ユダの接吻 유다의 입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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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説教
-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マタイによる福音書 26章47節~56節
47イエスがまだ話しておられると、十二人の一人であるユダがやって来た。祭司長たちや民の長老たちの遣わした大勢の群衆も、剣や棒を持って一緒に来た。
48イエスを裏切ろうとしていたユダは、「わたしが接吻するのが、その人だ。それを捕まえろ」と、前もって合図を決めていた。
49ユダはすぐイエスに近寄り、「先生、こんばんは」と言って接吻した。
50イエスは、「友よ、しようとしていることをするがよい」と言われた。すると人々は進み寄り、イエスに手をかけて捕らえた。
51そのとき、イエスと一緒にいた者の一人が、手を伸ばして剣を抜き、大祭司の手下に打ちかかって、片方の耳を切り落とした。
52そこで、イエスは言われた。「剣をさやに納めなさい。剣を取る者は皆、剣で滅びる。
53わたしが父にお願いできないとでも思うのか。お願いすれば、父は十二軍団以上の天使を今すぐ送ってくださるであろう。
54しかしそれでは、必ずこうなると書かれている聖書の言葉がどうして実現されよう。」
55またそのとき、群衆に言われた。「まるで強盗にでも向かうように、剣や棒を持って捕らえに来たのか。わたしは毎日、神殿の境内に座って教えていたのに、あなたたちはわたしを捕らえなかった。
56このすべてのことが起こったのは、預言者たちの書いたことが実現するためである。」このとき、弟子たちは皆、イエスを見捨てて逃げてしまった。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マタイによる福音書 26章47節~56節
유다의 입맞춤
2019년 6월23일 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마태복음 26장 47절~56절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마치신 뒤 붙잡히시는 장면입니다. 이 본문은 어둠 속에서 억지로 붙잡혀 처형당하는 비극적인 장면이라기보다, 십자가의 길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스스로 걸어가신 길이며, 사탄의 힘과 악인들의 계략이 절정에 이르렀음에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뜻이 신비롭게 이루어져 가는 것을 확인하게 해 줍니다.
지금 읽은 본문에는 제자 두 사람이 나옵니다. 두 사람의 이름이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첫 번째 사람은 가룟 유다입니다. 또 한 사람은 요한복음에서 보면 칼을 휘두른 베드로입니다. 두 사람의 이후의 행적과 결말을 보면 전혀 다른 결말에 이르게 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두 사람 모두 메시아에 대한 이해에서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점, 곧 자신이 바라는 메시아상을 예수님께 투영했고, 또 두 사람 모두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게 됩니다.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려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힘으로 지키려 했지만, 둘 다 육신적인 이해에 서 있었고, 기도하지도 않았으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도 못한 채 각각 자기 생각대로 행동해 버렸다는 점입니다.
먼저, 가룟 유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열두 제자 가운데 회계를 맡고 있었지만, 늘 모아지는 헌금 가운데서 도둑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2:6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대로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2장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유다가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랐던 동기는 「예수님을 따르면 돈이 되기 때문」이라든가, 「메시아이신 예수님 곁에서 측근의 자리를 계속 유지한다면 부유한 생활이 보장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점점 가까워져 올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수난 예고를 자주 선포하셨지만, 그 예고를 누구보다 놀라움으로, 또 누구보다 실망하면서 받아들였던 사람이 유다였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통해 자신이 그동안 기대해 온 야망이 무너져 내리고, 더 이상 예수님의 제자로 있는 데서 이익을 느낄 수 없게 되어 배신한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26:47절을 보십시오.
47 말씀하실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7절에는 「열 둘 중에 하나인 유다」라는 직함을 붙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라고 예고하신 말씀이 여기서 성취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큰 무리가검과 몽치를 가지고」라고 되어 있는데, 요한복음의 평행 기사에는 그 무리가 「군대」였다고 나와 있으므로, 이 무리는 로마군의 수백 명 병사였다는 뜻입니다. 이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지금이 종말이라는 절박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에세네파라고 불리는 집단은 율법을 엄격히 지키고 금욕 생활에 힘썼지만, 사람들과의 교제를 끊고 동굴에서 수도원 같은 공동생활을 하며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렸습니다.
