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年10月11日「神が結び合わせたもの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

問い合わせ

日本キリスト改革派 千間台教会のホームページへ戻る

神が結び合わせたもの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

日付
説教
川栄智章 牧師
聖書
マルコによる福音書 10章2節~12節

音声ファイルのアイコン音声ファイル

礼拝説教を録音した音声ファイルを公開しています。

聖句のアイコン聖書の言葉

10:2ファリサイ派の人々が近寄って、「夫が妻を離縁することは、律法に適っているでしょうか」と尋ねた。イエスを試そうとしたのである。
10:3イエスは、「モーセはあなたたちに何と命じたか」と問い返された。
10:4彼らは、「モーセは、離縁状を書いて離縁することを許しました」と言った。
10:5イエスは言われた。「あなたたちの心が頑固なので、このような掟をモーセは書いたのだ。
10:6しかし、天地創造の初めから、神は人を男と女とにお造りになった。
10:7それゆえ、人は父母を離れてその妻と結ばれ、
10:8二人は一体となる。だから二人はもはや別々ではなく、一体である。
10:9従って、神が結び合わせてくださったものを、人は離してはならない。」
10:10家に戻ってから、弟子たちがまたこのことについて尋ねた。
10:11イエスは言われた。「妻を離縁して他の女を妻にする者は、妻に対して姦通の罪を犯すことになる。
10:12夫を離縁して他の男を夫にする者も、姦通の罪を犯すことになる。」日本聖書協会『聖書 新共同訳』
マルコによる福音書 10章2節~12節

原稿のアイコン日本語メッセージ

【序】

 10月第二週の主の日の朝です。今朝は伝道礼拝ということで、主イエスによって御前に招かれた、愛する皆さんと共に礼拝が捧げられることを感謝いたします。主イエスの豊かな恵みと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お祈りいたします。マルコ10章の前半部分には、三つの記事がございまして、今朝、お読みしたのは、その中の最初の記事である「結婚と離婚」について書かれています。その次には、「神の国は、子どもたちのためのもの」という記事が続きまして、三番目には、「金持ちの男が神の国に入るために」ついての記事が続いています。弟子たちがそのことに気付いているかいないかは別として、イエス様は、今や十字架に架かられるためにエルサレムに向かっている緊迫した中にございます(11章を見ると、いよいよロバの子に乗ってエルサレムに入場するという場面になります)。ですから10章の前半に書かれている三つの記事の主題とは、イエス様が十字架上で成就なされる「福音」について書かれているということになるでしょう。イエス様はご自分の死と復活について弟子たちに打ち明けられても、なかなか悟らない弟子たちに対し、イエス様が与えてくださる「福音」とは何かについて、教えていると思われます。ですから本日の箇所は、離婚を経験した方にあっても、離婚なんて全く考えていない円満夫婦にあっても、或いは、まだ結婚さえしていない人々にあっても、大切な内容となってまいります。

【1】. 律法を文字面で解釈するファリサイ人

 ファリサイ派の人々がイエス様を罠に陥れようとして、イエス様に“夫が妻を離縁することは、律法に適っているでしょうか”と質問をします。当時、ユダヤの社会において離婚は一般的に認められていました。ファリサイ派の人々も認めていました。ただ離婚に至る場合に、どのような状況下であれば離婚が認められるのか、離婚の理由について議論されることはありましたけれど普通は認められていました。ファリサイ派の人々がイエス様にこのような質問をしたのは、当時イエス様が徴税人や不道徳な人たちと親しく食事をとっていましたし、イエス様の弟子たちの中に遊女であったマグダラのマリアのような人もいましたので、イエス様の持っていた結婚観から、もしかしたら出て来るかもしれない失言や、誤解を招くような、ふしだらな言い回しなど、不利になる証拠を取ってやろうと思っていたのかもしれません。反対に、もしイエス様が離婚について厳しく反対するようなら、それは第一にモーセの教えにもそぐわない事でもありますし、何よりまだ人々の記憶に残っている、あの洗礼者ヨハネの死刑と同じように、してやろう、とでも思っていたのでしょう。ヘロデ・アンティパスという領主がいまして、自分の妻がいたのにも関わらず、兄弟の妻へロディアを気に入って、強引に自分の妻にめとってしまいました。そのことを公に非難していた洗礼者ヨハネをヘロデは死刑にしてしまったのです。イエス様はこの難しい質問に対してどのように答えられたのか見てみましょう。3~9節を御覧ください。

