すぐ鶏が鳴いた 닭이 곧 울더라
- 日付
- 説教
- 川栄智章 牧師
- 聖書 マタイによる福音書 26章69節~75節
69ペトロは外にいて中庭に座っていた。そこへ一人の女中が近寄って来て、「あなたもガリラヤのイエスと一緒にいた」と言った。
70ペトロは皆の前でそれを打ち消して、「何のことを言っているのか、わたしには分からない」と言った。
71ペトロが門の方に行くと、ほかの女中が彼に目を留め、居合わせた人々に、「この人はナザレのイエスと一緒にいました」と言った。
72そこで、ペトロは再び、「そんな人は知らない」と誓って打ち消した。
73しばらくして、そこにいた人々が近寄って来てペトロに言った。「確かに、お前もあの連中の仲間だ。言葉遣いでそれが分かる。」
74そのとき、ペトロは呪いの言葉さえ口にしながら、「そんな人は知らない」と誓い始めた。するとすぐ、鶏が鳴いた。
75ペトロは、「鶏が鳴く前に、あなたは三度わたしを知らないと言うだろう」と言われたイエスの言葉を思い出した。そして外に出て、激しく泣いた。
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マタイによる福音書 26章69節~75節
닭이 곧 울더라
2019년 7월7일 설교 카와에 토모아키 목사
마태복음 26장 69절~75절
예수님께서는 유대 당국자들에게 붙잡히셔서 밤중임에도 불구하고 급히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 종교재판을 받게 되셨습니다. 가장 가까운 제자인 베드로는 일의 경과를 살피려 대제사장의 집 뜰의 안에 들어가 앉아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베드로의 계획대로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후에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는 믿음에 걸려 넘어져서 세 차례나 예수님을 부인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부인하는 방식도 처음에는 얼버무리며 넘어가려 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부인할수록 점점 격렬해지다가 맹세와 저주를 하며 결정적으로 주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베드로의 세 번 부인은 34절에 기록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예언의 성취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대제사장을 비롯한 산헤드린 의원들은 주 예수님을 때리고 모욕하면서 「이런 가난한 자가 메시아일 리 없다」「이렇게 약하고 추하고 우습고 불쌍한 자가 메시아일 리 없다」라고 생각하며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조롱하며 점점 더 흥분하는 가운데 이 예언의 성취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엄숙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후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게 끌려가 국가권력에 의한 재판을 받게 되십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베드로의 걸려 넘어짐이 되는 첫 번째 부인을 살펴보겠습니다. 69절부터 보면 한 비자가 다가와 「너도 갈릴리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베드로는 모두 앞에서 그것을 부인하며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고 대답합니다. 이는 분명한 부인이 아니지만, 임박한 위험에서 벗어나려 입으로 비자의 질문을 모호하게 하고 초점을 흐리며 얼버무리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면이 있지 않습니까. 곧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부인이라든가 직장이나 개인 사정으로 예수님을 은연중에 무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회 안에서도 교인들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는 예수님을 빼고 이야기합시다」라든가 「기도만 하고 문제가 해결될까요 현실적인 해결책을 생각합시다」라고 말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일상적인 태도가 결국 큰 걸려 넘어짐으로 우리를 덮칠 것입니다.
베드로는 바깥 뜰에서 도망치듯 앞문까지 나아가니, 이번에는 다른 비자가 베드로를 보고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다시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맹세하며 부인했습니다. 베드로의 두 번째 부인은 거짓 맹세를 함으로써 더 강하게, 더 결정적으로 예수님을 부인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혹독한 고문이나 큰 음모로 인해 걸려 넘어진 것이 아닙니다. 두 비자(두 번째는 「또 다른 비자」)가 등장했지만 직역하면 「하녀들」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여성이 차별을 받았으므로 하녀란 전혀 대수롭지 않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 하녀의 말로 인해 베드로는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진심으로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기보다 우리의 육신의 생각을 우선시할 때,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보호와 지원이 우리에게서 빼앗겨 우리의 연약함과 무능력이 온전히 드러나, 싸움도 시작되기 전에 전쟁의 기미만으로 항복하는 무기력한 자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우리는 완전히 무장해제되어 약간의 바람이 불거나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에도 힘없이 쓰러지고 맙니다. 그 후 잠시 지나 세 번째 부인이 일어납니다. 이번에는 하녀가 아니라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다가와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73~74절을 보십시오.
