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の霊的な家に造り上げられる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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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ペトロの手紙一 2章4節~10節
2:4この主のもとに来なさい。主は、人々からは見捨てられたのですが、神にとっては選ばれた、尊い、生きた石なのです。
2:5あなたがた自身も生きた石として用いられ、霊的な家に造り上げられるようにしなさい。そして聖なる祭司となって神に喜ばれる霊的ないけにえを、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献げなさい。
2:6聖書にこう書いてあるからです。「見よ、わたしは、選ばれた尊いかなめ石を、/シオンに置く。これを信じる者は、決して失望することはない。」
2:7従って、この石は、信じているあなたがたには掛けがえのないものですが、信じない者たちにとっては、/「家を建てる者の捨てた石、/これが隅の親石となった」のであり、
2:8また、/「つまずきの石、/妨げの岩」なのです。彼らは御言葉を信じないのでつまずくのですが、実は、そうなるように以前から定められているのです。
2:9しかし、あなたがたは、選ばれた民、王の系統を引く祭司、聖なる国民、神のものとなった民です。それは、あなたがたを暗闇の中から驚くべき光の中へと招き入れてくださった方の力ある業を、あなたがたが広く伝えるためなのです。
2:10あなたがたは、/「かつては神の民ではなかったが、/今は神の民であり、/憐れみを受けなかったが、/今は憐れみを受けている」のです。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ペトロの手紙一 2章4節~10節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2021년 1월 31일 센겐다이 교회 주일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베드로전서 2장 4~10절
서론
우리는 지금, 신약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신약시대란 무엇인가 하면, 「새 언약」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향해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언약을 맺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통해 이 언약은 일관되게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관된 언약을 비추는 빛은, 구약과 신약에서 조금 다릅니다. 구약에서는 희미하지만, 신약에서는 좀 더 분명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이 언약은 구약 시대, 모세 시대에는 언약궤가 안치된 장막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함께 그곳에 거하시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셨습니다. 이후 솔로몬에 의해 성전이 건축되자 이번에는 성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그곳에 거하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자신의 날개로 덮으시는 것처럼 항상 함께 하시며 자비와 보호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그 흘리신 보혈을 바탕으로 세워졌는데, 예수님이 죽으실 때, 성소의 휘장이 한 가운데가 찢어졌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구약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율법 시대가 법적으로 폐지되었다는 뜻입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옛 언약은, 어느 하나도 폐지된 것이 아니라, 마치, 나무의 열매가 익어, 겉 껍질을 벗겨낸 것처럼, 그 속에서 새로운 것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흡사, 뱃속의 태아로 지내던 구약시대에서 출산을 통해, 스스로의 독립적인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어졌고,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신약의 백성들은, 더 이상 할례를 행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회개의 할례가 성령으로 인해 마음에 행해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신약의 백성들은, 더 이상 제단에 동물의 제물을 드리지 않고, 대신 자신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신약의 백성은, 예전처럼, 일 년에 세 번씩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지 않지만, 그들 자신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워져 갑니다. 그러므로 교회야말로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며, 하나님이 그 날개를 펴고 임재하시는 장소가 된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집
