悪魔に抵抗しなさい 마귀를 대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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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聖書 ペトロの手紙一 5章6節~11節
5:6だから、神の力強い御手の下で自分を低くしなさい。そうすれば、かの時には高めていただけます。
5:7思い煩いは、何もかも神にお任せしなさい。神が、あなたがたのことを心にかけていてくださるからです。
5:8身を慎んで目を覚ましていなさい。あなたがたの敵である悪魔が、ほえたける獅子のように、だれかを食い尽くそうと探し回っています。
5:9信仰にしっかり踏みとどまって、悪魔に抵抗しなさい。あなたがたと信仰を同じくする兄弟たちも、この世で同じ苦しみに遭っているのです。それはあなたがたも知っているとおりです。
5:10しかし、あらゆる恵みの源である神、すなわち、キリスト・イエスを通してあなたがたを永遠の栄光へ招いてくださった神御自身が、しばらくの間苦しんだあなたがたを完全な者とし、強め、力づけ、揺らぐことがないようにしてくださいます。
5:11力が世々限りなく神にありますように、アーメン。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ペトロの手紙一 5章6節~11節
마귀를 대적하라
2021년 5월 16일 센겐다이 교회 주일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베드로전서 5장 6~11절
서론
기독교 작가 C.S 루이스(C.S. Lewis)라는 사람이「기독교의 정수」라는 저서에서 교만에 대해 매우 날카로운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짐승은 자신이 짐승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살아가면서 짐승과 같은 상태에 가까워져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무서운 말이지만, 교만한 사람이라는 것은 자신이 교만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나쁘게 변해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교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속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무서운 죄악」이라고 C.S. 루이스는 더욱 지적합니다.
「모든 죄악 중에서 가장 나쁜 죄악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중심까지 침투할 수 있다는 것이 두렵다. 그러나 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덜 나쁜 죄악은 마귀가 우리의 짐승 같은 본성을 이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만, 교만은 짐승 같은 본성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옥에서 나오는 것이다. 교만은 순수한 영적 죄악이다. 그래서 다른 죄악에 비해, 훨씬 더 교활하고 치명적이다」
즉, C.S. 루이스에 따르면, 죄 중에서, 교만이라는 죄가 가장 큰 죄이며, 다른 어떤 동물적인 죄보다 더 심각하고 무서운 죄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릅니다. 죄의 본질은 교만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떼어내려 하는 사탄은 교만의 죄로 인해 하늘에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이사야 14:12~15).
(1) 순종과 겸손, 불순종과 교만
베드로전서 5:5절에는「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하나님에 대해 불순종하며, 결코 하나님을 바라보거나, 순종하지 않습니다. 교만이란, 결국 자기 숭배이며, 십계명의 제 1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교만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안에 숨어 있는 교만의 그 소름끼치는 모습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겸손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겸손은 교만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교만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겸손이란 자기 마음속에 분명히 교만이라는 죄가 숨어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이 교만이 숨어 있는 자아에 죽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길은 겸손의 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자기 안에 있는 죄를 분명히 깨닫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며, 옛 자아에 대해 죽어가는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받은 것은, 이 교만에서 구원받아 자기 숭배에서 벗어나고, 불순종하는 자에서 순종하는 자로, 자신의 힘으로 사는 자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자로 변화되기 위함입니다. 이어서 5:6~7절을 보시겠습니다.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누구도 자신이 구원받은 것을 남에게 자랑할 사람은 없습니다. 구원이란 심판받아 마땅한 자신이 오직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지, 자신 안에 어떤 공로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자가 자연히 교만을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낮아지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믿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순간도 잊지 않고 돌보시고, 우리의 미래를 책임져 주시고, 인생의 마지막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5:8~9절을 보시겠습니다.
