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年02月21日「神の僕として生きよ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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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の僕として生きよ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日付
説教
川栄智章 牧師
聖書
ペトロの手紙一 2章11節~17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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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句のアイコン聖書の言葉

2:11愛する人たち、あなたがたに勧めます。いわば旅人であり、仮住まいの身なのですから、魂に戦いを挑む肉の欲を避けなさい。
2:12また、異教徒の間で立派に生活しなさい。そうすれば、彼らはあなたがたを悪人呼ばわりしてはいても、あなたがたの立派な行いをよく見て、訪れの日に神をあがめるようになります。
2:13主のために、すべて人間の立てた制度に従いなさい。それが、統治者としての皇帝であろうと、
2:14あるいは、悪を行う者を処罰し、善を行う者をほめるために、皇帝が派遣した総督であろうと、服従しなさい。
2:15善を行って、愚かな者たちの無知な発言を封じることが、神の御心だからです。
2:16自由な人として生活しなさい。しかし、その自由を、悪事を覆い隠す手だてとせず、神の僕として行動しなさい。
2:17すべての人を敬い、兄弟を愛し、神を畏れ、皇帝を敬いなさい。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ペトロの手紙一 2章11節~17節

原稿のアイコン日本語メッセージ

【序】

 キリスト者は、この世に属する者ではなく、天国の市民です。この世にあって旅人であり、仮住まいの者に過ぎません。しかしだからと言って、この世において無責任で、いい加減な歩みをするようであってはなりません。異邦人の中で天国の市民として誇りを持ち、立派にふるま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イエス様を知らない人々のただ中で、たゆみなく善を行い、地の塩、世の光となって、真の神を証しする歩みをして行くということです。ローマの激しい迫害の中で、キリスト者が従順に歩む中で、ついに4世紀に至りキリスト教がローマ帝国の国教として定められました。もし、キリスト教徒がユダヤ教徒のようにローマの支配に抵抗していたなら、キリスト教がローマの国教となることはなかったでしょう。私たちが迫害に合う時、いじめられる時、本当に神は生きておられるのだろうかと思ってしまうことがあります。しかし、たとえ私たちにとってどうしても納得できないことが尽きないとしても、神様が御手をもって全てを治めておられるのは事実です。隠された神の知恵と神秘に属する部分がありまして、信仰生活の中で起こってくる様々な事柄を私たちが全て理解することなどできないのであります。

【1】. あなたがたを悪人呼ばわりしてはいても…

 2:11~12節をご覧ください。

“愛する人たち、あなたがたに勧めます。いわば旅人であり、仮住まいの身なのですから、魂に戦いを挑む肉の欲を避けなさい。また、異教徒の間で立派に生活しなさい。そうすれば、彼らはあなたがたを悪人呼ばわりしてはいても、あなたがたの立派な行いをよく見て、訪れの日に神をあがめるようになります。”

 12節に注目しますと、ペトロは未信者を指して異教徒と呼んでいることが分かります。この手紙はアナトリア半島の小アジアに一定の割合で住んでいるユダヤ人キリスト者と、そして彼らによって伝道された異邦人キリスト者に書かれたものと考えられますが、ペトロにとっては信仰をもっていない人々は、たとえ散らされたユダヤ人であろうと、同胞ではなく「異教徒」と見做しているということが分かります。初代教会のキリスト者は、とにかくユダヤ教徒と、ローマ帝国からひどい迫害を受けていました。一体なぜ彼らは、それほどまでに嫌われるのでしょうか。キリスト者は、しばしば既存秩序を破壊し、社会に混乱を引き起こす者たちというレッテルを張られましたが、小アジアでは、特に銀細工の職人たちがそのように非難したようです。銀細工の職人たちは、宗教に依存しながら生計を維持していました。しかしキリスト教の教えが広がると、人々が偶像を捨ててしまって、キリストに従って行くようになっていきますから、彼らにとってはキリスト者の存在は脅威だったのでしょう。また、当時、キリスト者に対する風評被害が実際に広まっていました。その風評被害とは、第一に、「キリスト者は人食い人種だ!」という噂です。これは、恐らく彼らが頻繁に行っていた聖餐式が、キリストの肉を食べ、キリストの血を飲むというふうに語られていたために、誤解されて、そのような悪口が広まったものと思われます。第二に、「キリスト者は近親相姦をしている淫らな人々だ!」という噂がありました。これは、恐らく「兄弟姉妹を愛しましょう」と語られていたために、そのような悪意ある形で噂が広まったものと思われます。ペトロはこのように世間から悪く言われているキリスト者に対して、仮住まいの身として慎みを持ち、肉の欲を避けることによって、立派な行いをするように勧めているのです。そして、そのようなキリスト者の立派な振る舞いこそ、神に対する証しとなり、異教徒に対する伝道になると言っているのです。