“イエスは、「モーセはあなたたちに何と命じたか」と問い返された。彼らは、「モーセは、離縁状を書いて離縁することを許しました」と言った。イエスは言われた。「あなたたちの心が頑固なので、このような掟をモーセは書いたのだ。しかし、天地創造の初めから、神は人を男と女とにお造りになった。それゆえ、人は父母を離れてその妻と結ばれ、二人は一体となる。だから二人はもはや別々ではなく、一体である。従って、神が結び合わせてくださったものを、人は離してはならない。」”

イエス様はモーセの律法を引用して答えられましたが、ファリサイ人たちとは引用箇所が異なっているのがわかります。ファリサイ人の引用箇所は申命記24:1の御言葉であり、そこには離縁することを「許した」と書かれています。しかしそもそもイエス様の質問とは、モーセは何と「命じているのか」という質問でありまして、創世記2:24の御言葉を引用しながら、創造において示された神の永遠の目的を明らかにし、モーセが離縁を許す以前に、神がお命じになられたこととして、より深いレベルでお答えになっているのです。そして5節において、イエス様は反撃を始められます。モーセの時代の民と、そして現代に生きているあなた方ファリサイ人が頑ななために、モーセは離縁状を書いて離縁することを許したのだと言われます。つまり、離縁を認めているファリサイ派の人々に対し、あなた方こそ逆に、モーセの本来の意図に反し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指摘しているのです。結局、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文字面でしか律法を理解することは出来ませんでしたが、律法を制定された、神ご自身のその深い意図については、イエス様の方が、よくよくご存知であったということです。

【2】. 当時と現代の状況

 弟子たちは、このイエス様の言葉に非常に驚きました。当時の社会では男尊女卑の考え方が強く、このお言葉は、当時の常識を覆すようなものだったからです。当時、妻は夫にとって所有したり手放したりできる土地や財産のように考えられていました。弟子たちは家に戻ると、もう一度イエス様に尋ねました。因みに並行記事のマタイによる福音書19:10には、“夫婦の間柄がそんなものなら、妻を迎えない方がましです」と言った。”と書かれています。

このイエス様が言われた“神が結び合わせてくださったものを、人は離してはならない。”という御言葉ですが、現代においては教会の結婚式の時に宣言されたりします。礼拝堂での結婚式を思い出してもらえればと思いますが、神と教会の前に新郎と新婦に出てきてもらい、新郎には「あなたは、今、誰それを妻にしようとしています。真心からこの女子を妻とすることを願いますか?」同じく新婦に対しても「あなたは、今、誰それを夫にしようとしています。真心からこの男子を夫とすることを願いますか?」この質問に対して「はい、神と教会の前に謹んで誓約いたします」というふうにお二人に誓約をしてもらいます。その後、指輪の交換がなされ、最後に牧師は新郎・新婦の誓約に封印をするかのように「今、二人が夫婦になったことを宣言します。神が結び合わせてくださったものを、人は離してはならない。アーメン!」と宣言するのです。結婚式の時にはこの宣言に素直に同意し、喜んで受け入れるものですが、なぜか結婚式以外の所でこの言葉を聞くと、たちまち、弟子たちが感じたのと同じような違和感を少し感じてしまうのです。なぜなら私たちの現実を見る時に、夫婦仲がうまくいかない。価値観や性格の不一致で悩んでいる。現在、離婚を考えている。という夫婦が少なくないからです。そして、これは若い夫婦だけに限らず、何十年と連れ添ってきた中高年の夫婦においても見られる現象なのです。最近では「コロナ離婚」という言葉も出て来ました。夫婦の問題、家族の問題というのは決して一言で割り切れるような簡単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し、時にはDVなど命に係わることもあるのです。神さまは本来、男と女を結び合わせ一体となるように創造されましたが、私たちの内には罪があるために、キリスト者であったとしても、もう、どうしようもなくなって離婚するケースもあるということです。