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 저가 저주하여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이 질문에 대해 베드로는 반사적으로 부인하지만, 말만 놓고 보면 매우 신학적인 표현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베드로를 가리켜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라고 했습니다. 원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바로 죄인들의 친구가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경에 「임마누엘」이라고 불리실 것입니다. 임마누엘은 직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히브리어입니다. 따라서 여기 질문은 신학적으로 보면 「너도 저 공동체의 일원이다, 예수를 머리로 하는 교회의 일원이다」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베드로의 반응을 보면 저주의 말까지 입에 올리며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맹세하기 시작하여 세 번째 부인을 하고 맙니다. 74절의 「저주하며 맹세하는 말」은 무엇을 저주하는지 목적어가 분명하지 않지만, 이 동사는 분명 자신을 가리키는 동사가 아니라 제3자를 목적어로 삼는 동사이므로 분명히 쓰여 있지는 않지만, 암시적으로 예수님을 저주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런 놈, 인간도 아닌 이런 놈과 내가 무슨 관계가 있겠어! 맹세해도 되지만, 나는 이런 놈을 모른다!」라는 느낌입니다.
사실 우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단 것은, 유대 당국자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서는 예수님의 제자를 대표하는 베드로 자신이, 예수를 저주받아야 할 자, 죄인으로 단정하고 십자가형에 넘겨주고 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연약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리스도를 발로 밟고 침을 뱉으며 저주까지 하여 십자가에 단 것은 바로 제자 중의 제자인 베드로이며 그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예수님에 대한 부인은 사실 대제사장의 집 뜰로 들어갔을 때 이미 시작되어 있었습니다. 26:58절을 보십시오.
58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국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속들과 함께 앉았더라
베드로는 멀리 떨어져 예수님을 따라가며 일의 경과를 살피려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국을 보려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곧 예수님을 따르기는 따랐지만 안전한 거리에서 따랐던 것입니다. 베드로 본인으로서는 따르는 방식이 어떻든 예수님을 따르고 있으니 불만은 없을 거라고 정당화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는 진정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축복과 유익은 확실히 받으면서 혹시 어려움이나 고난이 닥치면 언제든 도망칠 수 있게 멀리 떨어져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 바로 옆에서 100%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세상을 양다리로 걸치며 어느 쪽이든 갈 수 있게 오로지 「자기 보신만을 위해 머리를 쓰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믿음은 자기 보신이 아니라 예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입니다. 성경에도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리라」고 기록된 대로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자 곧 닭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냈습니다. 그제야 자신의 연약함, 죄 깊음,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자신이 온전한 죄인이며 자신 안에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때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오만하게 말했던 것을 분명히 기억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서 심히 통곡했습니다. 너무도 한심한 자신의 모습에 울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진정으로 회개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진정 회개했다면 어찌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지금 그리스도를 부인한 것을 모두 앞에서 바로잡지 않았겠습니까? 왜 일부러 밖으로 나와 사람을 피해 울었겠습니까? 이 시점에서는 아직 회개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찢어지고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맞는 슬픔은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줍니다. 고린도후서 7:10절을 펴 보십시오.
고린도후서 7장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자기 보신에만 급급한 베드로의 모습을 볼 때, 저는 전시 중 일본 그리스도교회가 국가에 추종하며 걸어온 역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 그리스도 개혁교회의 전신인 이른바 「구일기(旧日基)」라 불리는 일본 그리스도교회는 전시 중 정부가 추진한 「국가신도 중심의 국체 일치 체제」에 과연 저항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국체 정책에 전면적으로 협력하고 전쟁을 부추겨 온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니었을까요.
일본 그리스도교회의 지도자였던 「우에무라 마사히사」는 청일전쟁을 새로운 문명에 서려는 일본과 오래된 문화·문명에 집착하는 청국과의 대립 구도로 파악했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아시아의 문화 발전이 촉진되고 그것은 단순히 일본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청국의 구원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으며, 도의적인 의미에서도 전쟁에 전면적으로 찬성했습니다. 교회는, 청국의 구원을 위해, 아시아의 구원을 위해 문명국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또 1910년 한국 병합을 하게 되었을 때, 「우에무라 마사히사」는 그것을 이스라엘의 가나안 점령에 비유하면서 일본에게 조선반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약속의 땅」이라고 말했습니다.