【2】. 皇帝であろうと、総督であろうと従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

 続いて13~15節をご覧ください。

“主のために、すべて人間の立てた制度に従いなさい。それが、統治者としての皇帝であろうと、あるいは、悪を行う者を処罰し、善を行う者をほめるために、皇帝が派遣した総督であろうと、服従しなさい。善を行って、愚かな人々の無知な発言を封じることが、神の御心だからです。”

欲を避けて立派な行いをしなさいという勧めはわかりますが、13~15節では、異邦人の皇帝に従いなさいと命じられています。時の皇帝は悪名高いネロ皇帝でした。これは衝撃の言葉であったに違いありません。というのは、旧約においてユダヤ人は神によって、明らかに他の異邦人とは区別されていたからです。従って、なぜ、神を信じておらず、神を知りもしない皇帝に従わ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なぜ自ら進んでローマの属国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という葛藤が起こってくるのです。自分たちが特別な神の恵みの中に生かされていて、そして信仰のためにすべてを捧げ、命さえも捧げようとしているのに、なぜ、自分たちが異邦人の迫害と権勢に屈服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という疑問です。実は、この教えは、福音書の中でも、イエス様が弟子たちに教えられていた内容でありましたが、ペトロ自身、最後までこのイエス様の教えを理解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実際に、ゲッセマネの園でイエス様を捉えに来たローマ兵に対し、ペトロは剣を抜いて兵士の耳を切り落としています。この時、イエス様はペトロに剣を鞘に納めるように命じ、そして兵士の耳を元通りに癒されました。この後にイエス様は十字架に架けられるのですが、その十字架上にあっても、「父よ、彼らをお赦しください。自分が何をしているのか知らないのです。」と、とりなしの祈りを捧げられました。イエス様の十字架の死によって、ペトロは初めてこの教えの意味を理解することができたと言えるのです。しかし、「皇帝であろうと、総督であろうと従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この言葉だけを聞くと単なる保守派ではないかと思ってしまいます。キリスト教は保守派で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事なのでしょうか。イエス様が本当に教えようとされていたことは一体何だったのでしょうか。

 2:13節において「人間の立てた制度」とありますが、ギリシア語を見ると、制度と翻訳された言葉は「創造、被造物:κτίσει」という言葉になっています。英語で言うなら、「クリエイション」とか「クリーチャー」に当たります。従って直訳すると「人間の被造物」となりますが、これでは、もっと分からなくなりますので「人の中に見られる自然的秩序」と理解してください。何が異なるのかと言えば、人間の中にみられる自然的な秩序なども、本を正せば、全て神の創造の御業であるという事です。異邦人の皇帝であろうと、総督であろうと、そのような秩序と社会全体も、全て神の創造の御業であり、主のために彼らを敬い、彼らのためにとりなし、従順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して従順から生み出されるキリスト者の善い行いによって、愚かな人々の無知な発言を封じることこそ神様の御心なのです。1テモテ2:1~2をご覧ください。

“そこで、まず第一に勧めます。願いと祈りと執り成しと感謝とをすべての人々のためにささげなさい。王たちやすべての高官のためにもささげなさい。わたしたちが常に信心と品位を保ち、平穏で落ち着いた生活を送るためです。”

キリスト者が彼らを敬いとりなす事を通して、神様は全ての人が信じて、救われることを願っておられるのです。

【3】. 自然と恵み

 それにしても13節の文脈で突然「被造物(制度)」という言葉が出て来るのは、不思議な感じがいたします。そのため「制度」と意訳したと思われますが、もう少しこの箇所を掘り下げていきましょう。聖書は、自然と超自然という二つの領域について教えています。図をご覧ください。自然とは何かと言いますと、神の「創造」と関係があり、超自然とは何かと言いますと、神の再創造、つまり「恵み」と関係があります。神様は自然と超自然、つまり、自然と恵みの二つの領域を区別され、混ざり合わないようにされますが、神様はこの二つの領域を共に治めておられ、二つの領域において休むことなく働きをされ、そして重要なことは、この二つの領域は、相反するものではなく、関連づけら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従いまして、恵みは決して自然に逆らわず、恵みは自然を破棄することはありません。