【3】. イエス様と教会

 ところで、聖書には比喩的にイエス様と教会の関係を新郎と新婦であると表現しています。神さまのお造りになった被造物は、神さまと一切関係がないのではなく、非常に関係があります。被造物は神さまを褒め称え讃美するように創造されました。また人間は神のかたち、神の似姿として自然を管理し治めるように創造されました。そしてさらに言えば、人間というのは男と女とに創造されましたが、神さまは男と女をどのように創造なさったのかについて、創世記の記事をもう一度確認してみましょう。創世記2:21~25を御覧ください。

“主なる神はそこで、人を深い眠りに落とされた。人が眠り込むと、あばら骨の一部を抜き取り、その跡を肉でふさがれた。そして、人から抜き取ったあばら骨で女を造り上げられた。主なる神が彼女を人のところへ連れて来られると、人は言った。「ついに、これこそ/わたしの骨の骨/わたしの肉の肉。これをこそ、女(イシャー)と呼ぼう/まさに、男(イシュ)から取られたものだから。」こういうわけで、男は父母を離れて女と結ばれ、二人は一体となる。”

創世記の記事を見ますと、女は男のあばら骨で造られたと書かれています。ですからアダムがエバを初めてみた時に、人である自分(イシュ)と大変似ているので、「これこそわたしの骨の骨、私の肉の肉」と言いながら、「イシャー」と名付けました。「イシュ」というヘブル語は人とか、男という意味です。英語で考えるなら、男がmanですから、アダムはエバを似たような発音でwoman(女)と名付けたということです。まさにエバを見て生涯の誠実な伴侶を得ることになったと喜び驚いているのです。このように似ていたのも、それもそのはず、二人は同じ根源から、似た者同士として作られたからです。女は男のあばら骨から作られました。しかし、男は女から生まれて来るのです。女がいなければ男だって存在できないのです。このようにして神は人を、男と女とを二人としてではなく、一体としてお造りになられました。一つの有機体であって、二人が結び合わされる時に初めて完全になるのです。神が結び合わせてくださったものを、決して引き離す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ことです。男と女の創造は、まさにイエス様と教会の関係になぞらえられるのであります。なぜならイエス様が十字架に掛けられ三日の深い眠りにつかれた後に、イエス様の贖いの御業によって教会が誕生したからです。イエス様がアダムであり、教会はエバです。従いまして、イエス様が弟子たちに語られたマルコ10:11と12節の御言葉は、そのままイエス様自身と教会に当てはめられるのです。11節を御覧ください。

“イエスは言われた。「妻を離縁して他の女を妻にする者は、妻に対して姦通の罪を犯すことになる。”

つまり、イエス様ご自身がもし、教会と離縁して他の人と契約を結ぶなら、教会に対して主が罪を犯すことになるということです。イエス様は決して教会を見捨てることのないお方であり、私たちを土地や財産のように考えて勝手に手放したりされることはないお方です。イエス様が罪を犯すなどとは考えられないからです。このことは私たちにとってどれほど慰めとなって響いてくるでしょうか。続いて12節を御覧ください。

“夫を離縁して他の男を夫にする者も、姦通の罪を犯すことになる。”

つまり、教会がもし、イエス様から離れて、他の神々に従って行くなら、罪を犯すことになるということです。私たちは主イエス以外に、いかなるものにも依り頼んではならない、イエス様だけが私たちの主であり、私たちの善き牧者であり、私たちの救い主なのです。イエス様が私たちを愛して下さり、私たちと一つに結合してくださいますので、私たちもイエス様の御声に従って、いつまでもどこまでも従って行くことが出来るのです。