(2) 대적 마귀와의 싸움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마귀는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귀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모든 것을 마귀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옳지 않은 태도입니다. 인류의 무자비하고 끔찍한 살육 사건 등을 돌이켜보면 그 배후에 마귀가 존재했던 것 으로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소장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15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종전 후 아르헨티나로 도피한 아이히만은 1960년 마침내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의해 그 흔적이 추적당아혀 체포되었습니다. 당시 큰 뉴스가 되었고, 이후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습니다. 이때 연행된 아이히만의 모습을 보고 관계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왜냐하면 그가 너무도「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이히만을 연행한 모사드 요원은, 아이히만에 대해 「그는 나치 친위대 중령으로 유대인 학살 계획을 지휘한 최고 책임자」라는 프로필에서 「냉철하고 강인한 극악무도한 악인」을 상상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실제 그는 체격이 작고 겁이 많아 보이는 아주 평범한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하급 관리에 불과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에 의해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는 충격적인 학살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볼 때, 그 배후에 마귀가 존재했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잘못을 마귀와 관련지어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내가 감기에 걸렸을 때 마귀의 소행이라고 말하거나, 내가 학교에 지각했을 때 마귀의 방해를 받았다거나,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악행을 저질렀다는 등 모든 것을 마귀와 연관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귀와 각종 악령들과 싸우셔서서 그들을 정복하고 쫓아내어 사탄의 통치를 교회 영역에서 철수시키고 심판의 날까지 그들을 옥에 가두어 두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골로새서 2:15절과 베드로후서 2:4절을 참고하시겠습니다.
골로새서 2장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베드로후서 2장
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귀는 아직 마지막 불의 심판을 받지 않았으며, 여전히 외부에서 교회에 영향을 미치고 유혹하고 시험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3절과 데살로니가전서 3:5절을 참고하시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3장
5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마귀와 악령들은 지옥에 갇혀 묶여 있지만, 아직 불의 심판을 받지 않고 인간을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는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교회는 마귀에 대항하여 근신하고 깨어 지속적으로 영적 싸움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깨어라」는 말은, 지금까지 여러 번 언급했듯이 술에 취하거나 세속에 빠지거나 중독에 빠지지 말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마귀는 자신의 심판을 의식하면서 종말이 다가올수록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 부어 재기하려 