지금까지 베드로는, 이 서신에서「산 소망」이라든가「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왔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을 가리켜 「산 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2:4~5절을 보시겠습니다.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서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4절에서, 무기물인 돌이「산 돌」이라고 하는 유기적 표현으로 수식되고 있어서, 우리에게 신비한 느낌을 줍니다. 이런 신비한 기사는 구약성경에서도 불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돌을 치자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물이 솟아났다는 기적입니다. 그리고「돌」이라고 하면, 베드로 자신의 이름도 돌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올바른 신앙고백을 한 직후에, 예수님께서 주신 히브리어 「게바」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완고하고 돌머리라서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6:16~18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6장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처럼 「반석, 돌」은 베드로 자신의 새로운 이름의 의미이기도 하며, 신약의 교회는 사도들의 증언으로 세워져 가는데, 오늘 이 베드로서신에서는, 베드로 자신을 포함하고 사도들을 포함하여, 모든 무거운 짐을 도맡아 짊어지신, 머릿돌 되신 예수님에 대하여 「보배로운 산 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터 위에 쌓아 올려질 수 있도록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구약의 성전과 신약의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신약의 백성이 대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셨던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성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집이자 유대인의 가장 소중한 것, 유대인의 자부심, 정체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말씀하셨고, 그 당시에 제자들은 깜짝 놀라며 들었는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교회가 세워지고 율법이 폐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됩니다. 애초에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언약의 완성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하나님의 집 건축 공사의 완성으로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미나미우라와교회에서도 새 예배당 건축 공사가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집도, 구약부터 신약의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를 통해 착실하게 건축 공사가 진행되어 돌이 하나하나 쌓아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의 설계자이자 건축가 「목수」는 물론 하나님이시지만, 그 최종 완성도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하늘의 도성, 새 예루살렘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 모습은 요한계시록 21장, 22장에 그려져 있는데, 하나님의 집이 완성될 때, 미나미우라와교회의 준공식과 다른 점을 하나 지적하자면, 그것은 바로, 헌당예배의 날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날은 오오바 목사님을 비롯한 미나미우라와 형제자매들과 참석한 형제자매들이 모두 축하를 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완성의 날은 특정 사람들만 축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물이, 하나님의 집 준공을 축하하고, 모든 입이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라고 공적으로 선포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광스러운 준공을 위해, 영광스러운 하늘 도성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산 돌」로 세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더 말하자면,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의 집의 제사장으로 서도록 허락된 것입니다. 