イエス様が二千年前に来られた時、ただ、悪魔の働きだけを滅ぼしに来られたのであって、父なる神様が制定された全てのものと、全ての働きをそのまま尊重されました。即ち、イエス様は人頭税を支払われ、カエサルのものはカエサルに返しなさいと命じられ、ペトロが剣を取った時に「剣を取る者は皆、剣で滅びる」と言われ、弟子たちが剣によって戦うことを禁じられました。ヤコブとヨハネが天から火を降らせて、信じない者たちを審判しようとする思いを戒められました。ルカ9:54~55をご覧ください。

“弟子のヤコブとヨハネはそれを見て、「主よ、お望みなら、天から火を降らせて、彼らを焼き滅ぼしましょうか」と言った。イエスは振り向いて二人を戒められた。”

イエス様はこの世に王として来られたはずなのに、この世にあるすべての権勢を認められています。時の政府の権勢を認め、大祭司を認め、ヘロデやピラトのその権勢を認めています。イエス様は世を審判されるためではなく、救われるために来られたということです。

これらのことから、神の再創造である恵みの法則は、自然の法則を破棄することはないということが分かってくるのです。むしろ恵みは、すべて自然的なものを、新しくさせて、聖くするのです。従ってイエス様によって告げられた福音は、決して家庭の秩序を損傷させることもありません。ある日、妻が福音を受け入れて、突然、自分は神の子となったからと言って、未信者の夫を軽蔑したり、夫に逆らったりするという事があるでしょうか。かえって夫に対し愛をもってこれまで以上に仕えるようになります。両親と子供の関係も同じです。ある日、子どもがイエス様を信じて、突然、まだ未信者の両親に対して反抗的になったり、家の秩序を崩壊させるようなことがあるでしょうか。かえってこれまでになく、一層親孝行となり、両親を敬うようになるのです。主人と僕の関係でも同じです。福音はすべての人が召しを受けた、その中に留まるように命じ、奴隷であったとしても、その制度を許容し、奴隷の身分にとどまりなさいと教えるのです。政府と民の関係においても全く同じことが当てはまります。これまでの関係を損傷させることはありません。福音は社会を混乱させたり、暴徒となって革命を先導するのではなく、イエス様によって買い取られ、自由にされたキリスト者は、信者であれ、未信者であれ、すべての人を敬い、そしてネロ皇帝をも敬うことができるのです。恵みは自然を破棄するのではなく、自然を新しくさせて、聖くするのです。恵みは神の創造である自然を、リフォームさせることによって、回復させるのです。革命的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私たちは地の塩であり、私たちの教会がリフォームドチャーチと呼ばれる由縁がここにあるのです。神の国の広がりとは、わずかのパン種が全体に混ぜ合わせられることによって、やがて全体が膨れあがるように拡大していくのです。

 キリスト教は、このような世界観を持っているために、自然に対して、神のように畏れて、それを拝むことがなければ、反対に、自然を軽視することもありません。もし自然を恐れるなら、自然崇拝という形をとります。古くから日本の中に残っているアニミズム的な、民族宗教に今でもはっきりとみられます。大きな大木を神として拝んだり、山を拝んだりしますね。キリスト者はこのような自然崇拝から解放されています。その反対に自然を軽視するとはどういうことかと言いますと、信仰が内省的となり、救いは精神に限定され、この世を肉として軽蔑するような考え方になります。いわゆる二元論的な信仰になってしまうのです。この世の政治・経済は全て汚れていて、肉の世界だと考えていきます。キリスト者はこのような異端的な考えからも解放されています。神様は自然の領域も、超自然の領域つまり恵みの領域をも、支配しておられ、この二つの領域は関連付けられているのです。そして恵みが自然を聖め、本来の姿に完成させ、回復させるというのが、イエス様の教えであり、本日ペトロを通して語られている内容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