「우에무라 마사히사」가 소천 한 후, 1936년 이후에는 군부가 부상하면서 교회는 점점 천황제를 옹호하며 기독교인의 천황 숭배도 두드러지게 되었습니다. 국가는 기독교에 시민권을 주고 보호를 하게 되었지만 동시에 교회는 완전히 국가신도 체제에 편입되어 갔습니다.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쳐 가톨릭 신자들의 키리시탄 탄압에서 많은 순교자들이 배출되었지만, 박해 속에서도 키리시탄들은 자신의 믿음을 굳건히 지켜냈습니다.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전시 중 일본 그리스도교회의 기독교인들은 근대 천황제 아래에서 자기 보신에 급급하여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확실히 순교자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순교자를 배출한 유일한 사건으로 1942년 홀리네스 교회 검거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홀리네스 교단 사람들이 다수 투옥되어 감옥에서 순교자 5명을 배출했습니다. 분명 검찰과 경찰의 폭력으로 빚어진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일본 그리스도교단 본부는, 교단 내 제6부와 제9부에 해당하는 홀리네스 교단을 몹시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홀리네스 교단은, 재림 신앙에 열렬했기 때문에 종교와 현실을 일원적으로 생각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성경에 기록된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주장했고, 전쟁이 끝나면 구원주께서 재림하시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며 기독교인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그 나라의 통치자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게다가 이때 이미 소천하여 생존자가 아니었지만 원 지도자인 「나가타 시게하루(中田重治)」가 「일유동조설(日猶同祖説:일본인과 유대인이 같은 조상에서 나왔다는 설)」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그리스도교단은, 홀리네스 교단이 탄압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종교와 현실을 혼동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이 기회를 이용해 홀리네스 계열 교회를 「이단 분자」로 분리함으로써 더 건전한 교단을 결성할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검거된 홀리네스 교도들 중 제6부에 속한 사람들은, 나가타 시게하루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전도에 힘쓰며 국가 정책에 전면적으로 찬성했는데도 불구하고 뜻하지 않게 검거되었습니다. 「앞으로는 나라로부터 혼동오도(混乱錯綜)의 의심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라는 형태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즉 다른 말로 하면 자신들은 전쟁이나 국가에 반항할 의사도 없었고 앞으로도 종교와 현실을 일원적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하면서 종교는 종교, 정치는 정치라고 이원적으로 생각해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와 같이 국가 정책에 전면 협력하면서 종교상으로는 왕의 왕은 예수님이지만 현실에서는 천황께 숭배하겠습니다,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홀리네스 탄압이란 천황 숭배에 저항했기 때문이 아니라 종교와 현실을 일원적으로 생각하여 「혼동오도」시켜 버린 탓에 일어난 탄압이 되어버렸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기독교인들은 전시 중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죄 깊음과 어리석음을 패전으로 통해 객관적으로 보게 되어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바로 베드로가 느꼈던 것과 같은 말할 수 없는 절망과 슬픔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십자가에 넘겨준 것이 바로 자신들임을 깨닫는 슬픔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주의 십자가가 모든 인간의 연약함과 죄 깊음을 위한 대속이라는 깨달음이 분명히 주어졌습니다. 절망적인 슬픔을 통해 우리 안에 좋은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분명히 자각하고 전적으로 타락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절망적인 슬픔을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마음에 분명히 새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인도하신 것처럼 절망과 슬픔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과 회개로 인도하십니다. 기도합시다.