거룩한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일을 담당하는데, 그 제물은 동물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드리는 영적 헌물입니다. 영적인 헌물이란, 구체적으로 기도, 찬양, 봉사, 헌금, 감사에서 우러나오는 여러 가지 선한 일들을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러한 헌물을 받지 않으시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가장 선한 행함조차도 완전할 수 없고, 우리는 이러한 헌물을 우리의 행위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드리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영원한 성정(聖定)
계속해서 2:6~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성정에 관해서 쓰여져 있습니다.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인을 경멸하고 조롱하며, 심지어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을 주기도 합니다. 그들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강권으로, 말씀에 불순종하여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의해 기꺼이 불순종하는 태도를 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뚜껑을 열어보면, 그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 나중에 그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들이 스스로 버린 돌이, 그들 자신에게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영광이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7절을 보면「보배로운 모퉁잇돌」라고 번역되어 예수님이 보배롭다는 뜻으로 해석되지만, 신뢰할 수 있는 학자들은 이 구절을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너희가 보배롭다, 너희에게 영광이 있으리라」라는 의미라고 입을 모읍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멸시와 조롱과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나그네와 같이 견뎌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안에, 굳게 서 있는 자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하나님으로부터 큰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성정에 정해져 있고, 놀랍게도 그들의 불순종의 행위가 하나님의 집의 완성에 협력하는 것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버린 돌이, 절묘하게, 바로 건물의 모퉁잇돌이 되어 그 자리에 딱 들어맞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능력과 위대하심이 표현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 즉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며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새 예루살렘이며, 그에 따른 만물의 회복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이어서 2:9~10절을 보시겠습니다.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베드로는 여기서「너희는 누구냐?」라는 질문을 던지며 네 가지 단어를 언급하며 정체성에 대해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들」,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이 단어들은 모두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을 가르치는 말입니다.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되어 있는데, 이 「덕」이라는 희귀한 단어가 사용되어져 있어,「신비한 힘」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특이한 단어가 쓰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이 한 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정말 신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10절의 말씀은 호세아서에서 인용한 말씀인데, 호세아 2장 2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호세아 2장