하지만,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정복되어 마귀와 악령들은 함께 불 속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전능자가 아니라 단순한 피조물이며, 그리고 마귀의 인간에 대한 영향력도 항상 하나님의 섭리에 종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쇠사슬에 묶인 패배자의 울부짖음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과 우리 인생의 마지막은, 사탄의 손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어서 베드로전서 5:10~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우리를 영원한 영광으로 들어가게 하신 이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11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여기서는, 우리가 여전히 마귀와의 영적 전쟁속에 놓여 있는 것은, 하나님의 손 안에서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우리를 완전한 하늘의 축복으로 인도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빨리 마귀에게 마지막 심판을 내려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혹은 ‘그리스도인은 무의미하게 마귀와 싸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싸움은 사실 「주님의 싸움」이며 우리보다 먼저 기름부음 받은 분이 나아가셔서 적을 무장해제 시키시기 때문에 그 싸움은 사실 소탕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적에 승리하게 위해서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적진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주님께서 이미 미리 적과 싸워주셨기 때문에 적진에는 공포와 내분과 방심이 일어나고, 기이한 방법으로 이스라엘에게 승리가 주어집니다. 이 주님의 전투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는 일이라곤 패한 적이 버린 무기와 식량, 보물을 노획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주의 싸움」에 우리를 초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싸움은 결코 무의미한 싸움이 아니라 우리를 영원한 영광으로 인도하는 싸움입니다. 10절에 보면 「① 온전하게 하시며, ② 굳건하게 하시며, ③ 강하게 하시며, ④ 견고하게 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온전하게 하시며」라는 말은 「회복한다」는 뜻으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잃었다 할지라도, 자신의 부족함, 자신의 죄와 실수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반드시 회복되어 온전케 된다는 의미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아마도 그는 12제자 중 수제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12제자들은 모두 주님을 배신했을지 모르지만, 베드로의 배신은 한 번이 아니라 세 번, 그것도 저주를 담아 주님을 부인하는, 다른 제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배신입니다. 그런 베드로를 주님은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또한 「굳건하게 하시며」는 「굳세게 세우다」라는 뜻인데,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고 배신할 것을 아시고 예언하셨지만, 동시에 배드로의 회복을 예언하셨고, 누가복음 22:3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누가복음 22장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던「네 형제를 굳게 하라」는 말씀과 같은 말을, 베드로는 여기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베드로에게는 그때 주님이 말씀하신 「굳게 하라」라는 말씀을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자신조차도 부활의 주님께서 회복시켜 주셨고, 이후 사도로서의 사역을 감당하며 교회를 견고히 세우는 반석과 같은 역할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현재 우리 교회도, 이 사도들의 터 위에 굳건히 세워져 있습니다. 