【結論】

 “神が結び合わせてくださったものを、人は離してはならない。”というこの御言葉は、イエス様の教会に対する決意表明として、響いてくるのです。これこそイエス様の救いの御業であり、私たちにとっての福音であります。私たちはこの恵みの中で生かされているので、結婚生活も神さまに感謝の応答しながら、夫婦が互いに助け合い、支え合い、共に神さまを崇め、礼拝しながら歩んで行くことができるのです。そして、まだご結婚されていない方は、神の導きを信じて祈りを持って配偶者を待ち続けることが出来るのです。

原稿のアイコンハングル語メッセージ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

2020년 10월 11일 센겐다이교회 주일설교

마가복음 10장 2~12절

서론

10월 둘째 주 주일 아침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자신에게로 부르신 사랑하는 여러분과 함께 오늘 전도예배를 드림을 감사드립니다. 주 예수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마가복음10장의 전반부분에는 세 개의 기사가 있는데 오늘 아침에 읽은 것은 그 중 첫 번째 기사인 「결혼과 이혼」에 대해서 쓰여져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기사로 이어지고 세 번째로는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라는 기사가 이어집니다. 제자들이 그것을 알든 모른든 그것과는 별개로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긴박한 가운데 계십니다(11장을 보면 드디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장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10장 초반에 쓰여져 있는 세 가지 기사의 주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성취하시는 「복음」에 대해 쓰여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밝히셨음에도 좀처럼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에 대해서 예수님이 주시는 「복음」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가르치고 계신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부분은 이혼을 경험한 분들에게도 이혼 같은 건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는 사이가 좋은 부부에게도 아니면 아직 결혼조차 하지 안은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내용이 될 것입니다.

(1) 율법을 문자로 해석하는 바리새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예수님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이혼은 일반적으로 인정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인정했습니다. 다만 이혼에 이르는 경우에 어떤 상황에서라면 이혼이 인정되는지, 이혼의 이유에 대해 논의되는 경우는 있었지만 보통은 인정되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이러한 질문을 했다는 것은 당시 예수님이 징세인이나 부도덕한 사람들과 친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고,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창녀였던 막달라 마리아 같은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지고 있던 결혼관에서 혹시 나올 수도 있는 말실수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추잡한 표현 등 불리해질만한 증거를 잡아내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만약 예수님이 이혼에 대해 강하게 반대한다면 그것은 첫째 모세의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 세례자 요한이 사형 당한 것처럼 똑같이 처치 해버리자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헤롯 안디바라는 영주가 있었는데 자신의 아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마음에 들어 해 억지로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 일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세례자 요한을 헤롯은 사형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어려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셨는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3~9절을 보세요.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4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6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7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8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9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인용해서 대답하셨지만, 바리새인들과는 인용구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인용구는 신명기 24장 1절 말씀이며, 거기에는 이혼하는 것을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애당초 예수님의 질문이란 「모세가 어떻게 명하였느냐」라고 하는 질문인데, 창세기 2장 24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창조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밝히고 모세가 이혼을 허락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으로 보다 깊은 차원으로 대답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5절에서 예수님은 반격을 시작하십니다. 모세의 시대의 백성들과 그리고 오늘날 살고 있는 당신들 바리새인이 완강하기 때문에 모세는 이혼장을 써서 이혼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말하십니다. 즉 이혼을 인정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당신들이야말로 역으로 모세의 본래의 의도에 반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은 문자로만 율법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율법을 제정하신 하나님 자신의 그 깊은 의도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더 잘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2) 당시와 현대의 상황