【結論】

 第一に、自然の領域と、恵みの領域において、治めておられる方は同じ方であり、その方は父なる神様で、今もなお、休まずに働いておられます。神の造られたものは全て善きものであり、感謝することによって受け入れるならば何一つ破棄するものなどないということです。

第二に、「皇帝であろうと、総督であろうと従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という言葉の背景には、すべての人に福音を届けたいという慈しみ深い父なる神様の思いが込められています。神の僕にこの福音が託されているのですから、福音というのは、自然的なものに逆らうものではなく、また革命的なものでもなく、とりなしを通して、自然的なものを聖め、更新させ、リフォームしていくものなのです。

原稿のアイコンハングル語メッセージ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2021년 2월 21일 센겐다이 교회 주일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베드로전서 2장 11~17절

서론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천국 시민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요, 거류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 무책임하고 안일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방인 가운데서 천국 시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품위 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 가운데서, 끊임없이 선을 행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참된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극심한 박해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순순히 순교의 길로 나아가는 가운데 마침내 4세기에 이르러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정해졌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처럼 로마의 지배에 저항했다면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핍박을 당할 때, 괴롭힘을 당할 때,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에게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끊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손이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숨겨진 하나님의 지혜와 신비에 속한 부분이 있어서 신앙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2:11~12절을 보시겠습니다.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2절에 주목해 보면, 베드로는 불신자들을 가리켜 이방인이라고 부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서신은 아나톨리아 반도의 소아시아에 일정 비율로 살고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그리고 그들에 의해 전도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쓰여진 것으로 생각되지만, 베드로에게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비록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동포가 아닌「이방인」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어쨌든 유대인들과 로마 제국으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들은 그토록 미움을 받았을까요?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자들이라는 낙인이 찍혔는데, 소아시아에서는 특히 은세공 장인들이 그런 비난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은세공 장인들은, 종교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가르침이 확산되면서 사람들이 우상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르게 되면서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존재는 위협적인 존재였을 것입니다. 또한 당시 그리스도인에 대한 유언비어가 실제로 퍼져 있었습니다. 그 유언비어는 첬째, 「그리스도인은 식인종이다!」라는 소문입니다. 이는 아마도 그들이 자주 행하던 성찬식이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그리스도의 피를 마신다는 식으로 이야기되었기 때문에 와전되어 그런 악담이 퍼진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은 근친상간을 하는 음탕한 사람들이다!」라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형제자매를 사랑하자」는 말씀이 잘못 전달되어 그런 악의적인 형태로 소문이 퍼진 것으로 보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나쁜 비방을 듣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거류민의 몸으로 겸손하고 육체의 욕심을 피함으로써 선한 일을 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리스도인의 선한 행실이야말로 하나님께 대한 증거가 되고 이방인에 대한 전도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위에 있는 왕이나 총독에게 순종하라

계속해서 다음으로 13~15절을 보시겠습니다.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욕심을 버리고 선한 행실을 하라는 권면은 알겠는데, 13~15절에서는 이방인 황제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당시 황제는 악명 높은 네로 황제였습니다. 이것은 충격적인 말씀임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유대인은 하나님에 의해 다른 이방인과 분명히 구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왜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황제에게 순종해야 하는가, 왜 자발적으로 로마의 속국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자신들이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고, 믿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목숨까지 바치려고 하는데, 왜 자신들이 이방인의 박해와 권세에 굴복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사실 이 가르침은 복음서에서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내용이지만, 베드로 자신은 끝까지 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잡으러 온 로마 병사에게 베드로는 칼을 뽑아 병사의 귀를 자르고 맙니다. 이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넣으라고 명령하셨고, 병사의 귀를 원래대로 고쳐주셨습니다. 이후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는데, 십자가 위에서도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중보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베드로는 비로소 이 가르침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 있는 왕이나 총독에게 순종하라」라는 이 말을 들으면 단순한 보수주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독교는 보수주의여야 한다는 뜻일까요? 예수님이 진정으로 가르치려 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2:13절에「인간의 모든 제도」라는 말이 있는데, 헬라어를 보면 「제도」로 번역된 단어는 「창조, 피조물: κτίσει」이라는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영어로는 「Creation」'이나 「Creature」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직역하면「인간의 피조물」이 되지만, 이것으로는 더 알 수 없으므로 「사람 안에서 볼 수 있는 자연적 질서」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무엇이 다른가 하면,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자연적 질서 등도 정확히 말하자면, 모두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황제든 총독이든, 그런 질서와 사회 전체도 모두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요, 주를 위해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위해 간구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에서 나오는 그리스도인의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디모데전서 2: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디모데전서 2장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인이 그들을 공경하고 도고(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하는 기도)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3) 자연과 은혜