イエスさまは、ユダヤの当局者たちによって捕らえられ、夜中にも関わらず急遽、大祭司カイアファの家で宗教裁判を受けることになりました。一番弟子であるペトロはことの成り行きを見ようと、大祭司の屋敷の中庭に入って行ったところです。ここまではペトロの作戦通りに行ったかもしれませんが、その後、とんでもないことが起こってしまいました。ペトロは信仰に躓いてしまい、三度もイエス様を否定してしまうということが起こってしまったのです。その否定する仕方も最初は、とぼけながらやり過ごすのですが、二回、三回と否認する度に次第に激しくなり、誓いと呪いによって決定的に、主イエスを否認すること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実は、ペトロの三度の否認というのは、34節に書かれている、「はっきり言っておく。あなたは今夜、鶏が鳴く前に、三度わたしのことを知らないと言うだろう。」というイエス様の預言の成就でもありました。
一方、大祭司をはじめサンヘドリンの議員たちは、主イエスを殴り、辱めながら、「このような貧しい者がメシアであるはずがない」「このような弱く、見苦しく、滑稽で、憐れな者が、メシアであるはずがない」と考え「メシア、お前を殴ったのはだれか。言い当ててみろ」と愉快に言いながら、いよいよ盛り上がっている中において、この預言の成就は、イエス様がメシアであることを粛々と証明しているのであります。この後、イエス様はピラトの下に連れられて国家権力による裁判にかけられることになります。
それでは具体的にペトロのつまずきとなる第一の否認を見ていきましょう。69節から見ていきますと、一人の女中が近寄って来て「あなたもガリラヤのイエスと一緒にいた」と言いました。その言葉に対しペトロは、皆の前でそれを打ち消しながら、「何のことを言っているのか、わたしには分からない」と答えます。
これは、はっきりとした否定ではありませんが、身に迫る危険から逃れようと、口先で、女の質問を曖昧にして、焦点をぼやかし、ごまかしている態度だと言えるでしょう。このような態度は私たちにも何か心当たりがあ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つまり普段の生活における些細な否定であったり、仕事や一身上の都合によってイエス様をさりげなく無視することです。例えば、教会の中でも教会員の間で何か問題が起こった時などに「私たちはイエス様を抜きにして話をしましょう」とか、「祈るだけして果たして問題が解決できるのでしょうか、現実的な解決策について考えましょう」と言ってしまったりします。このような、普段の何気ない態度が、やがて大きなつまずきとなって私たちを襲うことになるということです。
ペトロは中庭から逃げるように、門の方へ向かって行きますと、今度は他の女中がペトロに目を留め、居合わせた人々に、「この人はナザレのイエスと一緒にいました」と言いました。ペトロは、再び「そんな人は知らない」と、誓って打ち消しました。ペトロの第二の否認は、偽りの誓いをすることによって、より強く、より決定的にイエス様を否定したと言うことです。ペトロはここで、何も激しい拷問によって、或いは、大層な陰謀によって躓いた訳ではありません。
二人の女中(二人目は「また他の女」)が登場しましたが、直訳するなら「召使の女」です。当時ユダヤの社会では女性は差別を受けていましたから、召使の女というのは、全くとるに足らない者という意味になります。その女中の言葉を通してペトロは転んでしまったのです。
このことから、神の御言葉に心から聞き従わず、神を敬うことより、私たちの肉の考えを優先する時、知らない内に、私たちから神の守りと支えがはく奪されてしまい、私たちの弱さと無力さが全面に露呈されて、まだ戦闘が開始される前から、戦争の兆しだけで投降してしまうような無力な者になってしまうことを覚えなければなりません。神の助けがなければ、私たちは完全に武装解除されて、少しの風が吹いたり、落ち葉が落ちる物音に対しても、力なく倒れてしまうということです。
それから、しばらくして第三の否定が起こります。今度は、女中ではなく、そこにいた人々が近寄って来てペトロに言いました。73~74節をご覧ください。
しばらくして、そこにいた人々が近寄って来てペトロに言った。「確かに、お前もあの連中の仲間だ。言葉遣いでそれが分かる。」そのとき、ペトロは呪いの言葉さえ口にしながら、「そんな人は知らない」と誓い始めた。するとすぐ、鶏が鳴いた。
この質問に対し、ペトロは反射的に否定していますが、言葉だけに注目するなら、とても神学的な言葉でもあります。人々はペトロを指して「あの連中の仲間である」と言っています。そもそもイエス様がこの世に来られた目的とは、まさに罪びとの友となるためでした。ですからイエス様は「インマヌエル」と呼ばれるだろうと聖書に書かれています。インマヌエルとは、直訳するなら「神は我らと共におられる」というヘブル語です。従ってここでの質問は神学的に見ると「お前もあの、共同体の一人だ、イエスを頭とする教会の一人だ」という質問であったということです。
