながら、聖霊の導きに従って歩むことによって、外部の力によって、無償で、律法の要求が満たされるです。したがって信仰を持つとか信仰によって歩むというのは、別の言葉で言うなら、聖霊の導きに従順に従っていくことです。もし聖霊によって歩むなら、それは自然と律法にかなった歩みとなるのです。もし聖霊によって歩むなら、私たちを通して神さまが御霊の実を結んでくださるのです。万が一、聖霊の御声をどのように聞くのか、聖霊の導きをどのように確認するのかと反論する人がいるなら、このように答えるだけです。「聖霊は人格を持った神さまですから、ただ聖霊様を迎え入れればいいのです。」私たちキリスト者は、依然として肉の弱さを持ち合わせていますが、同時に、聖霊の内住によって聖霊の導きにも従うことができる存在とされました。しかし、問題は、肉の欲することと、御霊の欲することとは、180度正反対なので、私たちの内に常に、霊と肉の葛藤が、霊と肉の戦いが繰り広げられるのです。私たちは信仰生活において、パウロが告白したような悩みにいつもさいなまれるのです。7章22~23をお読みします。
“「内なる人」としては神の律法を喜んでいますが、わたしの五体にはもう一つの法則があって心の法則と戦い、わたしを、五体の内にある罪の法則のとりこにしているのが分かります。”
ですから油断することはできません。しかし、このような事実があるからと言って私たちは決して絶望することはありません。なぜなら、この戦いは既に勝利が約束されているからです。パウロは8章9節で次のように言います。ご覧ください。
“神の霊があなたがたの内に宿っているかぎり、あなたがたは、肉ではなく霊の支配下にいます。”
このように私たちに内住している聖霊は、肉に支配に勝利し、確実に私たちに律法の要求を満たすように導いて下さり、命へと至らせるのです。それを妨げる死と悪魔の力は、既に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において、原理上、破壊されました。ですから、結局は、聖霊の内住があるのなら、言い換えれば、聖霊が私たちの心の中に迎え入れられているのであるなら、「罪と死との律法」に対し「命をもたらす霊の律法」が勝利することになるのです。最後に11節をご覧ください。
“もし、イエスを死者の中から復活させた方の霊が、あなたがたの内に宿っているなら、キリストを死者の中から復活させた方は、あなたがたの内に宿っているその霊によって、あなたがたの死ぬはずの体をも生かしてくださるでしょう。”
私たちが御霊を確かに宿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なら、命をもたらす霊の律法が必ず、死の体から救い出されるのです。御霊の肉と霊の支配のはざまに置かれた私たちの体は、やがて一時的な死に服従し、私たちの体は塵に帰ります。しかし一方において、聖霊の支配の中で、キリストが死者の中から甦らされたように、私たちの死ぬべき罪の体をも、赦され、義とされ、甦らされるのです。聖霊は私たちの救いの完成の担保として与えられているのです。ですから、私たちの自己啓発とか、生活改善、努力というところに目を向けるのではなく、手のつけようのない弱く、脆い私という人間を舞台にして、「神さまが」、「キリストが」、「聖霊が」何をなさるのか、或いは、今までにどういうことをなさってくださったのか、またこれから先、私をどういうふうにしていってくださるのか、聖霊の導きを讃美と感謝を持って見つめていきたいと願うのであり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