또한 마지막 「견고하게 하시리라」라는 말은 건축 용어로 「기초를 놓는다」는 뜻입니다. 믿음이 고정된다는, 요긴한 돌에 온전히 결속된다는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한다면 10절은 하나님의 은혜로 베드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 자신에게 행하신 일을 감격에 격해지는 가운데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승리로 가득한 은혜의 약속에 압도되어 그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여기서 베드로는 결코, 하나님의 능력이 지속되기를 바라거나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감동과 함께 그 안에서 기뻐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베드로를 회복시키시고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분의 강력한 손길이 우리의 소망이며 확신입니다. 그분이 약속하신 말씀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나도 빠짐없이 성취될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때가 되어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교만한 죄를 회개하고 자아를 부인하고 낮아지는 자입니다. 마귀는 여전히 짖어대며 교회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것은 쇠사슬에 묶인 패배자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귀의 공격과 악한 계략조차도, 그리스도인에게 유익하게 바꾸어 주시고, 영원한 영광으로 부르시기 위한 싸움으로 삼으십니다. 우리는 이 주님의 싸움에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술에 취해 방탕하지 않고 근신하여 깨어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序】
クリスチャン作家C.Sルイスという人がいますが、『キリスト教の精髄』という著書の中で、高慢について大変鋭い指摘をしています。
「獣は自分が獣であることを知りません。人間も同じように、自分自身の欲望に従って生きていき、獣のような状態に近づいたとしても、それに気づくことがありません。」
恐ろしい言葉ですが、高慢な人というのは自分が高慢であることに気づかないという事です。そして自分がどれだけ悪く変化しているのかについても気づかないものです。高慢とは神の前で自分を欺くだけではなく、自分自身をも欺くという恐ろしい罪悪です。C.Sルイスはさらに指摘します。
「すべての罪悪の中で、最も悪い罪悪は私たちの信仰生活の中心にまで浸透することができるとは怖いことである。しかしその理由を理解するのは難しくない。それほど悪くはない罪悪は悪魔が私たちの獣のような本性を利用するために生じるものであるけれども、しかし高慢とは獣のような本性を通して来るのではなく、それは地獄から直ちに出て来る。高慢は純然とした霊的な罪悪である。そのために他の罪悪に比べて、はるかにずる賢く致命的である。」
つまり、C.Sルイスによれば、罪の中で、高慢という罪は最大の罪であり、他のいかなる動物的な罪よりも深刻で恐ろしい罪悪であると考えています。確かにその通りであるかもしれません。罪の本質とは高慢なのかもしれません。なぜなら、そもそも人間を神様から引き離そうとするサタンは、高慢の罪によって天から落とされたからです(イザヤ14:12~15)。
【1】. 従順と謙遜、不従順と高慢
1ペトロ5章5節には「神は高慢の者を敵とし、謙遜な者には恵みをお与えになる」と書かれています。高慢は神に敵対し、神に不従順であり、決して神を仰いだり、神に従順することはありません。高慢とは、突き詰めれば自己崇拝であり、十戒の第一戒の違反なのであります。私たちが救われなければならない理由は、まさにこの高慢のためであると言っても言い過ぎではないでしょう。私たちの中に隠れている高慢の、その、ぞっとさせるような姿を悟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れでは、謙遜とは一体何でしょうか。謙遜とは高慢がない状態ではありません。自分の心の中に高慢がない人は誰もいないからです。謙遜とは自分の心の中に確かに高慢という罪が隠れているということを自覚することです。そして日々、この高慢が隠れている自我に死ななければ、生きて行く事ができないということを告白する人であります。従って、信仰の道とは、謙遜な道なのであります。キリスト者とは、自分自身の中にある罪をはっきりと自覚し、キリストの十字架と共に自己を否定していく人生であり、旧い自分に死んで行く人生であります。私たちがイエス様の十字架によって救われたのは、この高慢から救われて、自己崇拝から離れ、不従順な者から従順な者に、自分の力で生きる者から、神の力によって生かされる者へと変えられるためであったのです。続いて5:6~7節をご覧ください。