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호세아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로, 마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까운 장래에 자신들의 죄에 대한 보응으로 앗수르 포로로 끌려가는 슬픔에 처하게 될 그런 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이 인용문은 서신의 독자들에게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바로 앗수르 포로와 바벨론 포로로 흩어진 백성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스스로 파기하고 바알을 예배하거나 이방 신들을 섬기며 이방 신들에게 가버렸습니다. 또한 호세아의 아내인, 간음한 여인 고멜은 남편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불륜을 저질러 남의 자식을 잉태하게 됩니다. 주님은 호세아에게 명령하셔서 태어난 둘째 아이에게 「로루하마」라는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 뜻은 「이스라엘 백성을 긍휼히 여기지 않고 그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태어난 아이에게는 「로암미」라는 이름을 짓게 했습니다. 그 의미는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며, 나 또한 너희의 하나님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호세아서 2:25절에 보면, 훗날 로루하마는, 루하마 「긍휼히 여김을 받는자」, 로암미는, 암미「내 백성」이라고 불리게 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로」라는 단어가 부정어이기 때문에, 그냥 부정어가 들어간 형태입니다. 불신앙으로 인해 죄의 자녀로 태어난 아이가 호세아에게 「긍휼이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내 백성 아니었던 자」라고 불려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자녀들이 결국 「로」가 빠져서 루하마로 불리게 되고, 암미로 불리게 됩니다. 이와 같은 일이 지금 바로 베드로전서의 독자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스스로 파기하고 이방신들을 섬겼던 자신들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긍휼과 열정과 성실하심으로 다시 불러주시고 다시 「내 백성」이라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이 있을까요? 이 아름다운 덕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복음으로 널리 전파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언약을 파기하고, 죄와 더러움과 부패로 인해, 본래 하나님께 결코 용서받을 수 없고 더 이상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없는 백성,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회복이 주어졌고, 여러분을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들」, 「거룩한 나라」,「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로서, 영원토록 거룩한 백성으로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구성하는 산 돌로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과 그 아름다운 덕을 우리는 진심으로 찬양하고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序】
私たちは今、新約時代に生かされています。新約時代とは何かといいますと、「新しい契約」の時代ということです。聖書には、愛に満ちた神様が御自身の民に向かって「わたしはあなたの神となり、あなたはわたしの民となる」という契約を結んでくださったと書かれています。旧約と新約を通してこの契約は一貫して貫かれています。しかし、その一貫した契約を照らしている光は旧約と新約において、若干異なります。旧約においてはおぼろげでありますが、新約においてはより明瞭に表されました。この契約は、旧約の時代、モーセの時には契約の箱が安置されている幕屋に、神が臨在されることによって、神が民と共にそこに住まわれることを象徴的に表してくださいました。その後、ソロモンによって神殿が建築されると、今度は神殿に神が臨在されることによって、神がそこに住まわれることを象徴的に表してくださいました。それは、まるでイスラエルの民全体を御自身の御翼で覆うかのように、常に共にいてくださり、慈しみと守りを与えてくださいました。新しい契約は、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の死によって、その流された血潮に基づいて立てられましたが、イエス様が死なれた時、神殿の幕が上から下に真っ二つに裂けました。これは何かと言いますと、旧約時代が終わったことを意味しています。つまり、律法の時代が法的に廃止されたということです。