또한 열심당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여호와에 대한 열심을 내세우며, 신정 정치를 방해하는 모든 것에 무력으로 저항하고, 필요하다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열두 제자 가운데 열심당 출신인 시몬은 이전에 열심당에 속해 있었고, 유다도 열심당이었을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다시 행동하셔서, 여전히 포로 상태에 놓여 있는 자신들을 「해방」시켜 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로마의 지배에 대항하는 반란의 불씨가 곳곳에서 계속 타오르고 있었고, 어떤 때에는 자신이 메시아라고 자처하는 혁명가나 강도도 나타났습니다. 헤롯당 사람들, 혹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한 사두개파 사람들에게는 혁명 때문에 현재 자신의 지위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오히려 유대인의 적이어야 할 로마군과 협력하여 로마군을 성전에 주둔시키고 반란을 일으키는 혁명분자들을 단속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붙잡힌 사람들은 보통 십자가형으로 처형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47절에서도 예수님을 잡으러 온 자들은 로마인들에 의한 성전 경비병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예수님을 배반하려고 했던 유다는 목표로 삼은 예수가 누구인지 경비병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입맞춤을 신호로 삼았습니다. 49~50절을 보십시오.
49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50 예수께서 가라사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저희가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유다는 마지막 만찬 때 26장 25절에서 예수님을 「랍비여」라고 불렀는데, 여기서도 역시 「랍비」라고 부릅니다. 즉, 유다에게 예수님은 예배의 대상도 아니었고, 주님이라고 고백할 분도 아니었습니다.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라는 말은 아마 히브리어 샬롬의 헬라어 번역일 것입니다. 즉 「무고하십니까?」라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에 이르러서도 유다는 예수님께 위선적으로 굴면서, 자신이 그 뒤에 있는 적들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감추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50절 대답은 유다에게는 예상 밖의 대답이었습니다. 유다 자신의 악의와 배반을 모두 꿰뚫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유다의 배반과 악마의 폭력에 대해 예수님은 달아나거나 숨으려 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배반자의 손에 붙잡히러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신비롭게 성취되어 간 것입니다. 이어서 베드로가 등장합니다. 51~52절을 보십시오.
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꽃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베드로는 칼을 뽑아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한쪽 귀를 잘라 버렸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짓밟히시는 모습을,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보기보다, 차라리 예수님과 함께 죽는 편을 택한 것으로 읽힙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용기 있는 행동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나 제자들의 행동은 주님께서 명하신 것도 아니고, 허용된 범위를 넘어 힘으로 해 버린 것이기 때문에 죄로 간주됩니다. 예수님은 곧바로 「네 검을 도로 집에 꽃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악에 대해 악으로 맞서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전에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신 것을 여기서 다시 한 번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5:39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이런 말씀은 결코 과격한 혁명가들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이 아닙니다. 누가복음의 평행 기사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심지어 잘린 귀를 만져서 고쳐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이 대제사장의 종이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이었다면, 고쳐 주시지 않았다면 신체 장애자가 되어 앞으로 성전에서 봉사하는 것이 금지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일반 시민에게 검을 가지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다시 한 번 살인을 엄격히 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얼마나 아끼시고 사랑하시는지를 선포하시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으로 해서 관리나 경찰로부터 완전히 무기를 빼앗아야 한다는 주장은 조금 지나친 해석이라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위임을 받아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자로서 「검의 권능」이 주어져 있다는 이해를 해야 합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폭력이나 무력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력에 호소하지 않으신 또 다른 적극적인 이유는, 하늘 아버지께서 정하신 계획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무력으로 대항하려 하셨다면, 훨씬 효과적이고 강력한 군대를 예수님께서는 가지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53~54절을 보십시오.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당시 한 군단은 6,000명으로 편성되어 있었습니다. 하늘의 12군단이란 그 12배인 72,000명의 천사들로 이루어진 군대입니다. 필요하다면 이 무적의 12군단이라도 보내실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12군단에 비한다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위해 일어나는 것은, 몇 마리 개구리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것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렇게 하지 않고 무저항으로 계신 것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잔을 마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대신 십자가에 달리는 잔을 마시기 위해 저항할 수 없으셨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무리에 저항한다면, 예수님은 공무집행방해, 과잉방위 등의 이유로, 곧 자신의 죄로 인해 죽게 되어 대속의 제물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무리에게 돌아서서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선포하십니다. 55~56절을 보십시오.