“だから、神の力強い御手の下で自分を低くしなさい。そうすれば、かの時には高めていただけます。思い煩いは、何もかも神にお任せしなさい。神が、あなたがたのことを心にかけていてくださるからです。”
だれも自分の救われたことを他の人に自慢する人はいませんね。救いとは裁かれて当然の私が、ただ恵みによって救われたのであって、自分の内側には何の功績もないからです。救われた者が自然に高慢を悔い改め、自分を否定し、低くへりくだるようになるのは、神の力強い御手を信じるからであります。救われた者は全ての思い煩いを神様に委ねようと致します。それは神様が私たちのことを一時も忘れずに顧みてくださり、私たちの将来に責任を持ってくださり、人生の最後まで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るということを信じるからです。続いて5:8~9節をご覧ください。
【2】. 悪魔との闘い
“身を慎んで目を覚ましていなさい。あなたがたの敵である悪魔が、ほえたける獅子のように、だれかを食い尽くそうと探し回っています。信仰にしっかり踏みとどまって、悪魔に抵抗しなさい。あなたがたと信仰を同じくする兄弟たちも、この世で同じ苦しみに遭っているのです。それはあなたがたも知っているとおりです。”
悪魔がほえたける獅子のように、誰かを呑み込もうと探し回っています。私たちキリスト者は、悪魔の存在を完全に無視することも正しい態度ではありませんが、全てを悪魔のせいにすることもやはり正しい態度ではないでしょう。人類の冷酷でむごたらしい殺戮事件などを振り返る時、その背後に悪魔が存在していたと思われます。例えば第二次世界大戦中、ナチスのアウシュヴィッツ強制収容所の所長であったアドルフ・アイヒマンは、150万人のユダヤ人を大虐殺したと言われています。終戦後にアルゼンチンに逃亡したアイヒマンは、1960年についにイスラエルの秘密警察によってその足跡が突き止められ逮捕されました。当時、大変大きなニュースとなり、その後エルサレムにおいて裁判を受け、処刑されています。このとき、連行されたアイヒマンの風貌を見て、関係者は大変大きなショックを受けたと口を揃えます。なぜならば彼があまりにも「普通の人」だったからです。アイヒマンを連行したモサドのスパイは、アイヒマンについて「彼はナチス親衛隊の中佐であり、ユダヤ人虐殺計画を指揮したトップ」というプロファイルから「冷徹で屈強な極悪人」を想像していたらしいのですが、実際の彼は小柄で気の弱そうな、ごく普通のどこにでもいるような小役人に過ぎなかったのです。ごく普通の人によって、普通ではありえないような衝撃的な虐殺事件が起こったというのを見る時に、その背後に悪魔が存在していたのは明らかであります。しかし、だからと言って、すべての過ちを悪魔と関連しているように考えるのも間違っています。自分が風邪をひいてしまったときに、悪霊どもの仕業だと言ったり、自分が学校に遅刻した時には、悪魔によって妨げを受けたとか、悪魔に誘惑されて自分が悪事を働いたなどと、全てのことを悪魔に関連させてはならないといいうことですね。聖書にはイエス・キリストが悪魔と諸々の悪霊と戦われ、彼らを征服し外に投げ出し、サタンの統治を教会の領域から撤収させ、審判の時まで彼らは、獄につながれていると書かれています。コロサイ人の手紙2:15と、2ペトロ2:4をご覧ください。
コロサイ2:15
“そして、もろもろの支配と権威の武装を解除し、キリストの勝利の列に従えて、公然とさらしものになさいました。”
2ペトロ2:4
“神は、罪を犯した天使たちを容赦せず、暗闇という縄で縛って地獄に引き渡し、裁きのために閉じ込められました。”
しかし、それにも拘らず悪魔は、まだ最後の火の審判を受けておらず、依然として外部から教会に影響を及ぼし、誘惑し、試みにあわせることができるとも書かれています。2コリント11:3、1テサロニケ3:5をご覧ください。
2コリント11:3
“ただ、エバが蛇の悪だくみで欺かれたように、あなたがたの思いが汚されて、キリストに対する真心と純潔とからそれてしまうのではないかと心配しています。”
1テサロニケ3:5
“そこで、わたしも、もはやじっとしていられなくなって、誘惑する者があなたがたを惑わし、わたしたちの労苦が無駄になってしまうのではないかという心配から、あなたがたの信仰の様子を知るために、テモテを派遣したのです。”
悪魔と悪霊どもは、地獄に入れられ、縛られていますが、まだ火による審判を受けておらず、人間を神様から引き離すための何らかの影響力をも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このような訳で、教会は悪魔に対抗し、身を慎んで目を覚まして持続的に霊的な戦いをするように招かれているのです。「身を慎む」とは、これまで何回か出てきましたように、酒に酔ったり、この世にどっぷりつかったり、中毒にならないように、という意味でありました。悪魔は、自分たちの審判を意識しつつ、終末が近づく中で自分たちの持てるすべての力を注ぎ再起しようとしますが、最終的にはキリストにあって完全に征服され、悪魔と悪霊たちは、共に火の中に投げ入れられることになるでしょう。悪魔とは神様に拮抗する全能者ではなく、単なる被造物であり、そして悪魔の人間に対する影響力というのも、常に神様の摂理に従属しているのです。悪魔が牙をむき出して吠えていますが、それはあくまで鎖につながれている負け犬の遠吠えに過ぎないのです。この世における私たちの人生と、私たちの人生の最期は、サタンの手の中にあるのではなく、神様の御手の中にあって、守り導かれているのです。続いて1ペトロ5:10~11節をご覧ください。