그렇다하더라도 13절의 문맥에서 갑자기「피조물(제도)」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제도」라고 의역한 것 같은데, 이 구절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은, 자연과 초자연이라는 두 영역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료 그림을 보시겠습니다. 자연이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이 있고, 초자연이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재창조」, 즉 「은혜」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연과 초자연, 즉 자연(창조)과 은혜(초자연)의 두 영역을 구별하시고 섞이지 않게 하시지만, 하나님은 이 두 영역을 함께 다스리시고, 두 영역에서 쉬지 않고 일하시며,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두 영역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은혜는 결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은혜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오셨을 때, 단지 마귀의 역사만 멸하러 오셨을 뿐, 아버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모든 것과 모든 역사를 그대로 존중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인두세를 내시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려주라고 명령하셨고, 베드로가 칼을 들었을 때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꽃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이 칼을 가지고 싸우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하늘에서 불을 내려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려는 마음을 경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9:54~55절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9장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니이까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왕으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의 모든 권세를 인정하고 계십니다. 당시 정부의 권세를 인정하고, 대제사장을 인정하고, 헤롯과 빌라도의 그 권세를 인정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재창조인 은혜의 법칙은, 자연의 법칙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은혜는, 모든 자연적인 것을 새롭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은 결코 가정의 질서를 손상시키지 않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갑자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불신자인 남편을 경멸하거나 남편을 거역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남편을 더욱 사랑으로 섬기게 될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날 자녀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불신자인 부모에게 반항하거나 집안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더 효도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게 될 것입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이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명령하고, 비록 노예라 할지라도 그 제도를 용납하고 노예의 신분으로 머물러 있으라고 가르칩니다. 정부와 국민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의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습니다. 복음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거나 폭도가 되어 혁명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며, 예수님께서 사셔서 자유케 하신 그리스도인은, 신자든 불신자든 모든 사람을 존중할 수 있고, 심지어 네로 황제까지도 존중할 수 있습니다. 은혜는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새롭게 하고 거룩하게 합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창조물인 자연을 리모델링하여 회복시키는 것이지, 혁명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며, 우리 교회가 리폼드 처치(Reformed Church)라고 불리는 유래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란, 약간의 이스트가 전체에 섞여 들어가서 결국 전체가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확장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런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을 신처럼 두려워하고 숭배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자연을 경시하지 않습니다. 만약 자연을 두려워한다면 자연 숭배라는 형태를 취합니다. 예로부터 일본에 남아 있는 애니미즘적인 민족종교에서 지금도 뚜렷하게 볼 수 있습니다. 큰 나무를 신으로 모시거나 산을 숭배하기도 합니다. 기독교인은 이러한 자연 숭배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 반대로 자연을 경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하면, 신앙이 내성적이 되고, 구원은 정신에 국한되어 이 세상을 육체로 경멸하는 사고방식이 됩니다. 이른바 이원론적 신앙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정치, 경제는 모두 더럽고 육의 세계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이단적인 생각으로부터도 자유롭습니다. 하나님은 자연의 영역도, 초자연의 영역, 즉 은혜의 영역도 다스리고 계시고, 이 두 영역은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가 자연을 거룩하게 하고, 본래의 모습으로 완성하고 회복시킨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오늘 베드로를 통해 말씀하시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결론

첫째, 자연의 영역과 은혜의 영역에 있어서 다스리시는 분은 한 분이시며, 그분은 아버지 하나님이시며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한 것이며,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네 위의 왕이나 총독에게 순종하라」라는 말씀의 배경에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시고자 하는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 복음이 하나님의 종에게 맡겨졌기 때문에 복음이란, 자연적인 것을 거스르는 것도 아니고, 또한 혁명적인 것도 아니며, 도고를 통해 자연적인 것을 거룩하게 하고, 새롭게 하고, 개혁해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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