55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예수님은, 당시의 혁명가나 도둑 같은 분이 아니셨습니다. 숨어서 지배의 전복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낮 시간에 당당히 성전 뜰에서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형태로 붙잡히는 것은 성경이 성취되기 위함이었습니다. 처음에 제사장장들과 율법학자들은 명절이 끝난 후에 예수를 잡으려 했지만, 하나님의 계획대로 유월절 날 밤에 잡히시고, 희생의 제물로 무저항으로 조용히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 달리게 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의문을 갖게 됩니다. 유대의 악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정하신 성정에 협력하는 형태가 되어 있으니, 하나님의 일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좋은 일을 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하나님의 합법적인 일꾼으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악인들을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인들이 범한 죄에 대해서는, 비록 그것이 예언의 성취를 위해 쓰였다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한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악인들이 범한 죄의 책임은 전적으로 악인들 자신의 책임입니다. 사람의 아들을 배반한 유다의 죄도, 예수님을 처형한 제사장들을 비롯한 유대인의 죄도 죄는 죄로서 그대로 남습니다. 만물이 혼돈 속에 서로 얽혀, 악마가 곳곳에 어둠을 뿌려 세상의 질서를 모두 뒤집는 듯 보이더라도, 우리는 결국 모든 혼돈을 끝내고 질서를 가져오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 곳에 놓여 있으며,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을 들어 그 평안한 하늘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에 대해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 버렸다는 말씀 속에서, 제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자기 멋대로 행동하려는 마음이 훨씬 더 강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제자들에게는 하늘의 12군단을 믿을 수 없었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깨달을 수도 없었으며, 결국 예수님 곁에 머물러 있을 수 없어 도망가 버린 후에,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는 맹세의 말이 헛되이 들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입맞춤으로 배반한 유다도, 힘으로 일을 해결하려다가 순식간에 맹세를 저버린 베드로도, 육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행동이 아니었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려 하시는 그리스도 앞에서는 우왕좌왕하는 개미처럼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하나님이 말씀을 성취하시고 계획을 다 이루시는 하나님께 신뢰를 두고, 날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맞는 걸음을 걷게 하소서」라고 간구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本日の箇所には、イエス様がゲッセマネの園で祈りを捧げ終えた後に、イエス様が捕らえられる場面です。