제자들은 이 예수님의 말씀에 매우 놀랐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남존여비의 사고 방식이 강했고, 이 말씀은 당시의 상식을 뒤엎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아내는 남편에게 소유되거나 포기할 수 있는 토지나 재산처럼 여겨졌습니다. 제자들은 집에 돌아오자 다시 한번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덧붙여서 병행 기사인 마태복음 19장 10절에는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는 말씀인데, 현대에는 교회에서의 결혼식에서 선언되기도 합니다. 예배당에서의 결혼식을 떠올려 주셨으면 하는데 하나님과 교회 앞에 신랑과 신부가 나와, 신랑에게는 “당신은 지금 누구를 아내로 삼으려고 합니다. 진심으로 이 여자를 아내로 삼기를 바라십니까?” 역시 신부에게도 “당신은 지금 누구를 남편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진심으로 이 남자를 남편으로 삼기를 바라십니까?” 이 질문에 대해 “네, 하나님과 교회 앞에 삼가 서약합니다”라는 식으로 두 사람에게 서약을 받습니다. 이후 반지 교환이 이루어지고 마지막으로 목사는 신랑 신부 서약에 봉인을 하듯 “지금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아멘!” 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결혼식 때는 이 선언에 순순히 동의하고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왠지 결혼식 이외의 곳에서 이 말을 들으면 금세 제자들이 느꼈던 것과 같은 위화감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현실을 볼때는 부부사이가 원만하지 않을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가치관과 성격의 불일치로 인해서 고민하고 있다, 현재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라는 부부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젊은 부부뿐만 아니라 수십년간 함께 살아온 중년의 부부에게서도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최근에는 「코로나 이혼」이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부부의 문제, 가족의 문제라는 것은 결코 한마디로 끊어 버릴 수 있는 간단한 것이 아니며 때로는 가정폭력등 생명과 관련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본래 남자와 여자를 묶어 하나가 되도록 창조하셨는데, 우리 안에는 죄가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이혼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3) 예수님과 교회

그런데 성경에는 비유적으로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은 하나님과 일절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관계가 있습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또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자연을 관리하고 다스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어떻게 창조하셨는지에 대한 창세기 기사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창세기 2장 21~25절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세기 기사를 보면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어졌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하와를 처음 봤을 때 사람인 자신(이쉬)과 매우 닮았기 때문에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하면서 「잇샤」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쉬」라고 하는 히브리어는 사람이라든가, 남자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영어로 생각한다면 남자가 MAN 이니까 아담은 비슷한 발음으로 WOMAN(여자)라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와를 보고 평생의 성실한 반려자를 얻게 되었다고 기뻐하며 놀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비슷했던 것도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은 같은 근원에서 비슷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에게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여자가 없으면 남자도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를 둘이서가 아니라 한 몸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의 유기체이며 두 사람이 짝지어 질때 비로소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결코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창조는 바로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에 빗댄 것 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나서 사흘 동안 깊은 잠을 잔 후에 예수님의 속죄의 역사로 교회가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아담이시고 교회는 하와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마가복음 10장 11절과 12절 말씀은 그대로 예수님 자신과 교회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즉 예수님 자신이 만약 교회와 이혼하고 다른 사람과 언약을 맺는다면 교회에 대해서 주께서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교회를 저버리지 않으시는 분이고 우리를 땅이나 재산처럼 생각하고 마음대로 처리하시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죄를 짓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겠습니까? 이어서 12절을 보십시오.

12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즉 교회가 만약 예수님을 떠나 다른 신들을 따라간다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 이외에 어떤 것에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주님이요, 우리의 선한 목자요,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우리와 하나로 연합해 주시니 우리도 예수님의 목소리를 따라서 언제까지나 어디까지라도 따라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라는 이 말씀은 예수님의 교회에 대한 결의표명으로서 울려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이자 우리에게는 복음입니다. 우리들은 이 은혜 가운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결혼생활도 하나님께 감사의 응답을 해 가면서 부부가 서로 도우며 서로 의지하며 함께 하나님을 높이고 예배하며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분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기도하며 배우자를 계속해서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関連する説教を探す関連する説教を探す