いいえ、もっと正確に表現するなら、旧い契約は一つも廃止された訳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が、あたかも、木の果実が熟し、表面の皮を引き破ったかのように、その中から新しいものが現れたということです。あたかも、お腹の中の胎児として過ごしてきた旧約時代から、出産を通して、自分自身の独立的な歩みへと現れたということです。律法はモーセを通して与えられ、恵みと真理は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現れました。そのために新約の民は、もはや割礼を施す必要はなくなりましたが、悔い改めの割礼を聖霊によって心に施されました。また、新約の民は、もはや祭壇に動物の生贄を捧げることはしませんが、その代わりに自分自身を生きた生贄として神に捧げるようになりました。また、新約の民は、かつて、していたように、年に三度エルサレム神殿に巡礼することはありませんが、自分たちこそキリストの身体であり、神の神殿として建て上げられていくのです。したがって、まさに教会こそ神の家であり、神の住まわれる所となり、神がその御翼を広げて臨在される場所となったのです。
【1】. 神の家
ペトロはこれまで、この書簡の中で「生ける望み」、ですとか「生ける神の言葉」という言葉を使って来ましたが、本日の箇所では、イエス様に対して「生きる石」という言葉を使っています。2:4~5節をご覧ください。
“この主のもとに来なさい。主は、人々からは見捨てられたのですが、神にとっては選ばれた、尊い、生きた石なのです。あなたがた自身も生きた石として用いられ、霊的な家に造り上げられるようにしなさい。そして聖なる祭司となって神に喜ばれる霊的ないけにえを、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献げなさい。”
4節で、無機質である石に対して、「生きる」という有機的な表現によって修飾されていますが、不思議な感じを私たちに与えます。このような不思議な記事は旧約においても見受けられました。モーセが石を打った時に人々の渇きを癒す水がわき出たという奇跡です。そして「石」と言えば、ペトロ自身の名前も、石という意味でありました。それはペトロがイエス様に正しく信仰告白をした直後に、イエス様によって与えられたヘブル語の「ケパ」という名前でした。これはペトロが頑固で石頭だからあなたはペトロだと名付けたのではありません。マタイ16:16~18をご覧ください。
“シモン・ペトロが、「あなたはメシア、生ける神の子です」と答えた。すると、イエスはお答えになった。「シモン・バルヨナ、あなたは幸いだ。あなたにこのことを現したのは、人間ではなく、わたしの天の父なのだ。わたしも言っておく。あなたはペトロ(へ:ケパ)。わたしはこの岩の上にわたしの教会を建てる。陰府の力もこれに対抗できない。”
このように「石」とはペトロ自身の新しい名前の意味であり、そして新約の教会は使徒たちの証言によって建て上げられて行きますが、今日のこのペトロの手紙では、ペトロ自身も含め、使徒たちも含め、全ての重荷を一手に引き受けておられる土台石となられたイエス様に対して「尊い、生きた石」であると言っています。そして、イエス様の土台の上に積み上げられるように「あなたがた自身も生きた石として用いられ、霊的な家に造りあげられるように」と勧めているのです。ここにおいて旧約の神殿と、新約の、神の神殿としての新約の民が対比されていることに気づかされます。イエス様が生きておられた当時、ユダヤ人にとって神殿というのは神の家であり、ユダヤ人の最も大切なもの、ユダヤ人の誇り、アイデンティティーでありました。しかしイエス様は、「この神殿を壊してみよ。三日で建て直してみせる。」と言われ、弟子たちはびっくりして聞いていましたが、それは、イエス様が復活された後に、教会が建てられ、律法が廃棄されたということを悟ったのです。そもそも旧約と新約を貫いている契約の完成というのは、言ってみれば、神の家の建築工事の完成であると例えられ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今、南浦和教会においても新しい会堂建築工事が着々と進んでいますね。同じように神の家も、旧約から新約の現代にいたるまで、人類の歴史を通して、着々と建築工事が進められ、石が一つ一つ積み上げられているのです。神の家の設計者であり、建築家【大工さん】はもちろん神様ですが、その最終的な完成図は、キリストが再臨される時、天の都、新しいエルサレムとして完成されます。その様子は、ヨハネの黙示録21章、22章に描かれていますが、神の家が完成される時に、南浦和教会の竣工式とは異なる点として一つ指摘させていただくなら、それは、ちょっと献堂礼拝の日を想像してみてください。その日は、大場先生を始め兄弟姉妹がみんなでお祝いしますね。しかし、神の国の完成の日というのは、ある特定の人々がお祝いするどころではありません。万物が神の家の竣工をお祝いし、すべての口が「イエス・キリストは主である」と公に宣べて、新天新地が現れるというのです。このような栄えある竣工に向けて、栄光ある天の都に、私たち一人ひとりも「生ける石」として建て上げられているのです。さらに言えば、聖徒たち一人ひとりは神の家の祭司として立ち振る舞うことが許されている、聖なる祭司は、神に生贄を捧げる働きを担っていますが、その生贄とは動物ではなく、イエス様を通して捧げる霊的な献げ物です。霊的な献げ物というのは、具体的には祈りであったり、賛美であったり、奉仕であったり、献金であったり、感謝から湧き出て来る諸々の良き業です。しかし、神様がこれらの献げ物を受け取ってくださらなければ意味がありませんね。私たちの最も良い業でさえ汚れている以上、私たちはこれらの献げ物を私たちの業として捧げるのではなく、キリストを通して捧げるのです。
【2】. 神の永遠の聖定
続いて2:6~8節をご覧ください。ここには神様の永遠の聖定について述べられています。
“聖書にこう書いてあるからです。「見よ、わたしは、選ばれた尊いかなめ石を、/シオンに置く。これを信じる者は、決して失望することはない。」従って、この石は、信じているあなたがたには掛けがえのないものですが、信じない者たちにとっては、/「家を建てる者の捨てた石、/これが隅の親石となった」のであり、また、/「つまずきの石、/妨げの岩」なのです。彼らは御言葉を信じないのでつまずくのですが、実は、そうなるように以前から定められているのです。”