この箇所は、暗がりの中、無理やり捕らえられ、処刑される悲劇的な場面というよりも、十字架の道とはイエス様が自ら進まれた道であって、それは、サタンの力と悪人たちの策略が最高潮に達する中にあっても、神が全てを支配され、神の御心が神秘的に成就されていくということを確認させられるのであります。
今、お読みした中には弟子が二人出て来ました。二人の名前が出てい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が最初の一人は、イスカリオテのユダです。もう一人は、ヨハネによる福音書を見ると分かりますが、剣を振り回したペトロです。二人のその後の歩みと結末を見る時に、全く異なる結末に至ることになりますが、本日の箇所においては、二人とも、メシア理解において根本的に誤解していたこと、つまり自分の望むメシア像をイエス様に投影して、そして、二人とも、主の御声に従順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ことという点において共通しているのが分かります。一人は、イエス・キリストを裏切ろうとし、一人はイエス・キリストを力づくで守ろうとしますが、二人とも、肉的な理解に立ち、祈ることもなく、御心に従順ではなく、それぞれ自分の思う通りに行動してしまったという点です。
最初に、イスカリオテのユダとはどのような人物だったのでしょうか。彼は十二弟子の中で会計を任されていましたが、いつも集められる献金の中から盗みを働いていました。ヨハネによる福音書12:6には次のように書かれています。そのままお聞きください。
彼がこう言ったのは、貧しい人々のことを心にかけていたからではない。彼は盗人であって、金入れを預かっていながら、その中身をごまかしていたからである。
ユダがこれまで、イエス様に従ってきた動機とは、「イエス様に従えばお金になるから」、「メシアであるイエス様に対し側近の立場をこのまま維持するなら裕福な生活が保障されるから」、というものだったのかもしれません。ですから、イエス様の十字架の死がいよいよ近づいて来た時に、イエス様はご自分の受難予告を頻繁に弟子たちに宣言されましたが、その受難予告を誰よりも驚きを持って、そして、誰よりも失望しながら受け止めていたのが、ユダであったかもしれないのです。イエス様を通して自分がこれまで期待した野望が崩れさり、これ以上イエス様の弟子としていることにメリットを感じることができなくなって裏切ったというふうにも考えられるのです。26:47節をご覧ください。
イエスがまだ話しておられると、十二人の一人であるユダがやって来た。祭司長たちや民の長老たちの遣わした大勢の群衆も、剣や棒を持って一緒に来た。
47節には「十二人の一人であるユダ」として肩書をつけて説明されています。これは、最後の晩餐の席で、イエス様が「はっきり言っておくが、あなたがたのうちの一人がわたしを裏切ろうとしている。」と予告したことが、ここで成就したということを強調するためであると思われます。
大勢の群衆がやってきて、「棒や剣を持って」いたと書かれていますが、ヨハネの福音書の並行記事には、群衆は「一隊の兵士」だったとありますので、この群衆とはローマ軍による数百人の兵士であったということです。これは当時、ユダヤの社会において、人々が、今が終末であるという切迫感を持っていたことと関係があります。例えばエッセネ派とよばれるグループは、律法を厳守し、禁欲生活に励みましたが、彼らは人々から交わりを絶ち洞窟で修道院的共同生活を営みメシアの到来を待ち望みました。
また、熱心党と呼ばれる人々は、ヤハウェに対する熱心さを掲げ、神政政治を妨げるすべてのものに対し武力で抵抗し、必要なら命をかけて戦うことを誓いました。十二弟子の中で熱心党のシモンは、以前熱心党に属していましたし、ユダも熱心党であったと考える学者もいます。ですから、この時期、ほとんどのユダヤ人が、神が歴史の中で再び行動を起こしてくださり、依然として捕囚の状態に置かれている自分たちユダヤ人を、「解放」してくれるに違いないという希望を抱いていたのです。