【3】. 私たちを永遠の栄光に招いてくださった方
“しかし、あらゆる恵みの源である神、すなわち、キリスト・イエスを通してあなたがたを永遠の栄光へ招いてくださった神御自身が、しばらくの間苦しんだあなたがたを完全な者とし、強め、力づけ、揺らぐことがないようにしてくださいます。力が世々限りなく神にありますように、アーメン。”
ここでは、私たちが依然として悪魔との霊的戦いに置かれているのは、神の御手の中で、永遠の栄光へと招くためであったと書かれています。私たちとしては、「一刻も早く、私たちを完全な天の祝福に入れてもらえたらどんなにいいだろうか」、「早く悪魔に対して、最後の裁きを下してくれればどんなにいいだろうか」と思うかもしれません。或いは「キリスト者は無意味に悪魔と戦わなくてもいいのではないか」と思う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私たちの置かれている戦いというのは、実は「主の戦い」であり、私たちに先立って油注がれた方が進み行き、敵を武装解除させるので、その戦いというのは実際、掃討戦であるということを覚えなければなりません。旧約聖書を思い起こしてください。イスラエルが敵に勝利するために、信仰を持って、大胆に敵陣に進んで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ところがイスラエルを導かれる主ご自身が既に前もって敵と戦ってくださるので、敵の陣営には恐怖や、同士討ちや、油断などが起こり、不思議な仕方で、イスラエルに勝利が与えられるのです。この主の戦いにおいてイスラエルの民がすることといえば、ただ敗走する敵が捨てていった武器や食料や宝を分捕るだけでありました。このような「主の戦い」に私たちを招いてくださっているのです。従ってこの戦いは決して無意味な戦いではなく、私たちを永遠の栄光に招く戦いなのです。何と素晴らしいことでしょうか。10節に注目しますと、「①完全な者とし、②強め(堅く立て)、③力づけ、④揺らぐことのないようにする」とあります。「完全な者とする」という言葉は、「回復する」という意味でありまして、私たちがこの世においてたとえ何かを損失したとしても、自らの足りなさ、自らの罪と過ちによって取返しのつかないことをしてしまったとしても、それらは必ず回復され完全にされるという意味です。ペトロを見てください。恐らく彼は12弟子の中でも一番弟子であることを自負していたことでしょう。しかし一番弟子の彼が、イエス様を三度否定し、取り返しのつかないことをしてしまいました。12弟子たちは全員、主を裏切ったかもしれませんが、ペトロの裏切り方というのは、一度だけではなく三度も、それも呪いを込めて主を否定するという、他とは比べ物にならない裏切りでした。そのようなペトロを主は回復させてくださったのです。また、「強め、」とは、「固く立てる」という意味ですが、イエス様はペトロがご自分を否定し裏切ることを知っておられ、預言されましたが、同時にペトロの回復を預言され、そしてルカ22:32において次のように語ってくださいました。聖書をご覧ください。
“わたしはあなたのために、信仰が無くならないように祈った。だから、あなたは立ち直ったら、兄弟たちを力づけて(堅く立て)やりなさい。”
あの時、主が語られた「兄弟たちを力づけなさい(堅く立てなさい)」という同じ言葉を、ここでペトロは使っているのです。恐らくペトロにとってあの時、主が語ってくださった「力づけて(堅く立て)やりなさい」という言葉を忘れられなかっ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主を三度否んだ自分でさえ、復活の主によって回復され、その後、使徒としての働きを担い、まさに教会を堅固にする岩盤としての働きを担わせていただいたのです。現在私たち教会も、この使徒たちの土台の上に堅く建てられていますね。また、最後の「揺らぐことのないようにしてくださる」という言葉は、建築用語でして、「基礎づける」とか、「不動にする」という意味です。信仰がフィックスされる、要石に完全に結ばれるという意味だと思われます。これらのことを考えるなら10節は神の恵みによって、ペトロ自身に起こったことの証しであると考えられます。主がペトロ自身に何をしてくださったのかを、感情が高ぶるの中で証言しているのです。ペトロは、神の勝利に満ちた恵みの約束に圧倒され、ただ神に敬拝を捧げることしかできませんでした。「力が世々限りなく神にありますように、アーメン。」
ここでペトロは決して、神の力が持続するように願ったり、祈っているのではなく。ただ、感動と共に、その中で喜んでいる様子が見えてくるようであります。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ペトロを回復させ、キリストを死者の中から再び生かされたその方の力強い御手が、私たちの希望であり、確信なのです。その方が約束された御言葉は決して地に落ちることなく、一つ残らず成就するのです。
【結論】
神によって召され、時が至って救われた私たちキリスト者は、高慢の罪を悔い改め、自我を否定しへりくだる者であります。悪魔は依然として吠えたけり教会に何らかの影響力を及ぼすことができますが、それは鎖につながれた負け犬のようでもあり、全てが神の御手の中にあって、神の許しがなければ何もすることはできないのであります。神は悪魔の攻撃や悪巧みさえも、キリスト者にとって益に変えて下さり、永遠の栄光に招くための戦いとしてくださいます。私たちはこの主の戦いに招かれているので、酒に溺れることなく目を覚まして歩んで行く事ができる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