ペトロの反応を見てみますと、呪いの言葉さえ口にしながら、「そんな人は知らない」と誓い始め、三度目の否定をしてしまいます。74節の「呪いの言葉」とは何を指して呪っているのか、目的語がはっきりしませんが、この動詞は明らかに自分自身を指す動詞ではなく、第三者を目的語に取る動詞ですから、はっきりとは書かれていませんが、暗にイエス様を呪っていると解釈するべきです。「こんな奴、人でもないこんな奴と私に何の関係があるのか!誓ってもいいが、私はこんな奴、知らない!」という感じです。
実際、私たちはイエス様を十字架に架けたのは、ユダヤの当局者たちであると考えますが、ここでは、イエス様の弟子を代表とするペトロ自身が、イエスを呪われるべき者、罪人と断定し、十字架刑に引き渡していると読み取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それは、ペトロの弱さの故であったかもしれませんが、キリストを足で踏みにじり、唾を吐きかけ、呪いをもって十字架に付けてしまったのは、まさに弟子の中の弟子であったペトロであり、それは私たち自身であったということです。
ところで、ペトロのイエス様に対する否認は、実は、大祭司の屋敷の中庭に入っていった時に既に始まっていました。26章58節をご覧ください。
ペトロは遠く離れてイエスに従い、大祭司の屋敷の中庭まで行き、事の成り行きを見ようと、中に入って、下役たちと一緒に座っていた。
ペトロは、遠く離れてイエス様に従い、事の成り行きを見ようと中庭に入っていきました。つまりイエス様に従うには従いましたが、安全な場所から従ったのです。ペトロ本人からしてみれば、従い方はどうであれ、イエス様に従っているのだから文句はないでしょうと、正当化する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これは、本当の意味でイエス様に従っているのではなく、イエス様からの祝福と利益はしっかり受け取るけれども、万が一、困難や苦しみが自分の身に迫ってくるなら、いつでも逃げられるように、遠く離れて従っているのです。イエス様の真横で100%従っているのではなく、イエス様と世の中を二股にかけながら、どちらにでも行けるように、ひたすら「自分の保身だけに、頭を使っている姿」が浮き彫りにされるのです。しかし、私たちキリスト者に求められている信仰とは、自分の保身ではなく、イエス様に対する全き献身です。聖書にも「だれも、二人の主人に仕えることはできない、あなたがたは、神と富とに仕えることはできない。」と書いてある通りなのです。
ペトロがイエス様を三度否定すると、すぐ鶏が鳴き始めました。ペトロは、「鶏が鳴く前に、あなたは三度わたしを知らないと言うだろう」と言われたイエス様の御言葉を思い出しました。その時になって初めて自分の弱さ、自分の罪深さ、自分の愚かさを痛感し、自分が全き罪人であって、自分の内に誇れるものは何もないことをはっきりと自覚することになったのです。そして同時に、あの時、自分は「たとえ、御一緒に死なねばならなくなっても、あなたのことを知らないなどとは決して申しません」と傲慢にも言い放ったことを思い出したに違いありません。ペトロは外に出て、激しく泣きました。あまりにも情けない自分の姿に泣いたのです。この時、決してペトロが悔い改めたということ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もし真に悔い改めたのなら、なぜ、その場で涙を流し、今キリストを否定したことを皆の前で訂正しなかったのでしょうか?なぜ、わざわざ外に出て、人目をはばかりつつ泣いたのでしょうか?この時点ではまだ、悔い改めた訳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が、心が破られ、深い悲しみと絶望に落とされたのです。しかし、神の御心にかなった悲しみは、私たちに深い教訓を与えてくださいます。Ⅱコリント7:10をお開き下さい。
神の御心に適った悲しみは、取り消されることのない救いに通じる悔い改めを生じさせ、世の悲しみは死をもたらします。
自己保身に腐心するペトロの姿を見るとき、私は戦時中に日本のキリスト教会が国家に迎合して歩んできた歴史を思い出さざるを得ません。日本キリスト改革派教会の前身である、いわゆる「旧日基」とよばれる日本基督教会は、戦時中、政府が推進する「国家神道を中心にすえた挙国一致体制」に果たして抵抗してきたと言えるでしょうか。正直に申し上げれば、むしろの国体の政策に全面的に協力し、戦争を煽って来たと言った方が適切ではなかったでしょうか。