そのような中でローマの支配に対し、いたるところで反乱の火種がくすぶり続け、ある時には自分がメシアだと自称する革命家や盗賊も現れました。ヘロデ党の人々、或いは、神殿で奉仕する大祭司を中心としたサドカイ派の人々にとっては、革命などによって現在の自分たちの地位を失いたくないものですから、彼らは、むしろユダヤ人の敵であるはずのローマ軍と協力し、ローマ軍を神殿に駐在させて、反乱を起こす革命分子を取り締まっていたのではないか、そして、そのようにして捕えられた者たちは普通、十字架によって処刑されたのでしょう。ですから47節もイエス様を捕まえに来たのはローマ人による神殿の護衛兵であったと考えられます。イエス様を裏切ろうとしていたユダは、目当てのイエスが誰なのか護衛兵に分かるように接吻を合図としました。49~50節をご覧ください。
ユダはすぐイエスに近寄り、「先生、こんばんは」と言って接吻した。
イエスは、「友よ、しようとしていることをするがよい」と言われた。すると人々は進み寄り、イエスに手をかけて捕らえた。
ユダは、最後の晩餐の時26:25において、イエス様のことを「先生」と呼びましたが、ここでもやはり「先生」と呼んでいます。つまりユダにとってイエス様は、礼拝の対象ではなく、主と告白するお方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こんばんは:カイレ」という言葉は、恐らくヘブル語のシャロームのギリシャ語訳であろうと思われます。つまり「ご無事ですか」と言っているのです。この期に及んでも、ユダはイエス様に偽善者ぶって、自分自身が背後に控えている敵たちの一味であることを覆い隠そうとしているのです。ところがイエス様の50節の返事は、ユダにとっては予想外の返事でした。ユダ自身の悪意と裏切りを全て見抜かれていたからです。「友よ、しようとしていることをするがよい」
このようにして、ユダの裏切りと悪魔の暴虐に対し、イエス様は逃げたり隠れたりすることは一切なく、自ら進んで裏切り者の手に捕えられていきました。御心が神秘的に成就していったのです。続いてペトロが登場します。51~52節をご覧ください。
そのとき、イエスと一緒にいた者の一人が、手を伸ばして剣を抜き、大祭司の手下に打ちかかって、片方の耳を切り落とした。
そこで、イエスは言われた。「剣をさやに納めなさい。剣を取る者は皆、剣で滅びる。
ペトロは剣を抜き、大祭司の手下に打ちかかり、片方の耳を切り落としました。弟子たちは主が踏みにじられる姿をそのまま何もしないで見守るより、いっそイエス様と一緒に死ぬ方を選んだと読み取れます。一見すると大変勇気のある行動のように見えます。しかし、ペトロや弟子たちの行動とは、主から命じられた訳でもなく、許されている以上のことを、力づくでしてしまったために罪と見做されるのです。イエス様はすぐに「剣を納めなさい」と命じられました。そして、「剣を取る者は皆、剣で滅びる。」と言われました。これはつまり悪に対し悪によって対抗して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以前、山上の垂訓で教えられたことを、ここでももう一度、教えられているのです。5:39には次のように書かれています。
しかし、わたしは言っておく。悪人に手向かってはならない。だれかがあなたの右の頬を打つなら、左の頬をも向けなさい。
このような言葉は、決して過激な革命家たちの口から出てくるような言葉ではありません。ルカの並行記事を見ると、イエス様は、さらこの切り落とされた耳を触れてくださり癒されたと書かれています。仮に、この大祭司の手下が神殿で奉仕するレビ人であったなら、癒していただけなければ、身体障碍者となり、今後神殿で奉仕することが禁止されたことでしょう。
イエス様の教えとは、一般市民に剣を持つことを禁じることによって、もう一度、殺人を厳格に禁じられているのです。神が人類をどれほど惜しんで愛されているのかを宣言しているかのようです。しかし、この御言葉をもって、役人や警察から完全に武器を取り上げる主張は少し飛躍していると思われます。むしろ、彼らは神の委任を受けて、神の審判を執行する者として「剣の権能」が与えられていると理解するべきです。とにかく、イエス様は、暴力や武力によってご自身を保護する道をお選びになりませんでした。
イエス様が武力に訴えなかったもう一つの積極的な理由として、それは天の御父が定められたご計画に、神の聖定に従順したいという思いからでした。もし、イエス様が父の御心に従順しないで、武力によって対抗しようと思われるなら、はるかに効果的で強力な軍隊をイエス様は持っていたからです。53~54節をご覧ください。
わたしが父にお願いできないとでも思うのか。お願いすれば、父は十二軍団以上の天使を今すぐ送ってくださるであろう。