イエス様を受け入れない人々は、今も昔もそうですが、キリスト者を軽蔑し、キリスト者を嘲り、それだけにとどまらずキリスト者に苦難を与えることさえあります。彼らが御言葉を受け入れられないのは、神によって強勢されて、御言葉を拒絶するように、神によって不従順にさせられるのではなく、自らの自由意志によって、進んで不従順な態度を選び取るのです。しかし、結局、ふたを開けるなら、彼らが捨てたはずの石が隅の親石となって、後ほど彼らが恥を見ることになるというのです。もっと言えば、彼らが自分で捨てた石が彼ら自身のつまずきの石となり、それに倒されてしまい、踏んだり蹴ったりという結末を迎えるという事です。一方で、キリストに依り頼む者たちには、栄誉があるだろうと書かれています。7節を見ますと、「この石は、掛けがえのないものですが」と訳されていて、イエス様が尊いという意味になりますが、信頼できる学者たちは異口同音に、この箇所は、「キリストに依り頼んでいるあなたがたが尊い、あなた方に誉れがあるだろう」という意味であると言っています。キリスト者はこの世において、歓迎されることはなく、軽蔑され、嘲られ、苦難や迫害を受けて、旅人のように耐え忍ぶことになりますが、なおイエス様に堅く立っていた者たちは、イエス様が再臨される時、神様から大いなる誉れを受けるのです。そして御言葉を信じない者たちは、神の永遠の聖定において定められていて、不思議に彼らの不従順の業が、神の家の完成に寄与し、神の家に完成に協力するという事になると言っているのです。彼らの捨てた石がちょうど絶妙に建物のコーナーストーンとなってその場所にピタッとあてはま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ここに神様の恐るべき知恵と、力と、偉大さが表されているのです。神の予定、つまり神の選びと遺棄は、神の究極的な目的ではなく、神様の究極の目的は、新しいエルサレムであり、それに伴う万物の回復と神の栄光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
【3】. 神の不思議な御業
続いて2:9~10節をご覧ください。
“しかし、あなたがたは、選ばれた民、王の系統を引く祭司、聖なる国民、神のものとなった民です。それは、あなたがたを暗闇の中から驚くべき光の中へと招き入れてくださった方の力ある業を、あなたがたが広く伝えるためなのです。あなたがたは、/「かつては神の民ではなかったが、/今は神の民であり、/憐れみを受けなかったが、/今は憐れみを受けている」のです。”
ペトロはここで「あなた方は何者なのか?」、4つの言葉を挙げながらアイデンティティーに関してはっきりさせています。「選ばれた民」「王の系統を引く祭司」「聖なる国民」「神のものとなった民」。これらはいずれも旧約時代のイスラエルを指して使われてきた言葉です。光の中へと招き入れてくださった方の力ある業を伝えるためとありますが、この「業」という言葉は、珍しい単語が使われていまして、「徳」とか「不思議な力」と訳されたりいたします。神の慈しみ、神の恵みとは、人がかつて見たことも、聞いたことも、考え付いたこともないような本当に不思議なものなので、そのことを私たちは褒め称えざる得ないということです。そして最後の10節の言葉はホセア書からの引用ですが、ホセア書2:25をご覧ください。
“わたしは彼女を地に蒔き/ロ・ルハマ(憐れまれぬ者)を憐れみ/ロ・アンミ(わが民でない者)に向かって/「あなたはアンミ(わが民)」と言う。彼は、「わが神よ」とこたえる。”
預言者ホセアという人は北イスラエルで活躍した預言者で、ちょうどイスラエルの民が近い将来、自分たちの罪の報いとしてアッシリア捕囚という憂き目に合うであろう、そのような時期に神様の言葉を伝えていました。この引用は手紙の読者たちにとって他人事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なぜなら自分たちこそ、まさにアッシリア捕囚やバビロン捕囚によって散らされた民であったからです。ホセアの時代、イスラエルの民は自分たちの神を裏切り、神との契約関係を自分たちから破棄し、バアルに礼拝を献げたり、異教の神々に着いて行ってしまいました。さらに、ホセアの妻である姦淫の女ゴメルは、夫に愛されていながらも不貞を働き、他人の子を身ごもってしまいました。主はホセアに命じて、生まれてきた二番目の子に対し、「ロ・ルハマ」と名付けさせました。その意味は「イスラエルの民を憐れまず/彼らを決して赦さない」という意味です。そして三番目に生まれて来た子に対しては、「ロ・アンミ」と名付けさせました。その意味は「あなたがたは私の民ではなく、私もまた、あなたがたのものではない」という意味です。ところが、やがて、ルハマ「憐れまれる者」、アンミ「私の民」と呼ばれるようになる、とホセア書2:25に書かれているのです。ヘブル語で「ロ」と言う言葉が否定語ですから、ちょうど否定語がとれた形です。不貞によって、罪の子として生まれてきた子が、ホセアから「憐れまれない者」「私の民ではない者」と呼ばれても全く不思議ではありません。ところがその子たちが、やがて「ロ」がとれて、ルハマと呼ばれるようになり、アンミと呼ばれるようになるのです。それと同じことが今、まさにペトロの手紙の読者たちにおいて起こっているのです。罪を犯し、神との契約を自ら破棄し、異教の神々を礼拝してしまった自分たちのことを、神は、なお放棄することなく、あきらめることなく、神様の憐れみと熱意と誠実によって、御自身のもとに呼び戻してくださり、再び「私の民」と宣言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これほど不思議な事があるでしょうか。この不思議な御業を、賛美して、褒めたたえつつ、福音として広く宣べ伝えなさいと語っているのです。
【結論】
契約を破棄し、罪と汚れと腐敗によって、本来、神に決して赦されることもなく、これ以上、憐れまれることのない民であり、もはや神の民ではなかった者にも関わらず、不思議にも回復が与えられ、あなた方は「選ばれた民」「王の系統を引く祭司」「聖なる国民」「神のものとなった民」と宣言されたのです。それは、私たちがイエス・キリストに結合されたものとして、永遠において聖なる民として定められていたからであります。神の家を構成する生ける石として、キリストにあって定められていたからです。この不思議な神のご計画とその御業を、私たちは心から賛美し褒めたたえ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