日本基督教会の指導者であった植村正久は、日清戦争を新しい文明に立とうとする日本と、古い文化・文明に固執する清国との対立という構図で捉えました。日清戦争に日本が勝利することによって、アジアの文化的発展が促進され、それは単に日本の国益を守るためではなく、清国の救済という意味も含まれており、道義的な意味においても戦争に全面的に賛成していました。教会は、清国の救済のために、アジアの救済のために、文明国日本が戦争に勝利するように祈っていたのです。
また、1910年の韓国併合を受けて、植村は、それをイスラエルのカナン占有に例えながら、日本にとって朝鮮半島は、神が私たちに与えられた「約束の地」であると語っています。
植村が天に召された後、1936年以降においては、軍部が台頭し、教会はいよいよ天皇制を擁護しつつ、キリスト者の天皇崇拝も顕著になっていきました。国家はキリスト教に市民権を与え、保護を与えるようになりましたが、同時に、教会は完全に国家神道体制に取り込まれて行きました。
かつて江戸時代から明治にかけて、カトリック信者のキリシタン弾圧において、多くの殉教者が輩出されましたが、迫害の中、キリシタンたちは根強く自分たちの信仰を守り通しました。そのことをよく知っていたにもかかわらず、戦時中の日本基督教会のキリスト者たちは、近代天皇制のもとで、自己保身に腐心するあまり、抵抗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です。
確かに殉教が全くなかったという訳ではありません。殉教者を出した唯一の事件として1942年のホーリネス教会検挙事件を挙げることができます。ホーリネス派の人々が何人も投獄され、獄中において殉教者を5名、出しました。明らかに検察や警察官の暴力が生み出したひどい事件でした。しかしこの時、日本基督教団本部は、教団の中の第6部と第9部に当たるホーリネス派をひどく恥ずかしく思っていました。ホーリネス派は再臨信仰に熱心になっていたため、宗教と現実を一元的に考えるあまり、彼らは第二次世界大戦を、聖書に書いてあるハルマゲドンの戦いであり、戦争が終結した暁には救い主が再臨し神の国が樹立され、キリスト者もキリストと共にその国の支配者として与るだろうと主張していました。さらに言うと、この時は、もう既に召されて存命人物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が、元指導者であった中田重治が日ユ同祖説を主張していたのです。日本基督教団は、ホーリネス派が弾圧を受けるのは当然であると考えていて、宗教と現実を混乱していると非難しました。そして、むしろ、この機会を利用しホーリネス系の教会を「異端分子」として分離することによって、より健全な教団を結成することができると考えていたくらいでした。
検挙されたホーリネスの人々の内、第6部に属する人々は、中田重治の言っていることを信じていなかったため、自分たちは、伝道に邁進し、国の政策には全面的に賛同していたのに、不本意に検挙されてしまった。「今後は、国から混乱錯綜の疑いをもたれないよう、注意していきたい所存です」という形に収まってしまいました。つまり、言い換えるなら、自分たちは戦争や国家に対し反抗する意思もありませんでしたし、これからも、宗教と現実を一元的に考えないよう特に注意しながら、宗教は宗教、政治は政治というふうに二元的に考えるようにしていきます。そして、これまで通り国の政策に全面協力しながら、宗教上、王の王はイエス様ですが、現実においては天皇に対し崇拝してまいります、となってしまったのです。結局、ホーリネスの弾圧とは、天皇崇拝に抵抗したための弾圧ではなく、宗教と現実を一元的に考えて、「混乱錯綜」させてしまったが故の弾圧となってしまったのです。
戦後になって初めてキリスト者は戦時中に自分たちが犯してしまった罪に気づかされました。自分たちの罪深さと、愚かさを、敗戦を通して客観視させられて初めて気づかされたのです。それはまさにペトロが感じたような、言いようのない絶望と悲しみだったに違いありません。イエス様を否定し、十字架に引き渡したのは、他でもなくまさに自分たちであるという悲しみです。しかし、だからこそ主の十字架は、あらゆる人間の弱さと罪深さのための贖いであるという悟りがはっきりと与えられたのです。絶望的な悲しみを通して、私たちの内に何も良いものがないことをはっきり自覚し、全的に堕落していたことを悟るのです。絶望的な悲しみを通して、キリストの十字架の贖いをはっきりと心に刻むことができたのです。そしてペトロを導いて下さったように、絶望と悲しみを通して、神は私たちに回復と悔い改めに導いて下さるのです。お祈りいたしま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