しかしそれでは、必ずこうなると書かれている聖書の言葉がどうして実現されよう。」
当時、一個師団は、6000人で編成されていました。天の12軍団とはその12倍の72,000人の天使からなる軍隊です。必要であれば、この無敵の12軍団でも遣わすことができると言うのです。この12軍団に比べるなら、弟子たちがイエス様のために立ち上がると言っても、それは何匹かのカエルが騒々しく泣きまくっているに過ぎないということです。それにもかかわらず、あえてそのようにしないで、無抵抗のままでいるのは、御父が御子にくださった杯を飲むために他なりません。イエス様は罪びとの代わりに十字架に掛かるという杯を飲むために抵抗してはならなかったのです。もし弟子たちが群衆に抵抗するなら、イエス様は、公務執行妨害・過剰防衛などの理由で、つまり自分の罪の故に殺されることになり、身代わりの供え物になることができないからです。次にイエス様は群衆に翻ってやはり神の御言葉が実現されることを宣言なさいます。55~56節をご覧ください。
またそのとき、群衆に言われた。「まるで強盗にでも向かうように、剣や棒を持って捕らえに来たのか。わたしは毎日、神殿の境内に座って教えていたのに、あなたたちはわたしを捕らえなかった。
このすべてのことが起こったのは、預言者たちの書いたことが実現するためである。」このとき、弟子たちは皆、イエスを見捨てて逃げてしまった。
イエス様は当時、いたような革命家や盗賊のような者たち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隠れて支配の転覆を狙うのではなく、昼間の間、堂々と神殿の境内で教えていたからです。しかしこのような形で捕らえられるのは聖書が成就するためでありました。最初、祭司長や律法学者たちは、祭りが終わった後にイエスを捕えようと考えていましたが、神のご計画の通り、まさに過越しの日の夜に捕らえられ、犠牲の供え物として、無抵抗に黙々として父の御心に従って、十字架に架けられることになったからです。
それでは、ここで私たちは一つの疑問を持つことになります。ユダヤの悪人たちはむしろ、神の定められた聖定に協力するような形になっているので、神の働きを担ったと考えていいのではないかということです。結果的に良いことをしたのではないかということです。
しかし神は悪人たちを神の合法的な働き手として用いているのではなく、神の見えない手によって、悪人たちを、彼らが全く予期していなかった所に導かれるということです。したがって、悪人の犯す罪については、たとえそれが預言の成就のために用いられたとしても、彼らには自分の犯した罪に対して弁解の余地はありません。悪人たちが犯した罪の責任は全面的に、悪人たち自身の責任なのです。人の子を裏切ったユダの罪も、イエスを処刑にした祭司をはじめユダヤ人の罪も罪は罪としてそのまま残るのです。
万物が混乱の中に互いにからまって、悪魔が随所に闇をばらまいて、世の中の秩序をすべてひっくり返すように見えても、私たちは結局、すべての混乱を終わらせて、秩序をもたらす神の摂理が、私たちの理解を超えたところに置かれていて、天において光り輝いているということを知るのです。私たちは信仰の目をあげて、あの平穏な天を眺める方法を習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これに対し、弟子たちがみなイエスを捨てて逃亡した、という言葉の中において、弟子たちには神の御言葉に従うよりは、自分勝手に行動しようとする思いがはるかに強かったということを、もう一度確認することになるのです。
弟子たちには、天の12軍団を信じることができず、神秘的な神の御心の成就を悟ることもできず、結局、イエス様に留まり続けることができずに逃げ去った後に、「たとえ、御一緒に死なねばならなくなっても、あなたのことを知らないなどとは決して申しません」という誓いの言葉が空しく聞こえるのです。ここにおいて、口づけによって裏切ったユダも、力づくで事を解決しようとして、あっけなく誓いを裏切るペトロも、肉の思いに従って行動しているだけであり、祈りを通して神に従順しようとする行動ではなかったということがわかるのです。父の御心に従順にしようとするキリストの前では右往左往するアリのようにしか映らいのです。私たちは、神秘的で不思議な方法によって神が御言葉を成就され、ご計画をことごとく成就される神さまに信頼をおいて、日々祈りつつ、御心にかなった歩みをさせてくださいと求め続けていきま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